[오늘을 여는 시] 점등(點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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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래(1959~ )

이른 아침 학교 언덕길

고요한 시선 하나 나의 내면 엿본다

고개 돌려 숲속 관찰하니 직박구리 한 마리

바로 지척에서 나를 바라본다

엄마 젖에 매달린 젖먹이마냥 동백꽃에 매달려

말갛게 나를 바라본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제 아빠 대하듯 내 눈에 제 눈 맞춘다

순간, 내 망막이 그놈의 눈 안으로 빨려 들어가

환하게 점등되는 걸 느낀다 황홀하게

천 년 시간 저쪽의 도화원에 가 닿는 걸 느낀다

하, 얘 좀 봐? 나는 직박구리와 눈 맞추는 일이

가슴 떨려 못 견딜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오래 지속하면 어느 찰나 저놈이 지리산 연곡사

동부도 속으로 날아가 버릴까 얼른

눈길 거둔다 그리고는 가슴 뿌듯하게

오늘 하루 나는 직박구리의 아빠야, 자랑해대며

아이들 가르칠 일을 즐겨 구상한다

-시집 〈천 년 시간의 저쪽 도화원〉(2014) 중에서

눈과 눈이 마주쳤을 때 스파크가 튄다. 튀는 불꽃은 놀라움, 기꺼움, 황홀함 등으로 번져 의식의 등불이 된다. 시인도 이를 알기에 ‘눈 맞춘’ 순간 ‘그놈의 눈 안으로 빨려 들어가

환하게 점등되는 걸 느낀다 황홀하게

’라고 말하고 있다. 눈맞춤으로써 깨어나는 의식의 점등(點燈)! 의식에 불이 들어오는 순간 무료한 일상은 부서지고 세상은 신비로 피어난다.

첫사랑의 눈맞춤이 그러하지 않을까? 황홀한 교감은 세계 속에 살아있는 나의 존재성을 유감없이 느끼게 하고, 생의 기쁨과 의미에 눈뜨게 한다. 그렇기에 ‘점등’은 삶의 본질에 대한 본능적 직관이다. 매우 아름답고 고귀한 것에 대한 발견이다. 시인도 본능적으로 이를 ‘천 년 시간 저쪽의 도화원에 가 닿는 걸 느낀다’로 고백하고 있다. 하여 시는 불의 성령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배화교(拜火敎)처럼 의식의 불꽃을 부르고 키워내는 의례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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