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독립기념일에 찾은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
아트컨시어지 대표
2015년 개봉한 007시리즈의 24번째 영화 ‘007 스펙터’의 인트로 장면에 등장하는 망자의 날 퍼레이드는 멕시코시티의 소칼로(Zocalo) 광장이 배경이다. 영화 속 이 장면이 계기가 돼 첫 멕시코 여행을 떠났고, 몇 차례 멕시코를 방문하는 동안 부정적 선입견은 점차 매력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멕시코 여행의 안전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는 미국인의 시선으로 만든 범죄 영화에 나타난 다소 과장되고 부정적인 시선의 단편일 뿐, 평균적인 멕시코 모습은 아니다.
사실상 멕시코는 남미와 중미를 통틀어서 가장 잘사는 나라이며, 기원전 2000년 전부터 아즈텍과 마야 문명을 꽃피웠다. 우리보다 20년 앞선 1968년 올림픽을 개최했고, 2026년엔 미국, 캐나다와 함께 월드컵 공동 개최가 확정돼 사상 최초로 세 차례 월드컵을 개최하는 국가가 된다. 또한 정치, 화학, 문학 분야에서 이미 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유한 나라이기도 하다.
지난 16일 멕시코시티에 머물렀는데, 이날은 공교롭게도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이었다. 소칼로 광장은 말 그대로 축제의 현장이었다. 이날 마주한 멕시코 국민들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자국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이 온몸으로 느껴졌는데, 이는 백인, 인디오, 그리고 국민 대다수인 메스티소(혼혈) 가릴 것 없었다.
멕시코 독립 전쟁은 스페인의 지배에 저항해 1810년 9월 16일 일으켰고, 11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1821년 8월 24일 코르도바 조약을 체결하면서 끝났으며, 그 결과 멕시코가 독립하게 된다. 보통은 독립을 쟁취한 날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하지만, 멕시코는 이 전쟁을 시작한 날을 독립일로 기념한다. 무려 300년 동안 멕시코는 혹독한 식민지 시기를 보내며 약탈당했다. 고유 언어는 사라졌고, 종교와 문화도 모두 스페인의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독립했다는 점은 이들에게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이 기간 멕시코시티뿐 아니라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와 거리는 멕시코 국기 색깔인 초록, 하얀, 빨간색 조명과 배너로 장식되고, 도시 곳곳에선 국가 이미지와 관련된 파생 상품을 판매했다. 이 중 가장 놀라웠던 건 현직 멕시코 대통령 관련 굿즈였다. 캐릭터 인형을 비롯한 갖가지 상품이 거리의 상점을 메우는데, 퇴임 2주를 앞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정치인이 이렇게 국민의 사랑을 받는 모습은 부러움을 넘어 신기하기까지 했다.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유행하고, 계층과 세대, 젠더 문제 등으로 갈등하는 대한민국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우리가 2002년 월드컵 이후 저들처럼 하나 된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