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참모의 조건
권기택 서울지사장
뛰어난 참모가 훌륭한 리더 뒷받침
전략전술 능하고 충언할 수 있어야
총선 직전 의대 증원 제안은 실패작
대통령 측근들 역할 못해 선거 참패
박 시장의 정무라인 인사 안타까워
중앙인맥 두터운 참모진 구성 시급
훌륭한 지도자 뒤에는 언제나 뛰어난 참모가 있다. 참모의 역할에 따라 지도자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모든 역사를 관통하는 불변의 진리다. 유비가 중국 삼국시대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제갈량이라는 걸출한 책사 덕분이었고, 딕 모리스라는 세계적인 킹 메이커가 없었다면 아칸소주 법무장관이었던 빌 클린턴이 미국 42대 대통령에 당선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참모는 ‘윗사람을 도와 일을 꾀하는 사람’이나 ‘지모가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책사나 킹 메이커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참모는 전략·전술에 능해야 하고 국내외 정세를 잘 꿰뚫고 있어야 한다. 지도자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도록 조언하는 것도 참모의 역할이다. 리더가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목숨을 걸고 바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가 반대 세력도 과감히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심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에겐 다양한 부류의 참모가 있다. 국무총리와 장·차관, 정보기관 수장, 공공기관장까지 수십명에 이른다. 넓은 의미로 대통령이 임명한 공직자는 모두 참모로 봐야 한다. 대통령실 멤버들은 핵심 참모로 분류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앞둔 상황에서 과연 참모다운 참모는 얼마나 될까. 윤 대통령에게 쓴소리 하면서 혜안을 제시하는 유능한 참모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의 국회 개원식 불참은 처음이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었지만 핑계에 불과하다. 역대 대통령 중 국회가 마음에 들어서 개원식에 참석한 사람은 거의 없다. 삼권분립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국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힘들다. 더욱이 지금은 거대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는 의미다.
의대 증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의료계의 현실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의대 증원 자체에 회의적이다. 백번 양보해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그 규모나 시기는 주도면밀하게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정부는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의대 증원을 밀여붙였다. 그러자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상당수 유권자들까지 돌아섰다. 집권당의 총선 참패는 예고된 셈이었다.
고집 부려서 될 일이 있고,안 될 일이 있다. 그리고 국정운영은 고집으로 되지 않는다. 최근 국정운영 지지율이 20%대에 불과한 것에서 드러났듯이 우리 국민들은 윤 대통령에게 국정 기조 전환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의료대란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을 과감히 문책하고 의대 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 해야 한다. 곧 출범할 ‘여야의정협의체’ 결정을 전면 수용하겠다고 사전 약속해야 한다.
대통령의 참모는 자리에 연연해선 안 된다. 예리한 분석력과 판단력으로 국내외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해서 대통령에게 정확하게 보고해야 한다.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보고하지 못하는 참모는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런 참모는 하루빨리 물러나야 한다. 그들을 대신할 유능한 참모는 주위에 많다.
여야 지도자의 참모들도 한심하기 그지 않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참모라면 그를 이번 당대표 선거에 출마시키지 말았어야 했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핵심 측근은 그와 열성 지지자를 서둘러 분리시켜야 한다. 우선 한 대표는 국민의힘 총선 참패에 적잖은 책임이 있는데다, 윤 대통령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지금과 같은 윤-한 갈등이 계속된다면 한 대표는 상처만 입고 중도하차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표도 친명계 정치인들과의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
요즘 박형준 부산시장의 인사를 보면 답답한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에 단행된 정무라인 인사는 온전히 부산시장 선거용이다. 차기 대권과 관련된 인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차기 경쟁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무라인 인사와 극히 대조적이다. 단언컨대 박 시장은 현재 거론되는 차기 대권주자 중 가장 경쟁력 있는 인물이다. 풍부한 경험과 높은 식견,글로벌 마인드 등 다른 대권주자들이 갖지 못한 훌륭한 자산을 갖고 있다. 박 시장이 차기 대권경쟁에 적극 임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그의 참모들은 시장 선거 준비에 올인하는 형국이다. 중앙 정치권 사정에 밝고, 인맥이 두터운 참모진을 대거 발탁해야 한다.
국회의원에겐 보좌관이 핵심 참모 역할을 한다. 보좌관이 국회의원 성패의 70% 이상 감당한다. 그런 점에서 상당수 부울경 국회의원들의 보좌진 구성은 낙제점을 면키 어렵다. 참모없는 리더는 존재할 수 없다.
권기택 기자 kt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