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강남 불패, 대한민국 필패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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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강남스타일’ 눈부신 성취 이뤘지만
수도권 일극주의 성장 잠재력 정체
국가 자원 배분 정책 큰 틀 바꿔야

‘강남 감각’ 무장한 중앙 관료가 문제
비수도권 거점도시 육성 발등의 불
한은 균형발전 목소리 귀에 담아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상에 처음 나온 게 2012년의 일이다. 노래와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코믹한 말춤과 재미있는 노랫말, 중독성 강한 리듬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신드롬을 불러왔다. 세계인이 ‘오빤 강남스타일~’을 떼창하고 말춤을 패러디하며 공유했다. 그해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스타일’ 영상이 제작됐을 정도다. 그즈음 역사상 말로 세계를 정복한 아시아인이 두 명인데 한 명은 칭기즈칸이고 나머지 한 명이 싸이라는 이야기까지 회자했다.

강남스타일의 세계적 인기는 동시에 강남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자극했다. 한국은 곧 강남이었고 한국 문화가 곧 강남 문화였다. 강남은 대한민국 압축 성장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한강의 기적은 강남 기적의 다른 이름이었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강남의 공간적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부와 권력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됐고 쏠림과 집중의 구심력은 더 강화됐다. 서울공화국, 수도권공화국도 따지고 보면 강남공화국의 확장된 버전이다. 그렇게 강남은 지금도 불패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최근 강남을 공론장으로 소환했다. 한국정치학회가 부산 동서대 센텀캠퍼스에서 ‘2024 국제학술대회’ 일환으로 진행한 대담 자리에서다. 1970년대 이후 우리는 우수한 경제 관료를 중심으로 정치적 리더십과 자원을 집중해 압축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압축 성장은 수도권 일극주의를 심화시켰고 성장 잠재력 저하와 초저출생, 격차 심화로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고 했다.

박 시장은 국가 경영의 큰 틀을 수도권 중심의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를 가로막는 주범이 ‘강남’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이들의 80%가 강남에 살거나 강남권에서 아이를 교육한다. 강남은 엘리트주의의 상징이 됐고 전국이 ‘강남류’를 지향하면서 수도권 중심의 수직적 구조를 강화했다. 강남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학습한 중앙 관료들은 ‘강남 감각’을 체화해 아무리 지역의 문제를 역설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게 박 시장의 호소였다.

박 시장 스스로 부산시장 직을 수행하면서 중앙집권적 의식으로 무장한 관료의 벽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몸소 체험했을 것이다. 지역에 조그마한 권한이라도 넘겨주면 큰일 날 것처럼 이야기하는 관료의 인식 앞에 절망했을 것이다. 돈도 필요 없으니 제발 지역에 권한이라도 제대로 달라는 대목에서는 울분마저 느껴졌다. 우는 아이 달래듯 떡을 나눠 줄 게 아니라 떡시루를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비슷한 시기 한국은행이 국가 통화정책을 왜곡시키는 주범으로 강남을 지목하고 나선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은은 ‘입시 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 보고서를 통해 수도권 부동산 가격 급등은 강남 부동산에 대한 초과수요가 상시 잠재해 있는 사회구조적 문제며 이 수요의 근저에는 입시 경쟁이 자리 잡고 있고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고착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서울대의 지역비례선발제 도입을 제안했다. 한은의 금리 조정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안정에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한은 총재가 교육부 장관이냐는 등의 비아냥도 나오지만 한은의 깊은 고민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최근 한은이 보고서 발간과 심포지엄을 잇달아 개최하며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한은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 초저출생이라는 국가적 재앙이 수도권 집중에서 비롯된다며 비수도권에 서울과 같은 거점도시 1~2곳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대안까지 제시한다. 국가균형발전도 결국 돈의 흐름에 관한 문제라고 한다면 한은이 국가적 위기 상황을 먼저 감지하고 대응책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런 행보의 배경에 대해 국가 통화정책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컨센서스를 이뤄가는 과정인데 망국적 지역 불균형은 이를 무력화시킨다고 했다. 최근 수도권 집값이 급등한다고 주택담보대출을 옥죄고 있는데 정작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지역 주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게 이런 상황이다.

국가 자원 배분의 큰 틀을 다시 바꿔야 하는데 강남의 울타리에 갇힌 중앙 관료의 눈에는 대한민국의 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운동장은 기울었는데 지역 자생력 운운하며 땜질 처방만 해봐야 소용없다. 강남 신화도 결국은 국가의 정책 자원을 ‘몰빵’한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눈부신 성취가 이제는 국가 성장의 잠재력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변했다면 전략을 바꿔야 한다. 국가 통화정책의 컨트롤타워에서 나오는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대한민국호는 이미 침몰하기 시작했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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