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첫사랑 그 사람은
박재삼(1933~1997)
첫사랑 그 사람은
입맞춘 다음엔 고개를 못들었네.
나도 딴 곳을 보고 있었네.
비단올 머리칼 하늘 속에
살랑살랑 햇미역 냄새를 흘리고,
그 냄새 어느덧 마음 아파라.
내 손에도 묻어 있었네.
오 부끄러움이여, 몸부림이여.
골짜기에서 흘려보내는
실개천을 보아라. 물비늘 쓴 채
물살은 울고 있고, 우는 물살 따라
달빛도 포개어진 채 울고 있었네.
시집 〈박재삼 시 전집 1〉(1998) 중에서
첫사랑은 강렬한 감각이다. 날카롭거나 뜨겁거나 짙거나 하는 것. 생의 처음에 주어지는 감각은 매우 낯설고 매워 시간을 초월하여 기억 속에 남아있다. 상대의 머리칼에서 풍기는 냄새는 의식의 원판에 새겨져 있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 냄새 어느덧 마음 아프’게 하는 감각으로 인화된다. 무엇보다 만지고 쓰다듬던 ‘내 손에도 그 냄새가 묻어 있’음을 느낄 때는 더욱 또렷한 감각으로 인해 애틋함을 달랠 길 없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놓쳐버린 사람에게 첫사랑은 그래서 ‘울음’이다. 세계마저 그 슬픔에 동조하여 ‘물비늘 쓴 채 물살은 울고 있고, 우는 물살 따라 달빛도 포개어진 채 운’다. 울음 속에서 그때의 감각은 더욱 생생해지고 가슴에 사무친다. 하여 ‘첫사랑 그 사람’은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의식의 심층에 잠겨 일렁이고 있다가 그리움의 감각을 타고 전율로 피어난다. 김경복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