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세계해양사학회 부산대회, 그 성과와 한계
김성준 한국해양대 항해융합학부 대학원 / 해양역사문화전공 교수
지난 8월 19일부터 24일까지 제9회 세계해양사대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설립 40주년을 맞은 세계해양사학회(IMHA)는 1989년부터 4년마다 세계해양사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모두 유럽권에서 개최했다. 역사적으로 유럽인들이 해양 활동을 주도해 온 만큼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2022년 6월 포르투갈 포르토에서 열린 제8회 세계해양사대회(당초 2020년 개최였으나 코로나19로 순연돼 2022년 개최)에 참석한 필자는 부산 유치를 제안하면서 “유럽 중심적인 해양사 연구의 다양화와 세계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었다. 당시 유치전에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가 유치 제안서를 제출했다. 필자는 구두로 유치 의사만 피력했다. 한데 사무국에서는 필자의 구두 제안을 수용해 세계해양사대회 정기총회서 유치전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국은 핀란드, 에스토니아와 유치 경쟁을 벌여 2차에 걸친 투표 끝에 아시아 권역 최초로 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다. 당시 세계해양사학회 정기총회에 참가한 200여 명 중 한국인은 필자 한 명뿐이었다.
아시아권 첫 개최라는 점 큰 의미
8회 포르토대회보다 크게 성장
세계 해운 강국 대한민국 위상 높여
국내 해양사 분야 논문 적어 아쉬워
유치 확정 후, 대회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총회 참가자들로부터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반수 이상이 ‘Mobility and Connectivity of Ocean(해양의 이동성과 연결성)’을 선택했다. 세계해양사대회 사무국에서는 이를 일부 수정해 ‘Oceans : Local Mobility, Global Connectivity(바다 : 지역 이동성, 세계 연결성)’를 부산대회 주제로 최종 선정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의 압축으로 상징되는 지구화 시대, 바다는 지구화의 걸림돌이 아니라 촉매제라는 것을 함축한다. 주제 확정 후 대회 포스터 등에 사용할 디자인으로 1402년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나침반의 방위판을 활용한 시안을 제안해 확정했다.
세계해양사대회를 유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해양사 관련 학회가 없었다. 이는 학계에서 보기에 매우 기이한 상황이었다. 이를 인식한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에서 “일부 재정적 지원을 해 줄 테니 해양사학회를 설립해 대회를 공동주관 해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에 힘입어 해운 경제학자와 해양 사학자들이 뜻을 같이해 이를 바탕으로 2022년 12월 ‘해양사학회’가 창립돼 부산대회를 공동으로 주관했다.
필자도 연구년을 세계해양사학회 회장이 재직 중인 미국의 올드 도미니온대학교에서 보내며 부산대회 준비에 힘을 보탰다. 전체적인 진행은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가 맡았다. 그 결과 개인 발표 96편과 패널 45개 그룹(130여 편)을 포함해 총 280편의 논문이 접수됐다. 참가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등 28개국에 달했다.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도쿄대, 교토대, 베이징대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대학이 대거 참여했다. 세계 각국 해양학자의 행사 참여 등록자 수가 291명으로, 현장 등록자까지 포함하면 300여 명에 이른다. 국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개최된 대규모 국제학술대회였던 셈이다.
앞서 열린 제8회 세계해양사대회 발표 신청 논문이 180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부산대회는 배 이상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9개 세션이 동시간대에 진행돼 참가자들이 상당히 분산되었음에도, 세션마다 많은 연구자들이 참석해 진지한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다. 특히 한국해양사학회와 국립해양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발표회장에는 80여 명의 내외국인 학자들이 참석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세계해양사학회 전·현직 회장을 비롯해 많은 참석자가 “매우 성공적인 대회였고, 부산은 매우 인상적인 도시”라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 해양사 연구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연구자의 발표문은 60여 편이었다. 그나마 해양사 분야 신규 학술 논문은 채 10편도 되지 않았다. 해사법률, 항해안전, 선원 인권, 해양관광, 해양문화 등 비해양사 분야 발표문이 대다수였다. 이에 반해 일본, 중국, 대만 등의 주변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과 북미의 발표문은 예비 논문이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술 논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비해양사 분야 한국 관련 발표장은 다소 썰렁한 느낌을 주었다.
아치섬(조도)과 영도, 그리고 부산 시내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세계해양사대회는 이제 끝이 났다. 다음 2028년 대회는 에스토니아에서 개최된다. 이번 세계해양사대회는 아시아권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대회를 유치했다는 점에서 세계 해운 강국인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 더불어 우리 해양사를 ‘세계해양사’에 편입시켜야 하는 과제도 함께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