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승현의 남북 MZ] 탈주, 자유를 향한 경계 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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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 교양학부 교수(통일학·경영학)

영화 ‘탈주’로 돌아보는 분단의 현실
탈북자 남에서 차별과 편견에 부딪혀
통일만이 분단국가에서 해방되는 길

영화 ‘탈주’가 올여름 개봉작 중 처음으로 관객 수 255만 명을 넘기며 장기 흥행 모드에 들어갔다. 북한·분단을 소재로 한 작품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즈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다시금 관객을 집중시킬 수 있었던 것은 남북 대결이 휴전선을 중심으로 위태롭게 흘러가고 있는 점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을 보장하는 데 남북의 대결 구도나 탈출자의 스토리는 그리 함량이 높은 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귀순 병사의 뻔한 탈출기가 아닌, 실패하더라도 꿈과 자유를 얻기 위해 ‘탈주’를 선택한 전개를 통해 한국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복잡한 상황과 오버랩되며 관객의 흥미를 자극한다. 영화 ‘탈주’는 통제된 북한 비무장지대(DMZ) 부대에서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규남(이제훈 분)의 실패할 자유가 있는 내일(한국)을 향한 질주와 오늘(북한)을 지키기 위한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 분)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북한군과 비무장지대 상황과 다소 어긋난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받아 왔는데 이를테면 자동차를 통한 탈북 과정과 추격 총격전, 고압선과 지뢰밭, 가수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를 듣는 북한군과 한국어에 가까운 북한말 등 현실성이 낮다는 의견이 분분했고 감독도 인정했다. 하지만 감독을 포함하여 우리는 모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분단 상황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판문점을 통한 귀순 병사는 군용차를 몰고 공동경비구역(JSA)의 군사분계선(MDL) 10m 앞까지 왔고 차가 배수로에 빠진 뒤 남쪽으로 향하자 북한군은 AK소총 등으로 40여 발의 총격을 가해 몸 5곳에 총상을 입은 후 가까스로 귀순에 성공했다. 휴전선을 넘어온 필자 역시 3중의 고압선과 수백m의 지뢰밭을 뚫고서야 한국에 올 수 있었고 DMZ 내 근무지에서는 몰래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가며 뉴스를 청취했다. 한때 북한의 MZ세대가 서울 말투뿐 아니라 용어까지 따라 하는 유행이 일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은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하였으며 그 MZ들이 현재 북한군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북한 오물 풍선 살포에 대응해 휴전선 일대에서 재개한 대북확성기의 방송 내용에는 북한군 46사단 전방 DMZ 안에서 귀순을 시도하려는 북한군이 포박돼 압송당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는데 영화가 아닌 현실이다.

그런데 영화 ‘탈주’가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북한과 탈출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제목이 말해주듯이 탈북도, 탈출도, 귀순도, 월경도 아닌 ‘탈주’다. 탈주의 사전적 의미는 ‘감금된 곳에서 몸을 빼어 달아남’이다. 분단은 한민족의 대결 상태를 뜻하므로 영화 ‘탈주’는 분단 현실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향하고 투영된다. 태어나 보니 분단국가인 나라의 MZ세대가 평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군에 입대해서야 긴장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나, 분단으로 사방이 꽉 막힌 섬나라에서 청년들이 마주한 끊임없는 경쟁과 필사적인 도전은 마냥 남 일이 아니다. 영화는 더 이상의 안주가 보장되지 않는 작금의 현실과 미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과 북한의 분단선은 통일을 원하든 아니든 잘못된 ‘민족의 분단선’으로서 그 불편함과 불안함에서 해방될 수 없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북에서 탈주에 성공한 이들이 한국에 와서 겪게 되는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악착같이 더 나은 자유와 꿈을 위한 의지를 불태우는 스토리는 덤덤하지만 납득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실 북한군 신분으로 군사분계선을 통과해 온 필자 또한 목숨을 건 지독한 탈주 끝에 한국에 왔지만 만만치 않은 탈주의 여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녹록지 않은 도전 끝에 교수라는 신분도 얻었지만, 무수한 좌충우돌 끝에 지금은 비무장과 멀리 떨어진 최남단에 있는 섬에서 살고 있지만 여기까지 쫓아오는 사회적 편견과 현실의 핍진함은 여전히 극복해야만 할 벽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희망의 도착점은 늘 도전의 시작점이었고 자유와 의지는 절박한 삶에서 ‘탈주’를 선택할 수 있는 동력이었다. 그래서 아슬했던 휴전선 탈주 경험과 비빌 언덕 하나 없었던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의 도전을 학생들과 공유한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세상으로의 탈주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축적한 후 대륙을 횡단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아직 포기하지 않는 절박한 꿈도 갖고 있다. 분단을 딛고 통일이 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내달음이라면 한 번 더 목숨을 걸만한 성취라고 믿고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껏 선택하고 실패라도 해보기 위해서 간다”라고 했던 영화 속 주인공이 던진 대사의 의미를 여러 환경적 이유로 불안전한 현재에 사는 우리는 이미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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