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박형준 시장께 드리는 질문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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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사회부 차장

18일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보이는 엘시티와 달맞이고개 아파트. 늦은 오후 피서를 위해 해수욕장을 찾은 시민들이 이들 아파트를 배경으로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이현정 기자 18일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보이는 엘시티와 달맞이고개 아파트. 늦은 오후 피서를 위해 해수욕장을 찾은 시민들이 이들 아파트를 배경으로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이현정 기자

일본 후지산 아파트 얘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아이에스동서(주)의 이기대 아파트 건립의 문제점을 짚는 보도를 시작한 후 최근까지도 기자에게 가장 많이 전달된 뉴스입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일본의 한 건설사가 완공을 코앞에 두고 다 지은 아파트를 철거합니다. 이 아파트는 후지산을 가리고 조망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건설 초기부터 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던 건물입니다. 4층 이하로 줄이라는 반발이 있었지만 건설사 측은 애초 11층으로 계획했던 건물을 10층으로 낮춰 건설을 강행했습니다.

하지만 후지산 경관을 해친다는 우려가 계속되자 건설사 측은 결국 다 지어 놓은 아파트를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100억 대의 손해를 감수하고도 철거를 결정한 이유는 부정적 여론으로 회사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이 더 큰 손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 선례 덕에, 앞으로 일본에서는 경관을 훼손하는 건물은 쉽사리 짓기 힘들 겁니다. 이 뉴스는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에 경종을 울린 사례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반대로 부산은, 나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습니다. 욕망을 포장해 폭력적으로 박아 올린 엘시티와 해운대 달맞이 능선을 깔아뭉갠 아파트, 이번엔 보란 듯이 턱밑에서 이기대를 정면으로 가리는 아파트라뇨. 업자들은 과거의 경험으로 부산시민을 기만하는 노하우를 축적해가고 있지만, 부산시민들에게는 나쁜 경험들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 좋은 풍광은 땅 가진 우리 거야, 아파트 가진 우리 거야. 보고 싶으면 돈 주고 사서 봐.’ 나머지 부산시민을 2등 시민으로 만드는 이 같은 나쁜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부산을 향한 자조는 늘어갑니다. 부산에 남아도는 게 아파트인데, 지을 데가 없어 이기대 앞 자투리땅까지 아파트냐, 해도해도 너무한다 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옵니다. 쇠락해가는 도시를 보여주는 징조라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오고 심지어 부산을 떠나고 싶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내가 안 되면 내 자녀만이라도 부산을 떠나보내겠다 합니다. 언제까지 부산시민을 이렇게 2등 시민으로 만드실 건가요.

이기대 코앞에 만일 아파트가 지어진다면, 박형준 시장 때 허가 난 아파트라는 꼬리표가 내내 붙어 다닐 겁니다. 물론 “누가 저걸 허가해줬느냐”는 원망이 나올 때마다 오은택 남구청장의 이름도 빠지지 않겠지요.

보도 초창기부터 부산시장께 묻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질문지를 보내라 하셨죠. 이제야 질문지를 보냅니다. 시장님이 공원 일몰제 위기에 놓인 사유지까지 사들여 이기대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예술공원으로 만들겠다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부산시민이 아끼고 사랑하는 이기대의 가치를 부산시장도 알고 있고, 시민들과 같은 마음이구나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이기대 예술공원 코앞에 얼토당토 않은 아파트 건립 계획이 수립되고, 공무원들은 지구단위계획 의제설정과 경관심의 프리패스라는 무리수까지 둬가며 원래 용적률을 넘어선 최대 용적률 아파트의 길을 터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님은 왜 침묵하십니까.

부산시민은 공무원을 투표로 선출하지 않았습니다. 부산시민이 선출한 것은 부산시장입니다. 마땅히 부산시민의 입장을 대변하셔야 합니다.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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