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새만금 잼버리 1년, 파행은 끝나지 않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지 선정부터 운영·대처까지 총체적 실패
책임 규명 하세월, 정치권은 '네 탓' 공방만
다른 지자체 국제 행사에 '반면교사' 돼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가 폐막 1년을 맞았다. 지난해 8월 1일부터 12일까지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렸던 대회는 총체적 준비 부실로 ‘역대 최악의 국제 행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밖으로는 국제적 망신, 안으로는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도 파행의 여파는 계속되고 있다. 책임 소재 규명은 하세월이고 ‘네 탓’ 공방만 난무한다. 무슨 까닭일까.


지난해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조기 퇴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조기 퇴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 악몽의 12일

6년 준비 끝에 열린 2023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전 세계적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158개국에서 4만 3000명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도 컸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드넓은 간척지 야영장에 햇볕을 피할 그늘이나 더위를 식힐 샤워장이 없었고 급수 시설도 태부족했다. 첫날부터 온열 질환자 400여 명이 속출했다. 영국이 조기 퇴영을 결정했고 미국과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도 뒤를 따랐다. 개최 시기 8월이라면 충분히 예견된 일인데, 어째서 아무런 대비가 없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쏟아지는 비판에 정부가 대회 조직위원회를 대신해 직접 나섰으나 사태는 쉽게 수습되지 않았다. 온열 질환자만 하루 1000명이 넘어가고 태풍 카눈까지 북상했다. 정부는 결국 대회 시작 일주일 만에 야영지 조기 철수라는 결정을 내렸다. 부랴부랴 대회 장소를 전국 곳곳으로 옮기고 K팝 콘서트와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을 위로했지만 '실패한 대회'라는 평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 총체적 실패

무려 117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새만금 잼버리는 기대한 만큼의 막대한 경제효과를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국가와 도시 이미지만 먹칠하고 말았다. 세계스카우트연맹은 파행 원인으로 조직위의 미숙한 운영을 지적했다. 안전, 보안, 청소년 보호, 의료지원, 위생, 현장 이동, 날씨 대응 등에서 상당한 결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간척지가 어떻게 대회 부지로 선정됐는지부터가 의문이다. 드넓은 평야라는 장점은 있지만 배수가 원활하지 않고 뙤약볕을 피하기 힘들다는 약점이 더 커서 야영지로는 부적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잼버리 대회 종료 이후 수백억 원을 들여 설치한 샤워장과 급수대, 상하수도 등 야영 관련 시설은 채 열흘도 쓰지도 못하고 철거됐다. 잼버리 부지는 원래 ‘관광 레저’로 묶여 있다가 농업용지로 전환된 땅이다. 막대한 사업 재원을 농지 기금의 투입으로 해결하기 위해 용도를 변경했던 터라 대회 종료 뒤에는 야영장이 아닌 농경지로 다시 원상 복구해야 했다. 그런데 시설 철거에도 다시 수십억 원의 돈이 들어갔다.

결국 전북도가 새만금 SOC(사회기반시설) 사업의 조속한 추진을 위해 잼버리 대회를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배경에는 이런저런 사정들이 숨어 있었다.


지난해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중 발생한 온열 질환자가 야영지 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중 발생한 온열 질환자가 야영지 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 뒤처리도 파행

최근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잼버리 대회에 쓰겠다고 했던 건물이 얼마 전 완공됐다. 이름하여 ‘글로벌 청소년 리더센터’. 429억 원을 들여 당초 스카우트 박물관, 야영장 등 부대시설에 교육·숙박 시설을 갖춘 복합 공간으로 기획한 곳이다. 그런데 폐막하고 10개월이 흐른 지난 6월에야 완성된 것이다. 대회 메인 시설을 다 짓지도 못한 채 국제행사를 치른 셈이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금도 쓰임새조차 확정되지 않은 이 건물에 매년 20여억 원의 운영비가 들어간다고 한다.

부실 논란의 당사자인 잼버리 조직위는 폐막 11개월 만인 지난달 12일에 해산했다. 해산 직전까지 올해 조직위 예산으로 약 17억 원이 넘게 편성됐는데, 사무총장 등에게 과도한 급여가 지급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달 초에는 잼버리 조직위가 200억 원에 가까운 예비비를 긴급 편성했으나 47억 원의 잔액이 남아 예산 집행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요지의 국회예산처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세계스카우트연맹 역시 재정 투입을 통한 한국 정부의 개입을 문제 삼은 바 있다. 지난 4월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관련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해 막대한 재정 지원이 사실상 대회를 좌지우지했고 연맹 고유의 기획과 운영을 소외시켰다고 주장했다.


■ 늦어지는 책임 규명

1년이 지났지만 파행 책임을 놓고 지루한 ‘네 탓’ 공방만 벌어지고 있다. 특히 여야 정치권은 서로에 대한 책임 전가에 여념이 없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시절 5년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조직위와 전북도가 대회를 성공시킬 역량이 없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장 중요한 마지막 1년은 윤석열 정부 시기였다’고 반박한다. 총사업비 1171억 원 중 문 정부가 집행한 예산은 156억 원에 불과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마당에 감사원 감사는 무한정 지체되고 있다. 감사 대상 기관은 여성가족부, 조직위, 전북도 등 11곳인데, 지난해 9월 시작된 감사가 11개월째 감감무소식이다. 아직 중간 단계인 ‘보고서 작성’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다 감사 결과 최종 발표 시기조차 미정이다. 잼버리 사태는 아무도 책임을 지는 이 없이 망각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8월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파행을 거듭하자 정부가 야영지 철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새만금 잼버리 대회가 파행을 거듭하자 정부가 야영지 철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제2, 제3의 새만금 안 나오려면

새만금 잼버리 파행을 살피는 일은 또 다른 지자체의 여러 국제 행사들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2010년 이후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각 지자체의 국제 행사 유치 움직임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행사 시설의 사후 활용 방안을 제대로 세우지 않은 채 무턱대고 개최만 하고 본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부실한 계획으로 인한 예산 초과 투입 등 부작용도 만만찮다. 현재 개최를 앞두고 있거나 추진 중인 국제 행사들이 상당수인데 지금이라도 운영 상황 전반을 철저히 다시 따져봐야 한다. 나아가 실효성 있는 사후 평가 제도가 필요하다. 지자체의 차기 국제 행사 유치 때 행사의 질을 높이고 예산 낭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되도록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부산은 지난해 월드엑스포 유치에 실패했지만 다양한 국제 행사를 치른 경험이 있고 향후에도 더 많은 국제 행사를 치를 게 분명하다. 이번 잼버리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반면교사의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만금 잼버리는 올림픽과 월드컵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우리의 자부심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제2, 제3의 새만금 잼버리 사태가 안 나오려면 파행의 실체와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은 필수다. 이와 함께 재발 방지책 마련과 제도 개선 노력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진영논리에 좌우되거나 유야무야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선 안 된다.


김건수 논설위원 김건수 논설위원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