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제주도 유감
플랫폼콘텐츠부 선임기자
10년 전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리고 숙소로는 리조트를 골랐다. 제주도의 인기 음식인 갈치와 흑돼지도 여러 번 먹었다. 당시에는 자동차, 숙소, 식사 모두 부담하기 힘들 만큼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2년 전 취재 때문에 제주도에 다시 갔다. 이번에는 혼자였는데 모든 사정이 과거와 많이 달랐다. 숙소, 관광지 입장료, 카페 등도 비쌌지만 음식이 가장 문제였다. 갈치와 흑돼지를 먹고 싶었지만 1인분을 판매하는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취재비는 한정됐는데 혼자서 한 끼에 5만~10만 원을 주고 갈치, 흑돼지를 2~3인분이나 먹을 수는 없었다.
결국 아침, 저녁 식사는 호텔에서 해결하고, 점심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을 사 먹어야 했다. 첫날 숙소로 이동하던 중 대학교 근처 식당에서 학생들이 많이 찾는 싼 돈가스 가게를 발견한 건 운이 좋은 경우였다.
취재 때문에 전국 여러 도시를 두루 돌아다니는데, 비싼 식당도 적지 않지만 취재비로 감당할 수 있는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식당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제주도의 경험은 당혹스러웠다.
알고 보니 이런 상황은 기자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최근 제주도의 음식 가격은 물론 식당의 행태에 불만을 토로하는 여행객이 늘었다. 유튜브나 신문, 방송에 ‘제주도에서 바가지를 썼다’거나 ‘너무 비쌌다’, 혹은 ‘질이 낮은 음식을 받았다’는 영상과 기사가 오르기도 했다. 이미 경험해 본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컨슈머인사이트’라는 소비자 리서치 전문기관이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제주도에 갈 돈이면 일본에 갈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기관은 ‘실제 일본 여행비는 제주도의 2.2배이기 때문에 이런 인식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핵심은 인식이 오해냐 아니냐가 아니다. 소비자들은 ‘제주도는 비싸다’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상황에 대처하는 제주도나 여행 관련 업계의 태도는 그다지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비싸다’는 불만에 대해 제주도 행정당국이 ‘잘 찾아보면 싼 음식점도 많다’고 밝힌 게 단적인 예다. 물론 잘 찾아보면 싼 음식점은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짧은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여행객에게 시간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싼 음식점을 잘 찾아보려고’ 귀한 시간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나 여행 관련 업계의 이런 태도는 ‘그래도 온다’라는 믿음이 바탕에 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제방 붕괴는 손가락만 한 구멍에서 시작한다는 걸 되새겨 보길 바랄 뿐이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