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위도가 가장 높은 공연장 '하르파'
아트컨시어지 대표
북위 66도부터 북극권이라 부른다. 여름이면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겨울에는 해가 뜨지 않는 극야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다. 아이슬란드는 이 지역에 면해 있고, 수도 레이캬비크는 북위 64도에 해당한다. 이곳에 ‘하르파(Harpa)’가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위도가 높은 극지방에 위치한 공연장이다.
필자는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면 공연장과 미술관과 같은 문화공간을 사전에 찾아보는 게 루틴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전체 인구가 30만 명, 수도 레이캬비크 인구는 12만 명에 불과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객석 수 1800석의 콘서트홀을 만난 것이다. 결국 일정을 조정해서 하르파에서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다.
2011년 개관한 하르파는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역사가 길지 않음에도 건축과 콘서트, 콘퍼런스 센터로서 이미 많은 수상 경력이 있다. 2013년 ‘미스 판 데어 로에’ 현대 건축상을-EU 집행부와 미스 판 데어 로에 재단이 2년마다 유럽 최고 건축물에 부여한다-수상했으며, 1923년 창간한 클래식 전문 매거진 영국 그라모폰에서는 2000년대 이후 지어진 최고의 콘서트홀 중 하나로 선정했다. 아이슬란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업해 제작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필립 글래스의 현대음악 연주, 윈튼 마살리스와 같은 재즈 뮤지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같은 세계적인 단체도 이곳에서 연주한 이력이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건 하르파는 덴마크의 건축사무소 헤닝 라르센 아키텍츠와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이 합작해 설계했다는 점이다. 헤닝 라르센은 코펜하겐 오페라극장을 디자인한 전위적인 건축가 중 한 명이며, 올라퍼 엘리아슨은 자타공인 우리 시대 최고의 예술가이다. 이들이 협업해서 만든 파사드는 하르파를 가장 특징적으로 만들어 준다. 유리와 철제로 이루어진 하르파 전체 건물의 구조는 화산섬인 아이슬란드의 해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무암 절벽에서 착안했다. 현무암의 수많은 구멍 모양에서 나온 기하학적인 모듈 구조는 마치 아이슬란드 해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주상절리와도 같다. 북구의 자연을 건물에 가져온 것이다.
하르파의 한 면은 바다 쪽을 향하고, 다른 한 면은 레이캬비크 도시를 향해 있다. 이는 설계 단계부터 건물이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콘서트나 오페라 감상이 아니더라도 낮에도 언제든지 방문해서 도시 경관을 보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극지방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문화로 극복한 좋은 사례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