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10년 담금질로 태어난 플래그십 콘서트홀, 엘프필하모니
아트컨시어지 대표
브람스가 태어났고, 비틀스가 실제로(리버풀이 아닌 함부르크 리퍼반) 데뷔했으며, 말러도 지휘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오페라극장이 있는 곳이 함부르크다. 현재는 세계적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이끄는 함부르크 국립발레단과 독일 명문 NDR 북독일방송교향악단이 이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또한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가 운영하는 네 곳의 뮤지컬 전용 극장에선 ‘라이온 킹’을 비롯한 동시대 흥행 뮤지컬이 매일 밤 공연된다. 2017년엔 엘프필하모니가 개관했다.
엘프필하모니가 위치한 부지는 과거 항구로 쓰이다가 새로운 항구가 개발되면서 지역 전체가 창고로 변했다. 게다가 유럽이 철도와 고속도로망으로 통합되면서 항구 물동량이 감소했고,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에 함부르크시는 2000년 하펜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오래된 항구의 창고들을 사무실, 호텔, 상점, 오피스빌딩과 주택지역으로 변모시키려는 계획이다. 그 중심에 함부르크 최고층 주거빌딩과 호텔 위에 지어진 콘서트홀 엘프필하모니가 있다.
하지만 엘프필하모니가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2010년 첫 함부르크 방문 당시 엘프필하모니 공사 현장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이내 손님을 맞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개관은 여러 차례 연기됐다. 예정 부지였던 곡물 창고는 건축사적 의미가 큰 것으로 밝혀지면서 문화재로 지정돼 함부르크시는 기존 창고 건물 위에 새 건물을 올리기로 한다. 3년으로 예상된 건축 기간은 10년 가까이 소요됐고, 2억 4100만 유로로 예상한 예산은 3배가 넘는 8억 6600만 유로, 현재 환율로 따지면 한화 1조 2000억 원이 넘는다.
갈등과 우려 속에 태어난 엘프필하모니는 대성공이었다. 2017년 개관 후 7년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함부르크의 이 랜드마크를 찾고 있다. 필자도 7년간 공연 관람을 위해 다섯 차례 걸음 했는데, 방문할 때마다 그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 통계를 보니 콘서트홀 방문을 비롯해, 함부르크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플라자까지 연인원 360만 명이 엘프필하모니를 찾는다고 한다. 하루에 1만 명이 방문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난 공간 중 상당수는 원안대로 순조롭게 진행하지 못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그렇고, 필하모니아 드 파리도 그렇다. 대부분 부침과 갈등이 있고, 공기가 연장됐으며, 공사비가 갑절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태어났다. 그만큼 제대로 된 문화공간을 만나는 일은 녹록지 않다. 북항에 서게 될 부산 오페라하우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계획과 다르게, 애정과 기대로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만큼 제대로 된 시그니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