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수도권에 보내는 전기요금청구서
지방 기피시설 토대 수도권은 쾌적한 생활
전력 생산지 전기요금 차등화 특별법 시행
지역민 고통·손해 합당한 보상 첫발 돼야
서울·인천·경기가 넘쳐나는 쓰레기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수도권 3개 시·도가 함께 이용하는 인천의 수도권매립지가 용량 포화로 내년 사용이 종료돼 서둘러 대체 매립지를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취, 분진 등 환경 문제와 극심한 주민 반발을 초래할 게 뻔한 쓰레기 매립지를 떠안겠다는 지자체가 한 곳도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발생하는 생활폐기물은 하루 3200t이다. 마포, 강남, 양천, 노원 등 4곳의 쓰레기소각장에서 이중 2200t을 처리하고, 나머지 쓰레기 1000t은 인천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보내 파묻고 있다. 서울시는 매립지를 조성할 땅이 없다며 이번에도 인천시가 ‘총대’를 메어줬으면 하는 눈치다.
인천시민들은 쓰레기는 발생지 처리가 원칙인데, 왜 서울 쓰레기를 우리가 떠안아야 하느냐며 폭발 직전이다. 고통과 피해를 묵묵히 참아왔지만, 더 이상은 일방적인 희생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매립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폐쇄해 서울과 경기도의 쓰레기 반입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태세다.
경기도는 경기도대로 이러다 대체 매립지 부담을 떠안는 것 아니냐며 안절부절이다. 3개 시도가 이대로 대체 매립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수도권의 쓰레기 대란은 물론, 지자체 간 첨예한 갈등이 벌어질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김포를 서울에 편입시켜 서울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김포매립장에서 처리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나마 생활 쓰레기는 수도권 지차제들이 자체 해결하고 있지만, 전체 쓰레기의 90%에 달하는 사업장 쓰레기는 수도권 외곽으로 옮겨져 처리된다. 지방 곳곳에 하루가 멀다 하고 ‘수도권발 쓰레기산’이 생겨나고, 소각장에서는 1년 내내 매캐한 유독 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재산 가치를 떨어뜨리고,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혐오기피 시설을 우리 지역에 두고 싶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한편으로는 나의 손해에는 극도로 예민하면서도, 남의 고통에는 한없이 둔감한 수도권 주민들의 이중성이 새삼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전력 역시 마찬가지다. 수도권 주민들이 소비하는 막대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지역민들은 위험천만한 원전을 머리에 이고 산다. 원전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지역 곳곳에 고압 송전탑이 세워지고, 주민들은 전자파 피해에 대한 불안감과 지가 하락 등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있다. 각종 질환과 건강 이상에 시달려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의 전력자립도는 고작 8.6% 남짓이다. 수도권은 철저하게 지방에 전력을 의존하고 있다. 고리 1호기는 원전에서 막대한 열에너지를 방출하고 남은 방사능 덩어리인 사용후핵연료(핵폐기물)로 이미 꽉 찼다. 하지만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짓기 위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은 수도권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21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됐다. 원전에서 만드는 전력은 수도권에서 쓸 테니, 원전 쓰레기 처리 문제는 지역에서 알아서 하라는 태도다.
원전이 그렇게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면 왜 한강변에 지어 전력을 자체 생산하지 않느냐는 반문에는 비싼 땅값과 국가안보 위해, 국민 정서와 배치된다는 둥 각종 억지 논리를 갖다 붙인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토록 견고해보이던 수도권식 논리에도 균열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4일 시행에 들어간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다. 그간 전력 소비지인 수도권과 전력 생산지인 지방이 똑같은 전기요금을 부과 받아왔다. 환경오염 등 각종 부담에 시달리며 전력을 생산하는 지방이 정작 사용량은 서울보다 훨씬 적다. 정의에도 상식에도 맞지 않다는 지역의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부산·경북·전남 등 원전밀집지역의 전기요금이 서울 등 수도권보다 싸진다. 지역별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전기요금이 다르게 매겨지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적용 단계에 이르면 왜 필수 공공재인 전력요금에 차등을 두느냐는 수도권 주민들의 반발이 불 보듯 예상되는 만큼, 부산시와 지역 정치권이 치밀한 논리로 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수도권은 그간 지방 주민들의 희생 위에서 우아하고 쾌적한 삶을 구가해왔다. 위험의 외주화, 혐오의 지방화가 수도권 일극체제를 지탱해온 대한민국의 성공 공식이었다. 지방 주민들은 마치 대학에 보낸 오빠의 학비를 대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가며 군살이 박히도록 미싱을 돌리던 1960~70년대의 여공처럼 묵묵히 희생을 감수해왔다. 그 오빠가 집안은 일으켜 세웠지만, 여동생의 노고는 나몰라라 하며, 아직도 당연한 듯 뒷바라지를 강요하고 있다. 이제는 합당한 대가를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박태우 사회부 차장 wideneye@busan.com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