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선으로] 감정의 거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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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공동연구원

‘감정적’이라는 지적은 보통 낙인과 불명예를 의미한다. 그 때 그 사람은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자기의 취약함을 드러내었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협상력을 떨어뜨렸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그런 지적은 주로 사회적 약자·소수자에게 가해지고, 거기에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그것을 억누르는 것이 더 우월한 처세이자 공적인 태도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감정이 많이 드는 일이고, 따라서 철두철미하게 감정에 관한 일이다.

누구더러 감정적이라는 말은, 자기들이 허락한 특정 경로로만 그 감정이 흐르게끔 바라는 의미를 깔고 있다. 남들의 감정이 내가 예측한 특정 방향으로만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이야말로 극도로 감정에 북받친 일이다. 누군가가 특별히 감정적이라는 것은 그걸 지적하는 내가 상대적으로 덜 감정적이라는 뜻인데, 위에서 보았듯이 감정을 덜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남을 지적할 정도로 충천한 그 감정이 적당한 거처를 못 찾고 있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체제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동원한다. 그렇게 느껴야만 하는 공식을 정해두고 그것을 공적인 것으로 만든 다음 나머지 것들에게 ‘감정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식이다. 그렇게 유도된 감정들이 한번 내 안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내가 느끼는 것이기에 이내 내 것이 된다. 체제가 인정한 공적인 감정과 ‘감정적’ 딱지가 붙은 감정 사이의 경계는 그런 식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체제에 의해 허락되어 거기에 뭐가 있는지 스스로 성찰되지 않은 감정이야말로, 때로는 가장 나쁜 의미에서 ‘감정적’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온전히 내 것으로 여겨지듯이, 그렇게 한번 안팎으로 허가된 감정은 보통 감정적인 것으로 도드라져 인식되기 어렵다. 그것을 성찰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감정적이지 않은 체하는 것들의 감정을 주의깊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가령 힘세고 공적인 조직 속 일처리가 실은 더 은밀하게 사적이고 감정적인 경우들을 주위에서 본다.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감정을 잘 제어하는 듯한 이들은, 정작 중요한 결정과 정보 전달은 조직 내 특정 사람들이 배제된 담배타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덜컥 해버리고는 한다.

공적인 의사표명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적절한 거처에 잘 놓여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모든 감정이 그 자체로 정당하거나, 그것 그대로 표출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적절한 모양과 거처를 찾기 이전에, 내가 어떤 것에 왜 이토록 반응하는지를 알려주는 첫 단초로서 감정은 중요하다. 이 감정이 왜 드는지 살피고 이것이 혹여 남과 세계를 부당하게 추상화하는 데로 나아가진 않는지 경계하면서, 그 감정이 출발한 자리에 초라하게 선 나를 돌보고 그것을 적절한 거처로 향하게 하는 것, 거기에 우리가 갈고 닦을 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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