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지방에 권한을 줘야 능력도 생긴다
논설위원
대구·경북 행정통합 재추진 의기투합
행안부·지방시대위 가세 전국적 이슈
부울경 특별연합 무산 뼈아픈 후폭풍
행정통합 실질적 효력은 지난한 과정
지방정부 수준 과감한 권한 이양 핵심
지방분권형 개헌의 출발점으로 삼자
행정통합이 다시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17일 대구에서 열린 ‘22대 국회의원 당선인과 함께하는 대구·경북 발전결의회’에서 ‘대구·경북(TK) 행정통합’ 카드를 꺼내 들면서다. 그는 행사 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와 경북이 통합해 인구 500만의 대구직할시가 되면 한반도 제2의 도시가 된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행 3단계 행정 체계에서 도를 없애고 광역시와 국가가 바로 연결되는 2단계로 전환하면 복잡한 행정 체계를 단순화해 행정 효율도 극대화한다’라고도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고 TK 행정통합을 위한 태스크포스(TF) 회의가 열리는 등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6월 4일 두 단체장과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우동기 위원장이 만나 통합 필요성과 추진 방향,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행정통합이 국가적 의제로 부상한 것이다. 대구·경북은 2026년 지방선거에서 통합 광역단체장을 뽑는다는 계획이다. 성사되면 광역 지자체 통합 국내 첫 사례다.
TK 행정통합이 급물살을 타는 상황을 지켜보는 부울경은 곤혹스럽다.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어젠다를 선점당하고 향후 국가적 논의에서 끌려다닐 수도 있다. 부산으로서는 홍 시장의 ‘한반도 제2 도시 대구’ 발언이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제2 도시 위상이 인천에 밀리느니 마느니 하는 터라 더 그렇다. 부울경 특별연합 출범을 코앞에서 걷어찬 후폭풍이다. 2018년 6월 공동협력기구 설립 후 부울경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특별연합 규약안이 2022년 국무회의를 통과했을 때만 해도 부울경 메가시티에 대한 꿈이 컸다. 하지만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김두겸 울산시장이 부정적 입장을 취하면서 2023년 1월 출범을 앞두고 특별연합은 좌초됐다.
행정통합 주도권을 TK에 빼앗긴 건 뼈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가슴만 치고 있을 일도 아니다. 행정통합이 호락호락한 사안도 아니다. 홍 지사가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TK 행정통합을 주도한 건 이 도지사다. 2020년 이 도지사 제안을 권영진 당시 대구시장이 받아들이면서 대구·경북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했다. TK 행정통합을 무산시킨 건 민선 8기 대구시장에 당선된 홍 시장이었다. 또다시 대구와 경북이 의기투합하고 있지만 통합 지자체 명칭부터 미묘한 입장차를 보인다. 단순한 사안 같지만 험난한 통합 과정의 전조다.
TK 행정통합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홍 시장 속내야 알 수 없지만 균형발전을 향한 이 지사의 뚝심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는 국회의원과 도지사를 지내며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온 균형발전론자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짱을 뜨기 위해서는 지역이 뭉쳐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윤석열 정부 초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았던 그는 지방분권형 개헌을 역설했다. 단순한 행정통합을 넘어 국방과 외교 외 모든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완전한 자치정부를 이뤄야 지방소멸과 초저출생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행정통합의 전국적 확산 필요성도 일관되게 주장한다.
TK 행정통합과 부울경 특별연합 무산의 전례에서 보듯 광역 단체의 통합은 지난한 과정이다. 주민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고 각종 법령도 만들어야 한다. 중앙이 주도하면 첫걸음을 떼기 어렵고 지방이 주도하면 최종 관문을 넘기 어렵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단순한 기계적 결합으로는 효과를 이루기도 어렵다. 마·창·진 통합 결과가 그렇다. 거점 도시 육성을 목표로 통합 창원시를 출범시켰지만 결과는 하향 평준화였다. 광역 단위 행정통합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행정구역의 결합이 아니라 도시와 지역이 연계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하는 광역적 공간을 새로 구성하는 일이어야 한다.
행정통합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완전한 자치정부 수준의 혁명적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이 지사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지름길이 지방분권형 개헌이다. 1995년 시작된 지방자치 30년을 앞둔 지금 행정구역의 근본적 변화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운명은 그 필요성을 더 강하게 뒷받침한다. 부산과 경남도 행정통합 연구를 이어가고 있고 광주·전남 행정통합, 충남·충북·대전·세종 특별연합 논의도 진행 중이다. 전국적 행정통합 논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부산·경남 행정통합 1차 토론회에서 나온 이야기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거였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지역은 이제 뭉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다 죽게 생겼는데 먼저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