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이우환
아트컨시어지 대표
문화적으로 역량이 있는 대도시 미술관은 한두 개로는 역할을 다하기 어려워 분담한다. 장르로 구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기로 나뉜다. 프랑스 파리의 주요 미술관이 그러하다.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이 1848년을 기점으로, 또 다른 퐁피두 미술관은 1914년을 기점으로 오르세 미술관과 시대를 구분해서 전시된다. 독일 베를린도 마찬가지이다. 베를린 신 국립미술관과 구 국립미술관은 시대별로 나뉘고,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으로 다시 세분된다.
함부르거 현대미술관(Hamburger Bhanhof)에서 반호프(Bahnhof 줄여서 Bhf.)는 기차역을 의미하는데, 2차 세계대전 중 파괴된 건물이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1884년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1906년 교통-건축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단장하였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본격적인 복원은 베를린 도시 탄생 750주년을 맞아 국가 차원에서 진행돼 1996년이 되어서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기차역을 복원해서 전시장 외관도 내부도 독특하다. 열차 플랫폼이었던 큰 홀을 중심으로 미로처럼 연결된 여러 개의 전시관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을 찾았던 이유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28일까지 이어진 이우환 선생의 전시가 있어서다. 해외 주요 미술관에서 한국 작가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다. 2010년엔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합작으로 일본 나오시마에 이우환 미술관을 개관했고, 2015년에는 부산시립미술관 내 이우환 공간이라는 이름으로 상설 공간이 마련됐다. 2022년은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 이우환 미술관(Lee Ufan Arles)이 열렸다. 그리고 세계 미술계의 중심이 된 도시 베를린의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 회고전은 선생의 경력에 정점을 찍는 중요한 전시라고 생각했다. 2000년까지는 독일에서 자주 전시했으니, 독일이 선생을 세계로 나가게 뒷받침한 셈이다.
함부르거 반호프 초청 특별 회고전은 이우환 창작 인생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57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초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망라했다.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동풍, 조응, 관계항, 모놀로그 등 그의 작품은 사물이 배치된 공간과 나의 관계를 세워 주고, 이를 통해 세계를 열어 준다. 사물 그 자체보다는 전시된 사물이 외부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는 데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에도 많은 베를린 시민이 걸음 하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전시 말미인 지난달 18~20일은 아시아 여성 최초로 한국인 지휘자 김은선이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해 화제가 되었다.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도시 베를린에서 음악과 미술, 우리 K예술이 활약하는 장면들에 가슴 뛰었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