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동 언덕에 우뚝 선 황금 사원…부산 속 ‘작은 티베트’ [별별부산] ③
[광성사]
국내서 유일한 정통 티베트 불교 사원
황금 지붕 등 건물 외형만으로도 눈길
달라이 라마 사진에 만다라 장식·마니차 등
법당 내부 모습도 우리나라와 사뭇 달라
티베트 출신 스님들이 직접 설법 전파
신도 300명 안팎…석탄일 법회도 진행
부산 서구 아미동 도시철도 1호선 토성역 8번 출구로 나와 부산대병원을 오른쪽에 두고 오르막길을 걸었다. 아미초등학교를 향해 200m 정도 올라가다 아미동시장 입구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천마산 앞을 막고 선 노란색 건물이 눈길을 붙잡는다. 적색 외벽의 꼭대기 층에 ‘한국티벳불교사원’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그러고 보니 꽤 이국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티베트 불교의 상징처럼 불리는 라싸의 포탈라궁이 연상되는 외형에 끌려 발길을 옮겼다. 오르막길 끝의 회전교차로를 지나 아미초등학교 쪽으로 100여m를 더 오르니 4층 높이 건물 앞에 다다랐다.
대한민국에 하나뿐인 티베트 불교 사원 광성사다. 우리나라에서 티베트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곳은 울산과 대구, 서울 등 여러 지역에 있다. 하지만 단독 건물을 갖추고 티베트 스님이 상주하며 대중을 상대로 티베트 불교 법문을 전파하는 곳은 부산의 광성사가 유일하다고 한다.
광성사는 한국 불교 사찰을 연상케 하는 이름과 달리 황금색 지붕을 얹은 건물 외형부터 남다르다. 황금색으로 칠하거나 금을 입힌 지붕이나 기와는 티베트 불교 사원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포탈라궁을 포함해 라싸에 있는 여러 티베트 불교 사원과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의 사원들도 대부분 황금색 지붕 아래에 불상을 모시고 있다.
광성사가 티베트 불교 사원이라는 것을 알리는 또 하나의 상징물은 황금 지붕 위로 솟아 있는 사슴 조형물이다. 선박 조타기나 수레바퀴를 빼닮은 둥그런 원을 가운데 두고 사슴 두 마리가 양쪽에서 바라보는 형상으로 역시 황금색이다. 석가의 일대기를 여덟 장의 그림으로 묘사한 팔상도 가운데 하나인 녹야전법상을 표현한 것으로, 부처님 말씀을 사슴이 경청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법륜이라고 불리는 원형 조형물은 부처님 말씀, 암수 두 마리의 사슴은 중생을 뜻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벽화나 법당 안에 걸린 탱화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를 티베트 사원에서는 조형물로 만들어 건물 가장 높은 곳에 세운다고 한다. 마치 이장님 전달 사항이 마을 구석구석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며 설치한 마을회관 옥상 스피커처럼.
광성사 안으로 발을 들였다. 1층의 공양실과 2층 지장전을 지나 한 층 더 올라가면 불국당이라는 이름표를 단 본 법당과 스님이 공부하며 정진하는 자비실이 나온다. 사미니승의 안내를 받아 자비실에서 주지인 소남 스님을 만났다.
1971년 라싸에서 태어난 소남 스님은 10대 중반에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인도에서 출가, 달라이 라마로부터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았다. 2004년 한국에 온 이후 광성사 주지를 맡아 티베트 불교와 문화 전파를 이어오고 있다.
스님은 그동안 티베트 불교 경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노력을 쏟아 <티벳 스승들의 수행 이야기> <티벳스님과 함께하는 반야심경 공부> <성스러운 따라보살 기도문> 등의 책을 펴냈다. 10여 년 전 한국으로 귀화한 스님은 우리말 구사가 아주 자연스럽다. 매주 토요일 오후 열리는 람림 공부를 직접 진행한다. 람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내용으로, 티베트 불교의 기본이자 최고 경전으로 꼽힌다.
취재를 위해 세 차례 광성사를 방문하는 동안 모두 3명의 승려를 만났다. 소남 스님 외에도 앞서 말한 사미니승과 로남 스님이 그들이다. 한국인인 사미니승 역시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로부터 사미니계를 받고 이곳에서 수행하고 있다. 티베트 국적인 로남 스님은 귀화 절차를 밟고 있다. 수년 전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여전히 귀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외교 문제 때문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자비실 앞 불국당은 가로 액자에 담긴 티베트 라싸의 전경 사진을 보고 입장하게 되어 있다. 티베트 법당이라는 무언의 알림처럼 법당 풍경이 우리나라 사찰 법당과 사뭇 달랐다. 양쪽 벽면에 큰 탱화가 있고 가운데 주불 주위로 여러 불상이 놓여 있다. 큰 광배 장식을 한 주불 앞에 놓인 의자에는 티베트 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 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주지 스님이 법문하는 자리는 그 아래에 있다. 사부대중을 향한 스님의 법문은 그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달라이 라마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라는 뜻이 담긴 듯했다.
왼쪽 벽면에는 불법의 핵심을 둥근 도형으로 표현한 만다라 장식이 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샌드 만다라인데, 모래처럼 세밀히 다듬은 돌가루를 이용해 높낮이가 있는 입체형으로 만든 것이다. 형형색색의 색감과 일일이 수작업을 거친 세밀함은 그야말로 예술 작품의 경지였다.
원형 금속 상자에 담긴 티베트 대장경도 만날 수 있다. 티베트어로 깡규르라 부르는데, 상자 속에는 티베트 종이에 조밀하게 인쇄된 경전 100권이 돌돌 말려 있다. 상자 아랫부분을 회전할 수 있게 만들어 손으로 돌리면서 경전을 받아들이는 마니차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읽을 수 있는 경전은 법당 오른쪽 서랍에 보관되어 있다. 100개의 나무 상자에 담긴 경전을 펼치면 목판 인쇄 경전이 펼쳐진다. 스님이 법회를 진행할 때 하나씩 꺼내 경독을 한다고 한다.
광성사는 매주 수요일과 토·일요일 오후 정기적으로 불교 기초와 경전·람림 공부를 진행하고 있다. 법당 내부와 사원 곳곳에 등이 달린 모습은 우리나라 사찰과 마찬가지다. 음력 4월 8일에 거행하는 부처님오신날 법회도 마찬가지로 챙긴다고 한다. 소남 스님은 “광성사도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인연을 중시하는 등 한국의 절이 하는 역할을 똑같이 하고 있다”며 “종교를 떠나 부담 없이 방문해 마음의 평화를 얻어 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광성사에 등록된 신도는 500여 명, 법회나 공부에 참여하는 이는 300명 안팎이라고 한다. 광성사의 거의 모든 활동은 유튜브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