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죽음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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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 신작 '파묘'
보이지 않는 것 믿는 이들의 이야기
무속 신앙으로 '한국형 오컬트' 완성

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 영화 '파묘' 스틸컷. 쇼박스 제공

사람들은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세계를 믿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의심하며 머리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는 거부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겐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것에 안심이나 위로를 얻고자 한다. 망자를 달래고 후손에게 좋은 영향을 전하기 위해 굿판을 여는 무당이나 땅의 기운을 찾아다니는 지관, 유골을 수습해 그 넋을 기리는 장의사야말로 음과 양, 과학과 미신 사이에 존재하는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 ‘파묘’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신념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영화는 무당 ‘화림’과 그를 따르는 ‘봉길’이 거액의 돈을 약속받고 미국에 사는 의뢰인을 만나러가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갓난아이가 이유 모를 병을 앓고 있으니 원인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화림은 자신을 바라보는 의심의 눈초리 속에서 의뢰인이 알려주지 않았던 또 다른 정보를 알아낸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건 갓난아이뿐 아니었다. 집안 장손들이 모두 겪고 있는 병으로 그들은 환청에 시달리며 죽어가고 있었다. 화림은 장손들에게 전해지는 이 병이 묫바람 때문임을 전한다. 잘못 쓴 무덤으로 후손들이 해를 입고 있으니 당장 파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화림과 봉길은 40여 년간 땅을 파먹고 살았다는 지관 ‘상덕’과 유골을 수습하는 장의사 ‘영근’을 만난다.

상덕과 영근은 거액을 준다고 하니 흔쾌히 파묘에 응한다. 하지만 이내 조상을 모신 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음산한 기운으로 감도는 묘지를 본 상덕은 파묘를 거절한다. 그곳이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惡地)임을 눈치챈 것이다. 악지의 묘를 함부로 팠다가 줄초상이 난다는 속설이 불안하다. 하지만 갓난아이의 생사가 걸린 일이라는 화림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상덕은 파묘에 응한다. 이제 상덕, 화림, 영근, 봉림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을 해결해 나가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굿판과 파묘를 동시에 진행한다.

파묘 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네 사람은 의뢰를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이때 상덕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파묘에 참여했던 인부 중 한 명이 동티에 걸린 것이다. 금기를 범한 짓의 대가로 치르게 되는 초자연적 재앙이라고 일컫는 동티. 상덕은 그를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음산하고 스산한 땅을 파헤친다. 이 지점에서 끝난 줄 알았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고, 관객은 상덕이 땅을 팔 때마다 이야기가 확장되는 것을 본다.

6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무덤에 묻혀 있던 단서들을 따라가며 숨겨져 있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는 한 편의 잘 짜인 추리물을 연상시키며 공포심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무덤의 가장 밑바닥에는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진실이 묻혀 있다. 진실과 맞닿을수록 공포와 불안이 엄습하지만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성덕과 화림은 무의식적으로 안다. 무속과 풍수, 금기와 미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무덤의 제일 밑바닥에 꼭꼭 숨겨두었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불려온다. 그리고 너무 오래 파묻혀 있던 그것이 땅에서 나와 도깨비불이 되어 하늘을 떠돌 때 진짜 공포는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과거였음을 깨닫는다. 바로 그 순간 서늘한 공포도 함께 스친다.

장재현 감독은 전작 ‘검은 사제들’에서 한국의 무속 신앙과 서양의 엑소시즘을 결합해 눈길을 끌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풍수지리와 무속 신앙, 장례 문화를 매끄럽게 연결해 한국형 오컬트 영화를 완성한다. 영화는 서사뿐 아니라 스산한 분위기의 영상과 기괴한 느낌의 사운드로 생생한 공포감을 갖춘다. 영화 속 등장인물의 이름과 차량 번호를 눈여겨본다면 영화의 메시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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