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의 인사이트] '국회의원'을 찾습니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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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26일 취임
부산 등 부울경 정치권 물갈이 판세

21대 국회, 자질·정치력 부재 역력
추문·골목·줄서기 정치로 일관해

지도자급 역량 갖춘 인사 추천해야
지역·국가 미래 가능성 담보 가능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2024년 4·10 총선을 100여 일 앞두고, 부산 남천동의 10년째 단골 미장원에도 화제는 단연 차기 국회의원 공천이다. ‘윤핵관’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영남권 유력 정치인인 장제원 의원, 김기현 대표 등의 ‘불출마와 사퇴’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26일 취임하면서 영남권 물갈이론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운명을 짊어진 비대위 성패는 공천에 달려있다. 그 공천에 따라 지역과 국가의 미래가 좌우된다.

노회한 선거 전략가들은 혁신을 바라는 유권자의 마음을 읽고 있지만, 어려운 과제다. 표 계산과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재정·연금·노동 개혁 등 근본적인 혁신은 건드리지조차 못 한다. 대신에 손쉽게 할 수 있는 인적 물갈이로 고개가 돌아간다. 물갈이는 ‘대한민국 선거 승리의 방정식’으로 통칭될 정도다. 부실한 정책성과를 희석할 수 있고, 상대의 강점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21대 국회의원의 마뜩잖은 성적표 탓에 22대 새 인물에 대한 기대가 뒤섞여 어수선하다.

여의도에서 지역 국회의원을 가까이서 관찰해 온 일명 ‘선수’들은 지역 국회의원 자질 부족을 제일 큰 문제로 꼽고 있다. 언급하기조차 부끄러운 추문은 차치하더라도, 몇몇 의원은 국정 이해나 법과 예산 관계에 대한 개념조차 없이, 예산을 따오는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는 전언이다. 결국 부산 전체의 큰 그림이나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지역구 이익만 대변하다가 4년을 허송세월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숨지을 정도다. 오죽 답답했으면 해당 의원실 보좌관 출신들도 “우리 영감 존재감이 1도 없다”는 말을 입에 올릴 정도이다.

이런 자질 부족은 지역의 뒤떨어진 정치 문화와 훈련 부족에서 기인한다. 여야와 지역, 진영으로 나뉜 치열한 대립적 정치 구도인 중앙 정치무대는 차가운 논리와 합리성, 의원 간의 팀플레이, 전투력이 바탕이 되어야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 ‘막대기만 꼽아도 당선된다’는 영남권에서 ‘끼리끼리 모여 놀던 형님 동생’ 문화로는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상임위와 국감에서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여의도 부산 사람’들과 시간만 축내기 일쑤다. 서울에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다가, 지역에서는 ‘골목대장’을 자임하며, 구청장 업무까지 도맡아 나선다. 개인 영달을 위한 동네 모임이란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다. 동네 건널목마다 설치된 플래카드가 대표적이다.

더 큰 폐해는 ‘줄서기 정치’다. ‘한 번은 더 해야 하지 않겠느냐’를 삶의 목표로 세운 초선들은 어느 게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른 채 ‘윤심 코드’에 맞춘다면서 ‘친윤 홍위병’을 자처했다. 이들에겐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군상들’이란 한물간 정치인의 냉소조차 과분할 정도이다. 하지만, 지역의 자존심과 미래가 걸린 사안에는 묵묵부답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산 촌 동네’ 발언으로 결국 사임까지 이어졌던 이재환 전 한국관광공사 부사장 사태다. 350만 부산시민 모두가 분개했지만, 지역 국회의원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나 ‘친윤 낙하산’을 건드려 공천에 불이익을 받을까 미리 겁을 먹고, 꼬리를 만 것은 아닐까. 쥐새끼도 밟으면 짹 하는데, ‘우리’ 국회의원은 밸도 쓸개도 없는 형국이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몽니에 대해서도 뒷짐지며 ‘양반 흉내’만 내고 있다. KDB산업은행법 연내 개정 불발 사안이 대표적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부산 상공계와 시민사회단체, 부산시장까지 무시했다. 하지만, 지역 국회의원들이 ‘항의, 삭발, 기자회견’ 등 을 했다는 시원한 소식 하나 들려오지도 않는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부산 국회의원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연내 법 통과가 무산된 것보다, 우리를 대변할 국회의원조차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절망을 느낀다. 산은 이전이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주춧돌이 된다는 논리를 국회 야당 의원실 문턱이 닳도록 얼마나 전파했는지 의문이다. 아들 딸들은 취업을 위해 서울 월세방을 얻어 떠나지만, ‘부잣집 도련님’ 출신 국회의원들은 그런 걱정조차 필요 없는 ‘당신들만의 천국’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지경이다. ‘산업은행의 경제적 가치와 부산 이전의 의미를 몰랐다’는 오리발이 오히려 위안을 준다.

이런 좀스러운 지역 정치 현실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어떤 정치인이 필요한지 해답이 숨어 있다. 최소한 부산, 부울경의 지도자로 칭할 수 있는 역량과 자존심, 문제의식, 투지를 갖춘 사람을 제대로 추천하라는 이야기다. 취임 하루를 맞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지켜보겠지만, 엉터리 공천으로 지역을 팽개친다면, 혹독한 책임은 정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자고로 촌놈이 화나면 더 무서운 법이다. 째깍째깍 총선 시곗바늘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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