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한 항적… 유빙·강풍 등 극한의 난관 버텨낸 결과”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아크로호 북극항로 통과 뒷이야기

빙산 파편 맞닥뜨린 순간 ‘아찔’
밀폐된 공간 생활 스트레스 커
매일 적응해야 하는 시차 ‘고통’
빨라진 결빙, 복귀에 난관 우려

부산~로테르담을 이동한 팬스타 아크로호의 전체 항적(운항 궤적)이 붉은색 실선으로 표시돼 있다. 붉은색 원은 강풍이 불어닥친 지난 4일 랍테프해 구간과 대형 유빙을 마주한 지난 5일 빌키츠키 해협 구간이다. 맵시 제공·류지혜 기자 birdy@ 부산~로테르담을 이동한 팬스타 아크로호의 전체 항적(운항 궤적)이 붉은색 실선으로 표시돼 있다. 붉은색 원은 강풍이 불어닥친 지난 4일 랍테프해 구간과 대형 유빙을 마주한 지난 5일 빌키츠키 해협 구간이다. 맵시 제공·류지혜 기자 birdy@

‘꿈의 항로’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마침내 지난 12일 오전 5시께 유럽 땅에 닻을 내렸다. 이로써 21일간 영하의 추위와 강풍, 사방을 둘러싼 유빙 등 극한의 난관을 뚫고 국내 첫 컨테이너 선박의 북극항로 통과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부산일보〉는 이날 팬스타 아크로호의 첫 기항지인 영국 펠릭스토우(Felixstowe)항에서 단독으로 서명원 선장과 노현 1등 항해사를 만나 21일간의 항해 뒷이야기를 들었다.

■‘정시성’과 ‘안전성’ 사이 줄타기

운항 단축에 대한 기대와 극지 기후 우려가 엇갈리는 가운데, 서 선장은 이번 항해의 핵심 과제를 정시성과 안전성 사이의 균형 유지였다고 밝혔다.

이러한 고뇌는 선박의 항적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난달 22일 부산항 신항을 출항한 팬스타 아크로호는 지난달 31일 축치해에서 첫 난관을 맞았다. 사방에 널린 유빙이 선박의 앞길을 완전히 둘러싼 것이다. 당시 아크로호는 연안을 따라 우회하다 갑자기 뱃머리를 반대로 돌리며 구불구불한 궤적을 그렸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부산~영국 펠릭스토우 구간 안전 운항을 이끈 서명원(오른쪽) 선장. 박혜랑 기자 rang@ 팬스타 아크로호의 부산~영국 펠릭스토우 구간 안전 운항을 이끈 서명원(오른쪽) 선장. 박혜랑 기자 rang@

노 항해사는 “브랑겔섬 남부 해역 진입 중 사방으로 흩어진 얼음 탓에 통항로가 막혔고, 야간이라 육안이나 레이더로 유빙을 분별하기 어려워 안전을 위해 날이 밝을 때까지 속도를 0으로 낮추고 정지 상태로 대기했다”며 “엔진을 끄고 표류하는 동안 극지의 강한 바람과 조류에 떠밀리면서 궤적이 지그재그로 찍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안전을 확보하며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린 팬스타 아크로호는 랍테프해에서 순간 최대 40노트에 달하는 강풍과 마주했다. 노 항해사는 “바람이 거세지면 유빙이 배보다 빠른 속도로 밀려와 선체를 향해 쇄도한다”며 “방향타를 조작해도 선체 제어가 쉽지 않아 속도를 최저로 낮추고 조류와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타각을 크게 꺾으며 버텼다”고 당시의 급박함을 전했다.

또 랍테프해와 카라해를 잇는 빌키츠키 해협에서는 빙산 파편 형태의 두껍고 단단한 얼음을 만나기도 했다. 서 선장은 “선체 충돌 시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빙산 조각을 피하기 위해 선속을 줄이고 회피 기동을 반복하며 해협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팬스타 아크로호는 북극해에 진입한 지 9일 만에 위험지역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부산~영국 펠릭스토우 구간 안전 운항을 이끈 노현 1등 항해사. 박혜랑 기자 rang@ 팬스타 아크로호의 부산~영국 펠릭스토우 구간 안전 운항을 이끈 노현 1등 항해사. 박혜랑 기자 rang@

■갑판 출입 금지에 갇힌 일상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20여 일을 버텨내야 했던 선원들의 고충도 적지 않았다. 선내 난방은 정상 가동됐지만, 결빙과 안전사고 위험 탓에 외부 갑판 출입이 전면 통제되면서 밀폐된 공간에서 오는 답답함이 상당했다. 서 선장은 “선내에 러닝머신 등 체육 장비를 넉넉히 비치해 선원들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동쪽에서 서쪽 고위도 해역으로 배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매일 1시간씩 하루가 늘어나는 ‘하루 25시간’의 시차도 복병이었다. 서 선장은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매일 1시간씩 연장되는 환경이 이어지다 보니, 수면 패턴이 완전히 깨져 이른 시간에 깬 뒤 다시 잠들지 못하는 만성 피로가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유빙 구간 감속으로 지체된 일정을 만회하려 급가속할 때마다 극심한 선체 진동이 발생해 선원들의 피로를 가중시켰다. 만일의 고립 사태에 대비해 한 달 치 이상의 비상식량을 추가 적재하고 운항한 점도 일반 항해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안전 운항을 이끈 서명원(왼쪽) 선장과 노현 1등항해사. 박혜랑 기자 rang@ 팬스타 아크로호의 안전 운항을 이끈 서명원(왼쪽) 선장과 노현 1등항해사. 박혜랑 기자 rang@

■귀향길 얼음 더 빨라져

노 항해사는 아이스 차트와 최근 기상 데이터를 정밀 분석한 결과, 전년도보다 약 일주일 정도 북극해 결빙 속도가 빠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보통은 9월 중순 무렵부터 기온이 떨어지며 바다가 얼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그 결빙 시점이 앞당겨졌을 뿐만 아니라 결빙이 번지는 속도 역시 훨씬 빠르다”고 분석했다.

특히, 출항길 위험 구간이기도 했던 축치해의 유빙이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노 항해사는 “데이터 상에선 9월 말에도 브랑겔섬 남부 연안 쪽에 여전히 많은 양의 얼음이 남아 있어 우회할 공간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복귀할 때 최상의 시나리오는 육지에서 강한 남풍이 불어주는 것”이라며 남풍이 연안의 유빙을 외해로 밀어내 해안가를 따라 안전 통항로가 확보되길 기대했다.

아울러 “만약 바람이 이렇게 불지 않을 경우, 얼음 상태를 주시하며 북쪽 물길이 열리는 즉시 북부로 우회하는 플랜 B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팬스타 아크로호는 기상 악화와 결빙에 따른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10월 첫째 주 이전 북극해 탈출’을 목표로 세웠다.

펠릭스토우(영국) 글·사진=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