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단체장 바뀌어도 안 흔들리는 ‘불가역적’ 장치 필수 [통합 로드맵 다시 쓰자]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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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정치 이벤트 대신 시스템으로

속도전 예외 없이 실패로 귀결
협의체 지위 법으로 보장해야
논의 기한 단계별 데드라인 필요
PK 소통 광역의회 역할론 대두

전남광주통합특별시청 광주청사 모습. 연합뉴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청 광주청사 모습. 연합뉴스
지난 7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청 앞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남본부 소속 간부들이 투명한 인사 원칙 확립과 기존 노사 합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청 앞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남본부 소속 간부들이 투명한 인사 원칙 확립과 기존 노사 합의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울경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초광역 통합은 ‘부도수표’로 전락했다. 2022년 메가시티 구상이 그랬고, 2026년 행정통합 합의안이 그랬다.

부울경의 통합 잔혹사가 남긴 명확한 교훈은 하나다. 지역 간의 결합은 정치 이벤트나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반드시 법과 제도로 보장받는 ‘시스템’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파와 진영 넘어설 때 진정한 영속성

주민과의 소통이나 동의가 결여된 채 진행된 성급한 속도전은 예외 없이 실패로 귀결됐다.

조기 행정통합을 밀어붙인 광주와 전남은 청사 위치와 주도권을 놓고 날 선 대립을 이어가는 중이다. 시스템 없이 속도에만 매몰된 초광역 통합이 어떤 난관에 봉착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직전까지 부산과 경남 공론화위원회에 몸담았던 인사들은 ‘정치와 선거’라는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광역화를 주도할 협의체는 먼저 그 지위와 권한을 중앙정부와 법으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와 무관하게 지속해서 광역화 논의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경성대 배준구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프랑스는 1982년 좌파 정부가 제정한 지방분권법을 2003년 우파 정부가 고스란히 이어받아 정권을 초월한 국가경영 철학을 보여줬다”며 “파리를 중심으로 한 일극주의를 타파하고 광역화와 분권을 성공시킨 건 결국 법과 제도”라고 말했다.

시민사회 역시 부울경 간의 상시 협의체를 만들더라도 법적 권한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 박재율 상임대표는 “지역을 초월해 국가 차원에서 초광역 통합을 국정과제로 해야 함은 물론이고, 중앙정부는 그 전에 시도지사와의 협의를 반드시 선행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적 보장·‘불가역적 잠금장치’ 필수

부울경의 초광역 통합은 앞선 실패를 교훈 삼아 불가역적인 시스템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특히, 전문가들은 시도지사의 정치 철학과 정당의 이해관계에 협의체가 무력화되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과 중앙정부의 확고한 보증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간의 성과를 무위로 되돌릴 수 없도록 ‘불가역적 잠금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더불어 광역 지자체 간 협의가 끝도 없이 늘어지는 걸 막기 위해 청사와 기관 배치, 재정과 조직 분담 등의 첨예한 사안은 사전합의로 매뉴얼화하고, 논의 기한도 단계별로 데드라인을 두는 방식을 조언하기도 한다. 초광역 통합을 먼저 결정한 뒤 지자체 간 세부 조건을 협의하는 방식은 결국 ‘누가 더 가져가느냐’는 주도권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고,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높은 까닭이다.

신라대 박재욱 행정학과 교수는 앞선 정부에서 초광역 협력 사업이 어떤 식으로 사라졌는지를 복기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잘 진행되던 광역교통망 사업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사라졌고,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한 대도시 네트워크망 사업도 문재인 정부 들어 없어졌다”고 꼬집으면서 “그래도 부울경은 다년간 자생적으로 쌓아온 초광역 협력의 성과와 경험이 있어 조건 면에서는 타 시도보다는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고 평했다.

■‘야당 우위’ 광역의회 통합 역할론도

사실상 시도의 운명이 걸린 초광역 통합에 있어 가용한 모든 자원과 채널을 총동원해야 함은 물론이다.

당장 부산과 울산 간에는 여당 시장 사이 대화 채널이 살아있다. 그러나 부산과 경남 간의 협의는 민선 9기 출범 이후 교착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자리걸음 중이다. 야당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부산시의회가 경남도의회와의 채널을 통해 협의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앞서 민선 8기 시절 부산과 경남의 광역의회는 상생을 위해 ‘행정통합 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초광역 협력을 주도하기 위해 광역의회 차원에서 교류 채널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연석회의와 간담회를 이어가던 이 협의체 역시 민선 9기 출범 이후 자취를 감췄다.

시의회 송우현 행정문화위원장은 “민선 8기 설치한 의회 간 협의체도 제법 소통이 이뤄졌지만, 선거 이후 정치 환경이 달라지니 유명무실해진 측면이 있다”며 “현재 부산과 울산은 시장 간 소통이 잘되고 있지만 부산과 경남 간 채널이 막혀 있으니 시의회와 도의회가 직접 대화창구를 뚫고 일정 부분 역할을 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결국, 부울경 3개 시도는 초광역 통합에 앞서 원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 시도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협업,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질 유의미한 성과다.

통합 자체를 성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주문도 쏟아진다. 중요한 것은 누가 통합을 선언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바뀌어도 통합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다. 단체장의 의지에 기대는 통합은 선거가 끝나는 순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권이 바뀌고 단체장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구조,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지속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부울경 초광역 통합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관문이 되는 셈이다. -끝-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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