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성과와 헌신을 함께 보는 법
유버디 대기업 프로 재택러
연봉 협상 시즌이 다가오면 조직은 잠시 정직해진다. 지난 한 해 누가 무엇을 얼마나 해냈는지, 모두가 숫자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맘때면 늘 마음에 걸리는 얼굴들이 있다. 성과표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없으면 팀이 확연히 삐걱대는 사람들이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단순하지만 묵직한 말을 남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비판보다 이해가, 지적보다 진심 어린 인정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백 년 전의 통찰인데, 성과와 숫자로 사람을 재는 데 익숙해진 요즘 조직에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윤활유 역할 떠맡는 '글루 워크'
성과표에는 아무런 기록 없어도
조직 속 마찰 줄이는 귀한 노력
정확하게 성과 평가하는 눈과
기여와 헌신을 찾아내는 눈은
진심 어린 관심으로만 하나 돼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노동을 가리키는 말이 생겼다. ‘글루 워크(glue work)’. 조직을 붙여 주는 접착제 같은 일이라는 뜻이다. 회의를 매끄럽게 정리하고, 신입의 질문을 받아 주고, 흩어진 논의를 하나로 엮어 내는 일. 팀을 실제로 굴러가게 하지만, 정작 개인 성과로는 좀처럼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일컫는다. 기계로 치면 톱니바퀴가 아니라 그 사이를 메우는 윤활유에 가깝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것이 마르는 순간 기계 전체가 마찰음을 내며 멈춰 선다.
팀을 맡기 전까지 나는 이 노동의 무게를 절반만 이해하고 있었다. 팀원이던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관리자가 되고 팀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자, 성과표에 잡히지 않던 노력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회의를 준비하며 남들보다 먼저 자료를 훑어둔 사람, 담당이 애매한 일을 말없이 떠안은 사람, 손은 조금 느려도 동료들 사이에서 윤활유처럼 팀의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던 사람. 이런 헌신은 어떤 지표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사라지면 조직은 이내 삐걱댄다. 존재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부재로써 비로소 증명되는 노동, 그것이 글루 워크의 속성이다.
문제는 이 글루 워크가 글로벌 재택 환경에서 더 쉽게 지워진다는 데 있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면 눈에 띄었을 수고가, 화면 너머에서는 조용한 메시지 한 줄로만 남기 때문이다. 시차를 두고 일하다 보면 서로의 얼굴조차 자주 보지 못하니, 누가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지는 더더욱 흐릿해진다. 그래서 카네기의 말은 재택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 무겁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서로를 알아봐 주는 마음인데, 그 마음이 가 닿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성과를 채근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 관리자의 진짜 딜레마가 있다. 평가라는 제도는 아무래도 뚜렷한 성과를 낸 사람, 자기 일을 또렷한 언어로 설명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기울기 마련이다. 묵묵히 팀을 떠받친 사람일수록 정작 자신의 공을 말하는 데 서툴다. 그렇다면 그 보이지 않는 기여를 발견해 제 몫의 이름을 붙여 주는 일이야말로, 숫자가 놓치는 빈자리를 메우는 팀장의 진짜 역할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성과를 눈감아 주는 온정주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냉정한 성과주의와 무른 온정주의는 둘 다 절반씩 틀렸다. 숫자만 보면 팀을 지탱하는 헌신을 놓치고, 온정만 앞세우면 결국 열심히 한 사람이 손해 보는 조직이 된다. 카네기의 인정이 빛나는 지점은 바로 그 사이다. 그의 인정은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해냈는지 정확히 짚어 내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막연히 잘한다고 말하는 것과, 구체적인 기여를 콕 집어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진심 어린 인정에는 관찰이 필요하고, 관찰에는 관심이 필요하다. 성과와 온정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관찰 위에서 비로소 만난다.
그래서 나는 팀장으로서 작은 원칙을 세웠다. 성과 지표에 잡히지 않는 노력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누군가 조용히 메운 빈틈을 발견하면, 짧게라도 그 노고를 짚어 말해 준다. “그 부분 챙겨 줘서 팀이 편했다”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사람은 자신의 수고가 누군가의 눈에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얻기 때문이다. 신뢰란 그렇게, 알아봐 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백 년 전 카네기가 던진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통제나 압박이 아니라, 진심으로 알아봐 주는 마음이라는 것. 성과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사람은 인정으로 기억한다. 다가오는 연봉 협상 시즌, 당신의 곁에도 성과표에 적히지 않는 노력으로 팀을 조용히 떠받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수고를, 숫자로 환산되기 전에 한 번 소리 내어 알아봐 주면 어떨까. 좋은 팀장은 성과를 잘 재는 사람이 아니라, 재어지지 않는 것까지 볼 줄 아는 사람일 테니까. 인정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오늘부터 연습할 수 있는 습관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