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문턱 넘은 빙하, 과학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
수십 년 진행 온난화 네팔 대홍수 초래
임계점 넘으면 복합재난 피할 수 없어
위험 요인 위성 관측·경보 체계 갖춰야
다이어트를 시작해 본 사람은 안다. 매일 운동하고 섭취량을 줄여도 체중계 숫자가 꼼짝하지 않는 ‘정체기’가 온다. 몸은 들어오는 에너지와 나가는 에너지의 변화에 맞서 한동안 기존 상태를 지키려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균형이 깨지면 체중이 계단을 내려가듯 뚝 떨어진다. 자연계의 변화도 이와 닮았다. 같은 자극에 곧바로 같은 크기로 반응하지 않는다. 열과 압력이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임계점을 넘는 순간 전혀 다른 상태로 급전환한다. 점진적인 원인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결과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지난 8월 26일 네팔과 중국 티베트의 국경 지대를 덮친 대홍수는 이런 ‘문턱의 재난’을 극명하게 보여 줬다. 랑탕리룽봉 부근의 얼음과 암석 덩어리가 무너져 계곡으로 쏟아졌고, 물과 토사, 거대한 바위가 뒤섞인 흐름이 마을과 도로를 휩쓸었다. 처음에는 규모 5.2의 지진이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미국 지질조사국은 오히려 빙하·암석 붕괴의 충격이 지진처럼 기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류의 강 수위는 불과 30분 사이 7~9m나 치솟았다. 수십 년 동안 서서히 진행된 온난화와 빙하 약화가 어느 아침 거대한 파국으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뜻밖의 사고처럼 보이지만, 이와 같은 시나리오는 이미 10년 전부터 경고됐다. 2015년 위성 자료를 분석한 연구는 히말라야 빙하호 면적이 1990년보다 14.1% 늘었고, 빠르게 커지는 118개 호수를 우선 점검 대상으로 꼽았다. 2017년 네팔 전역을 조사한 연구도 0.1㎢가 넘는 빙하호 131개 가운데 42개를 고위험 또는 매우 높은 위험으로 분류했다. 특히 얼음이나 암석 사태가 호수로 떨어져 큰 물결을 만들고, 불안정한 자연 제방을 넘거나 무너뜨리면 하류에 돌발 홍수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붕괴 지점과 시각을 정확히 예언한 것은 아니지만, 재난을 낳는 조건과 연쇄 과정만큼은 오래전 과학이 보여 준 셈이다.
빙하는 단순히 햇볕에 녹아 그 자리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얼음덩어리가 아니다. 표면에서 녹은 물은 갈라진 틈과 수직 통로를 따라 빙하 속으로 스며들어 바닥까지 도달한다. 이 물이 빙하와 암반 사이의 수압을 높이면 마찰과 접착력이 약해지는 ‘기저 윤활 효과’가 생긴다. 동시에 영구동토가 녹고 암반의 틈이 약해지면 가파른 사면을 붙들던 힘은 더 줄어든다. 마침내 중력이 버티는 힘을 앞서는 순간, 빙하 일부와 암석이 통째로 떨어져 거대한 눈·얼음·암석 사태가 된다. 다만 이번 네팔 재난에서 암석이 먼저 무너졌는지, 빙하가 먼저 떨어졌는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기저 융빙수 역시 가능한 촉진 요인이지 확정된 단일 원인은 아니다.
빙하 아래쪽에서는 또 다른 위험이 자란다. 후퇴한 빙하와 빙퇴석 제방 사이의 낮은 곳에 융빙수가 졸졸 흘러들면, 작은 웅덩이는 해마다 몸집을 불려 빙하호가 된다. 물의 양이 늘수록 흙과 돌로 된 자연 제방에 걸리는 압력도 높아진다. 이번 재난 직전의 위성사진에서는 오래된 대형 빙하호가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빙하·암석 사태가 하천을 먼저 막아 짧은 시간에 임시 호수를 만들었고, 뒤이은 붕괴나 월류로 그 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오래 쌓인 빙하호든 몇 시간 만에 생긴 임시 호수든 원리는 같다. 산 정상 부근에서 떨어진 거대한 얼음과 암석이 물을 밀어 올리거나 제방을 깨뜨리면, 계곡은 순식간에 해일 같은 홍수의 통로로 변한다. 이번 재난은 빙하 붕괴, 산사태, 하천 봉쇄, 범람이 꼬리를 문 ‘복합재난’이었다.
더 두려운 것은 이러한 급변이 히말라야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후시스템은 온도가 오르는 만큼만 얌전히 변하지 않는다. 빙하와 영구동토, 해류와 해수면, 산림과 생태계는 한동안 충격을 흡수하다 임계점을 넘으면 되돌리기 어려운 속도로 바뀔 수 있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거세지고, 산지와 해안, 하천이 맞물린 부산에서도 산사태와 침수, 해수면 상승의 위험이 서로 증폭될 수 있다. 과거의 평균에 맞춘 방재 기준만으로는 ‘처음 보는 재난’을 막기 어렵다.
그러므로 과학의 경고를 불안을 부추기는 과장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위성으로 빙하와 산사면의 미세한 가속을 상시 관측하고, 국경을 넘는 자료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위험지역 주민에게 즉시 닿는 경보와 대피 체계를 갖춰야 한다. 우리도 기후·하천·사면·해안 정보를 따로 관리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쇄 위험으로 연결해 감시하고, 임계점을 가정한 최악의 시나리오로 도시와 기반 시설을 점검해야 한다. 정체기는 변화가 멈춘 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변화가 축적되는 시간이다. 네팔의 참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도 분명하다. 자연이 무너진 뒤 수습하는 것보다, 과학이 가리킨 문턱 앞에서 먼저 움직이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