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경제] 석 달에 한 번씩 여의도 찾는 마녀들
네 마녀의 날
‘네 마녀의 날’이었던 지난 10일 코스피 지수가 하락 출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지금은 요사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깊은 밤(the very witching time of night), 무덤이 입을 벌리고 지옥이 세상에 전염병을 뿜어내는 시각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속 독백이다. 숙부의 죄를 확신하고 복수의 광기에 젖어 읊조린 이 대사에서 ‘위칭 타임(Witching time)’은 이성이 마비되고 혼란한 일이 벌어지는 시간을 뜻하는 관용어로 굳어졌다.
수백 년 뒤, 이 표현은 엉뚱하게도 1980년대 미국 월스트리트로 소환됐다. 갓 상장된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 만기일마다 장 마감 직전 한 시간, 멀쩡하던 주가가 귀신에 홀린 듯 춤을 췄다. 만기가 되면 트레이더들은 보유한 계약을 청산하거나 다음 만기월로 이월해야 하는데, 이 물량이 지수와 연계된 차익거래·프로그램 매매와 맞물려 장 마감 동시호가에 한꺼번에 쏟아진 탓이다.
시장은 셰익스피어의 ‘타임’을 쪼개 마감 전 60분을 뜻하는 ‘위칭 아워(Witching hour)’로 바꿔 불렀다. 지수선물·지수옵션·개별주식옵션 세 만기가 겹친다 해서 처음엔 ‘트리플 위칭 아워’였다.
이후 매 분기말에 옵션 만기일이 겹치는 날에는 하루 종일 시장이 요동쳤고 ‘아워(Hour)’는 ‘데이(Day)’로 판을 키웠다. 2002년 개별주식선물까지 가세하며 네 만기가 겹치는 ‘쿼드러플 위칭 데이’가 완성됐다.
태평양을 건너 여의도에 상륙하면서 용어는 한층 발칙해졌다. ‘요사스러운’이라는 건조한 형용사(Witching)는 빗자루를 탄 진짜 ‘마녀’가 됐다. 파생상품 네 종목의 만기가 겹치며 시장이 요동치는 날을 ‘네 마녀의 날’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 마녀들의 심술은 지금도 석 달에 한 번씩 여의도를 찾아온다. 최근 네 마녀의 날이었던 지난 10일에도 코스피는 외국인의 2조 원 넘는 매물 폭탄에 장중 2% 넘게 빠지며 한때 6900선까지 주저앉았다.
박동해 기자 easts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