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부산에 필요한 건 '더 긴 여름'이 아니다
송민 서핑 국가대표 감독
9월이 되면 바다는 다시 고요해진다. 한여름 내내 해변을 뜨겁게 달구던 파라솔이 한 켠으로 치워지고, 해변 가득 모였던 피서객들이 하나둘 떠나간 부산의 바다는 비로소 제 얼굴을 되찾는다. 여름의 부산은 그 어떤 도시보다 젊고 역동적이다. 전국의 청년들이 부산 바다와 거리로 쉴 새 없이 몰려들고, 그 뜨거운 열기와 활력으로 밤 늦게까지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9월이 오면 그 눈부신 에너지는 바닷물 빠지듯 도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 계절의 격차는 오늘날 부산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몸소 체감하고, 느끼는 도시의 삶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젊은이들이 부산을 떠나는 이유는 결코 이 도시에 매력이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다. 여름마다 전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기꺼이 부산을 찾아오는 것만 봐도 부산에 매력이 없다는 진단은 틀렸다. 문제는 매력보다 ‘기회’다. 젊은이에게는 좋은 풍경만큼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어제보다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가 필요하다.
활력 넘치던 바다, 9월 되면 고요해져
기회 찾아 청년 떠나는 부산과 닮아
도전·성장할 수 있는 기회 부족 때문
사계절 새로운 가치 만드는 도시 돼야
우리는 그동안 청년들에게 왜 부산을 떠나느냐 묻고, 지역에 남아 달라는 말만 되풀이해 왔다. 하지만 청년들의 발길을 억지로 붙잡는다고 해서 청년들이 이 도시를 떠나가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청년들이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도시가 해야 할 일은 떠나는 청년을 탓하거나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떠난 사람에게도 언젠가 다시 돌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오랫동안 송정의 바다에서 선수들과 서퍼들, 젊은이들을 지켜본 필자에게 부산의 계절 변화는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여름이면 전국에서 젊은 서퍼들이 송정으로 몰려드는 모습을 만난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파도 위에서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고, 바다에서 시작된 관계가 다시 도시의 카페와 거리로 이어진다. 작은 해변 하나가 거대한 커뮤니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는 순간, 그 활기도 함께 줄어든다. 부산이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여름에 불러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에너지를 어떻게 가을과 겨울까지 이어갈 것인가다.
부산의 바다와 도시는 여름 두 달만 쓰이고 닫히는 단기 위락시설이 아니다. 바다는 전국의 누구나 언제든 찾아와 쉬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사계절 ‘도시의 거실’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해변과 연안 공간은 수많은 청년들이 문화와 스포츠, 창업과 기술, 해양산업을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려면 행정과 지역 사회의 관점부터 그에 맞춰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성수기에 관광객 숫자를 얼마나 늘리느냐에 집중하기보다는 청년들이 부산을 찾아 사계절 일하고, 즐기고,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여름에 몰린 각종 문화와 축제, 스포츠 행사를 비수기로 확장하고, 대학과 기업, 창업공간과 해변을 연결하며, 가을과 겨울의 해안 공간도 청년들의 실험과 도전을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열어야 한다. 서울을 닮은 부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산이 가진 바다와 도시의 장점을 연결해 부산에서만 가능한 기회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다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파도를 만들어 내듯 도시 역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도전이 지속해서 이어지는 곳으로 바뀌어야 늙지 않는다. 수십 년간 매년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드는 부산의 여름은 이미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고,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청년들이 부산을 싫어하는 것도, 부산이 젊고 역동적인 도시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부산의 가능성을 아직 여름이라는 한 계절에 가둬두고 있다는 데 있다.
이제 부산에 필요한 것은 더 긴 여름이 아니다. 여름이 만들어 낸 에너지가 가을과 겨울, 그리고 다음 해 봄에도 계속 흐를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느냐다. 이 도시를 떠나려는 청년들에게 부산에 남으라고 말하기 전에, 9월에도 이 도시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일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만들어줘야 한다.
여름이면 잠깐 젊어졌다가 가을이면 다시 늙어가는 도시가 아니라, 사계절 내내 새로운 사람이 오고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도시. 파도가 물러간 9월의 해변에서, 우리는 이제 부산의 진짜 사계절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