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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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수필가

여전히 꿈이었다. 양손에 엄마가 좋아하는 노란 참외를 들고 들판을 가로질러 외딴집으로 달려갔다. 숨이 차고 땀방울이 솟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날벌레가 눈을 찔러도 나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어떤 때는 참외가 팥빵이나 환타로 바뀌기도 했으나, 달음박질은 컴컴한 논두렁길이라도 무섭지 않고 진흙탕을 가로질러도 힘들지 않다.

꿈속 달리기는 오직 꿈에서 깨어났을 때만 멈출 수 있지만, 그 순간은 너무도 허무하고 허탈한 일이 되어버린다. 꿈에서는 찾아갈 고향 집과 기다리는 가족이 있기 때문일까. 한 번 떠난 그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다릴 때가 있다. 현관 앞에 서면 집안에 누가 있을 것만 같은 훈기, 통통통 도마소리 들리고 고등어구이나 미역국 냄새가 번져오고,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사회자의 멘트, 그리고 복도까지 새어 나오는 한바탕 웃음소리. 그러나 철커덕, 자물쇠 풀리는 소리와 함께 환상은 걷힌다.

고향 집·가족 향해 달려가는 꿈

영화 '집으로' 와 겹쳐지는 풍경

전쟁같은 추석 귀향표 경쟁 여전

인간은 집으로 돌아가는 존재

그날의 영화도 내 꿈속의 아득한 달음박질과 닮아 있었다. 풍경 속에 집들이 지나갔다. 이층집, 붉은 대문을 단 집, 낮은 담장을 두른 집, 마당에 빨래가 널린 집, 수리 중인 집, 양철 지붕을 인 집, 염소가 매여 있는 집, 닭들이 종종걸음치는 집, 버려진 집, 허물어져 가는 집, 폐허가 된 집, 불이 꺼진 집, 담장이 무너진 집, 잡초만 무성한 집들. 영화는 말이 없다. 특별한 사건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었다. 한 시간 내내 카메라만 라오스의 농촌 마을을 천천히 비출 뿐.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그 풍경에 붙들렸다. 누군가는 집을 짓고 또 누군가는 집을 고치지만, 빈집 마당에도 오리가 제집인 양 거닐고 담벼락에 기댄 망고나무 가지가 한가롭게 흔들렸다. 문도 창문도 지붕도 그대로인데 사람이 살지 않는 집. 그 사이로 벌레 소리,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양철판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까지 들리지만 자막은 없다.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것일까, 꿈과 상상을 겹쳐 영화를 보았을까. 차이밍량 감독은 ‘집으로’라는 소박한 제목을 화두처럼 던져둔 채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그도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걸까. 떠난 사람은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쓸쓸하고도 아늑한 정취에서 나는 엉뚱하게도 오래전에 읽은 어느 수필가의 ‘장대 위로 돋는 달’이 떠올랐다. 그가 9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울역에 갔을 때, 당시 추석 귀성객들로 가득 찬 광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차표를 사기 위해 서로 밀치고 새치기가 난무하는 아비규환의 한복판, 무질서를 진압하려는 경찰의 호각 소리가 울리고 장대가 연거푸 휘둘러진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면서도 고향행 기차표를 쥐려는 손 포개짐은 멈추지 않았다. 그 역시 군중 속에 파묻혀 몇 시간 동안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차표 한 장을 얻기 위해 버텨낸다. 그런데 그 처절한 몸부림 위로 자신을 맞이할 어머니의 얼굴처럼 하얗고 둥근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가 매서운 장대매를 맞고 밀려나면서도 끝까지 버틴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간에게 귀향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지중해를 떠돌던 오디세우스가 온갖 고난을 헤치며 나아갔던 유일한 목적지도 결국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이타카의 고향 집이었다.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이 이토록 집이라는 공간에 집착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문이 닫혀도 나를 위해 열려 있는 최후의 보루라는 믿음 때문일까. 여전히 내 꿈속 달리기가 지치지 않는 까닭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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