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1인당 소득 4만 달러 시대의 명암
배동진 지사장 겸 서울경제부장
반도체 호황에 역대급 수출 예고
200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성장세
중기 연체율·법인 파산도 역대급
미분양의 71%가 지방, 악성은 85%
경제 불균형 원인 분석·처방 급선무
지난해 12월 베트남 까마우 앞바다에는 두 가지 색깔의 물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서쪽 해안 지역 바닷가 물색이 적갈색과 파란색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이 바다 풍경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한쪽에서는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역대급 수출 실적 기록, 경제 성장률 상승,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전망 등의 ‘굿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중소기업 연체율과 파산 신청 증가, 청년 실업률 상승, 지방 미분양 증가 등의 ‘우울한 소식’이 올라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3.3%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5월 전망치에서 석 달 만에 0.7%포인트(p) 높였다. 지난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한국의 경기선행지수(CLI)도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200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 1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8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70.9% 증가한 1022억 5000만 달러였다. 한국의 월 수출액이 1000억 달러를 넘긴 것은 사상 최초다. 전 세계에선 독일과 중국, 미국에 이어 네 번째다.
우리나라는 올들어 지난 10일까지 누적 수출액이 7285억 6000만 달러로, 지난해 연간 수출액(7093억 달러)을 한참 넘어섰다. 정부는 오는 12월 초 1조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예고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상반기 수출 10달러 중 4달러는 반도체 차지다. 반도체가 대략 40%의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이클이 있다는 반도체의 실적이 내려간다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다시 3만 달러, 2만 달러 대로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한 국내 5대 은행의 지난 5월 말 중소기업 연체율은 평균 0.73%였다. 1%도 안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들 은행의 합산 수치가 확인되는 2020년 1월 이후 최고치다. 중소기업 연체율은 작년 말 0.50%에서 수개월 새 0.23%p 급등했다.
법인의 파산신청도 우려스럽다. 법원통계월보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7% 증가했다. 이는 2006년 통합도산법 도입 이후 상반기 기준 가장 많은 수준이다.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기존 대출의 상환 부담까지 겹치면서 상환 여력이 약화된 때문이다.
지방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부실 사업장도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7월 말 집계를 보면 전국 미분양 주택 6만 8217가구 가운데 비수도권 물량은 4만 8758가구로 71%를 차지했다. 준공 후에도 팔리지 않은 ‘악성 미분양’은 비수도권 비중이 85%에 달했다. 분양가에서 몇억 원씩 할인하는 사태까지 빚고 있다.
고용 면에서도 양극화 현상을 보인다. 지난 9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OECD 비교 기준인 15~64세 고용률은 70.4%로 0.5%p 올랐다. 8월 기준으로 15~64세 고용률이 70%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지난달 15~29세 청년층 실업자는 19만 5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 1000명 늘었다. 청년층 실업률은 5.4%로 0.5%p 상승해 2022년 8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았다.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데 내 삶은 결코 나아진게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대기업 취업도 바늘구멍인데, 이마저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업종 종사자와 기타 업종 종사자로 갈린다. 반도체 분야 종사자들이 성과급으로 5억~6억 원씩 받아가면서 그렇지 않은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우리 경제에 만연해있는 경제 불균형에 대한 원인 분석과 처방을 고민해야 할 때다. 청년 실업을 해소하는 방안이 무엇인지, 왜 중소기업들이 빚을 못 갚고 있는지, 지방 미분양은 어떻게 하면 해소할지 등에 대한 분야별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보다는 ‘선거표’를 의식한 정책 발표로 오히려 갈등만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반도체 호황으로 대기업 법인세가 수십조 원이 더 걷히는 상황인데도 고가 주택 소유자에 대한 보유세를 확대하고, 반도체 단지 추가 건설을 놓고 다수의 후보지에 대한 여론 수렴이나 전문가 평가 없이 특정 지역에 대해 정부 주도로 진행하는 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 30%대로 떨어졌다. 이제라도 ‘경제의 균형을 잡는’ 정부로 거듭났으면 한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