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옛날 이야기
김영승 (1959~)
할머니한테
옛날이야기를 들었으면서
자신의 옛날이야기는 왜 자기 자신한테
들려주거나 듣지 못하는가
상처도 추억도
그 어떤 참혹한 기억도
꽃은
작년의 꽃을 기억 못하며
모든 것을 기억한다
그러기에
저렇게 핀 것이다
꽃은
꽃의 옛날이야기다
-시집 〈파리 팔휘 토끼 톡휘 다리 달휘〉 (2026)
잊는다는 건 삶의 무게를 덜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마음의 방어이자 치유의 과정입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생존과 자아 정체성을 이루는 기억, 과거의 경험을 저장하고 현재에 다시 떠올리는 정신 과정은 우리의 성장을 돕고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게 해줍니다.
개인의 특정한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순간의 감정이면서 필요에 따라 재구성되기도 하는 기억. 그런 기억이 우리에게 없다면 감각적인 삶과 현재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꽃이 옛날이야기로 다시 피듯 망각 또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불필요한 정보를 잊고 중요한 정보에 집중하기 위한 진화의 전략.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생존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기억과 망각 사이에 있는 옛날이야기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