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신학철의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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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2023. 작가 제공 신학철.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2023. 작가 제공

1923년 9월 1일 대지진이 일본의 관동 지역을 덮쳤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폭동을 일으킨다” 등의 유언비어가 퍼졌고, 군경과 자경단은 조선인을 색출해 살해했다. 조선인에 대한 오래된 차별과 공포를 일본의 공권력이 확산시키거나 묵인하면서 단순 자연재해가 국가적·집단적 폭력으로 변한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1세대 민중미술가 신학철은 사건 100주년을 맞아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2023)을 완성했다. 세로 1.6m, 가로 9m의 대형 화면에는 살해된 조선인들의 몸이 화면 가득 이어진다. 그는 1979년 〈사진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에서 관동대학살 사진을 처음 접한 뒤, 그림을 그리는 일이 “유해를 발굴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역사 속에 묻힌 죽음을 불러내는 초혼의 회화다. 화면 중앙 하얀 실루엣의 인물은 이름 없이 사라진 희생자들의 부재를 환기한다.

신학철은 ‘한국근대사’와 ‘한국현대사’ 연작에서 몽타주 기법으로 사진과 신문 자료를 해체하고 재결합해 왔다.

그의 몽타주는 과거를 완전하게 복원하기보다, 벤야민이 말한 ‘변증법적 이미지’처럼 과거의 파편을 통해 아직 끝나지 않은 폭력의 역사를 드러낸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은 아우슈비츠의 가스실과 화장장에서 시신 처리를 강요당했던 유대인 수감자 조직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가 목숨을 걸고 남긴 네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디디-위베르만은 참혹한 역사를 완전하게 재현할 수 없다고 해서 이미지의 증언 가능성마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미지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바로 그 결핍과 불완전함을 통해 지워지려 했던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증언한다.

신학철의 장대한 그림 역시 학살의 전모를 완전하게 복원하려는 것은 아니다. 관람자는 한눈에 포착할 수 없는 긴 화면을 따라 움직이며 겹쳐진 몸들을 마주하지만, 사건 전체를 파악할 수는 없다. 이 ‘볼 수 없음’은 작품의 결함이 아니라, 기록되지 못한 죽음과 기억의 공백을 드러내는 형식이다. 이때 이미지는 사라진 흔적을 징후처럼 드러낸다. 또한 우리가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시선의 방향은 뒤집힌다. 화면 속 죽은 자들은 말하지 않지만, 훼손된 몸과 침묵으로 우리를 응시한다.

아도르노가 고통의 미적 소비를 경계했듯, 신학철은 희생자를 영웅화하거나 비극을 숭고하게 꾸미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일본 국가가 외면해 온 죽음을 다시 역사의 한복판에 세운다.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사회는 오랫동안 학살을 조사하고 희생자를 추모해 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신학철의 그림이 증언하는 관동대학살은 결코 끝난 과거가 아니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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