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해상 공급망 안정성 담보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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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

복합위기가 상존하게 될 바다
통제력 높일 거버넌스 구축이
화물 처리 능력보다 우선돼야

글로벌 공급망은 하나의 위기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위기가 겹쳐지는 복합위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군사적 긴장과 홍해의 선박 공격은 에너지와 컨테이너 항로를 흔들고, 파나마 운하의 가뭄은 총성 없이 선박의 통항량과 적재량을 줄인다. 미중 갈등과 보호무역, 기후변화, 사이버 위협, 물류노조의 대규모 파업까지 더해지면서 과거처럼 운임과 물동량만으로 시장을 설명하기도 어려워졌다. 이제 해상 공급망의 안정성은 가장 짧고 저렴한 항로를 찾는 능력보다, 위기 때 다른 항로와 선복을 선택하고 실제로 가동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해상 통제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통제권은 바다를 물리적으로 지배하거나 민간의 의사 결정을 정부가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다. 핵심 화물의 위치와 이동을 파악하고, 필요한 선복과 항만·배후거점을 확보하며, 특정 해협이나 운하가 막힐 때 대체경로를 신속히 선택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을 말한다. 지정학·기상·선박자동식별장치(AIS)·항만·운임·보험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는 조기경보체계, 국적선사의 전략선복, 전쟁보험과 긴급금융, 해외 터미널과 물류시설 등이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통제력이 생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현재 대응체계가 기능별·기관별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항로와 선복은 해운정책, 해외 항만개발과 투자는 항만정책, 에너지와 원자재는 산업정책, 위기 정보는 외교·안보 영역에서 각각 다뤄진다. 평시에는 전문성을 높이는 분업이지만 복합위기에서는 판단과 실행의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정부가 모든 업무를 한 기관으로 모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위기 정보를 한 화면에서 공유하고 관계부처·항만공사·국적선사·화주가 공동으로 대응 시나리오를 가동하는 상설 거버넌스는 필요하다. 국가 차원의 해상공급망 컨트롤타워와 실무 플랫폼을 함께 두고, 평시에는 해상공급망 실시간 모니터링과 경보시스템을, 위기 시에는 선복 배분, 대체 항로·내륙물류망, 보험, 금융 지원 등을 조정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최근 거론되는 항만공사 통합 역시 같은 기준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통합 자체가 목표가 되면 조직과 권한의 재배치에 머물 수 있다. 부산·인천·여수광양·울산항은 화물구조와 지역산업, 재무여건이 서로 다른 만큼 항만별 전문성과 책임성도 존중돼야 한다. 통합의 실익은 국내 항만시설을 한 조직이 관리하는 데서가 아니라, 분산된 자본과 인력, 데이터를 결합해 해외 물류망을 확보하고 국가 해상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느냐에서 찾아야 한다.

싱가포르 PSA가 참고가 될 수 있다. PSA는 싱가포르항 운영에 머물지 않고 세계 여러 지역의 항만과 철도·내륙터미널, 해운지원 서비스와 디지털 플랫폼을 연결해 글로벌 공급망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국내 항만공사들도 단순한 항만시설 개발·임대기관을 넘어 해외 터미널 투자, 현지 내륙물류거점 확보, 국적선사·화주와의 공동사업, 디지털 공급망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주체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항만공사의 통합 여부에 앞서 해외투자 권한과 위험관리 기준, 전문인력, 민관 공동투자 구조, 항만 간 데이터 연계부터 설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공동 지주 또는 해외사업 전담 플랫폼을 먼저 구축하고 성과를 검증한 뒤 조직 개편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해상공급망 통제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박과 항만 같은 자산뿐 아니라 정보, 계약, 네트워크, 전문인력과 위기대응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저빈도와 고충격 위험을 분담하고, 여러 주체가 공동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제도와 플랫폼을 마련하는 데 있어야 한다. 항만공사의 통합문제도, 지정학 리스크가 산재한 북극항로의 상용화도 이 큰 틀 안에서 추진될 때 서로 분리된 사업이 아니라 국가 해상공급망 역량을 높이는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앞으로 국가 경쟁력은 평상시 얼마나 많은 화물을 처리했는가만으로 평가되기 어려울 것이다.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대만 해협, 말라카 해협, 바브엘델만 해협, 호르무즈 해협 등에서 동시에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우리 기업의 공급망과 국민을 위한 에너지·식량자원 공급망이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강한 구호가 아니라 정보를 함께 보고, 선택을 함께 결정하며, 그 선택을 실행할 선복과 물류거점을 갖추는 일이다. 복합위기가 상존하게 될 바다에서 해상 공급망의 통제력을 높일 수 있는 거버넌스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차분히 준비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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