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권 못 받을까 철거 못 해”…‘사람 잡는 빈집’ 법 개정을
붕괴 등 안전사고 위험 높은 빈집
현행법상 철거할 수 있도록 명시
재개발 기대되는 지역 소유주들
추후 입주권 못 받을까 철거 반대
강제 철거 기준 마련 등 대책 필요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 산복도로 아래 붕괴 우려가 높은 노후 빈집이 밀집해 있다. 폭우 등이 발생하면 주민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종회 기자 jjh@
역대급 폭우와 같은 극한 기후 속에 노후주택, 방치된 빈집들이 인근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현행법상 빈집은 붕괴, 화재 등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경우 철거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재개발 기대 지역인 경우 소유주들이 추후 입주권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철거에 반대한다. 주민들은 언제 덮칠지 모르는 ‘기우뚱 이웃집’을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이다. 강제 철거 기준 마련 등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8일 부산 동구 수정동에서 2층 단독주택 일부가 무너져 내리면서 70대 남성이 대피 도중 부상을 입었다. 해당 주택은 60년이 넘은 주택으로, 관할구청은 수 차례 반복된 불법 증축을 사고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2024년 10월에는 부산 서구 아미동 주택재개발 구역에서 오래된 빈집이 무너져 주민 10여 명이 대피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후주택 붕괴가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2019년 9월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의 2층 단독주택이 무너지면서 1층에 살던 70대 여성이 이사를 하루 앞둔 날 참변을 당했다.
부산은 특히 경사진 곳에 다닥다닥 붙은 노후주택이 많아 붕괴 위험 주택은 곧 이웃집을 위협한다. 부산진구 범천2동 김훈섭 37통장은 “이 동네에서도 뒷집이 무너져 앞집을 덮친 적이 있어 구청에서 긴급 보수에 나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범천2동 정경우 35통장도 “이미 담벼락과 외벽이 배가 부른 것처럼 휘어져 있고, 슬레이트 지붕도 조각조각 부스러져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집들이 많다”며 “인근 거주자들은 대부분 혼자 있는 고령자들이라 어디 갈 곳도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당장이라도 철거에 나서야 할 상황이지만 관련 법 규정이 붕괴 위험이 높은 경우, 공익상 유해한 경우 등 정성적으로 돼 있다 보니 지자체에서는 소유주 동의 없이는 강제 철거를 강행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특히 정비구역 지정 전 재개발이 기대되는 지역의 경우 지자체 조례상 주택이 멸실되면 과소토지(예컨대 60㎡ 미만) 단독 소유자나 무허가 건축물 소유자는 분양대상자(입주권) 자격을 상실하거나 현금 청산 대상이 될 수 있어 소유주들이 철거를 더욱 꺼리는 실정이다. 주택 철거 후 나대지가 되면 주택보다 재산세 부담이 커지는 점도 철거 동의를 쉽게 해주지 않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부산진구의 한 새뜰마을 사업장에는 고령 소유주를 대신해 딸의 동의를 받아 빈집 철거에 나섰다가 철거 도중 아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천막으로 다시 덮은 집 사례도 있었다.
부산진구청 관계자는 “무허가 건축물의 경우 소유주 확인이 돼도 동의하지 않으면 추후 민사소송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강제 철거는 어렵다”면서 “특히 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재산상의 이익을 목적으로 취득하신 분들은 철거 비용 3000만~5000만 원을 구청에서 부담하겠다고 해도 보상해 주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시설물 안전·유지관리 특별법 또는 건축물관리법 상의 철거 대상인 정밀안전진단 E 등급이 나오거나 빈집 실태조사 4등급(철거 필요 등급)이 나오는 집들의 경우 구청이 직권철거를 하거나 행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정량적 요건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부산진구 범천2동 절골·미실새뜰마을사업 박영숙 총괄코디네이터는 “대신 주택 철거 후에도 10년간 주택으로 간주해주고, 세제상 불이익이 없게 해주며, 철거 당시 감정평가액을 인정해주는 등의 혜택을 함께 주면 동의율이 높아질 것이다”며 “빈집 문제가 가장 심각한 부산은 앞으로 빈집 붕괴 문제 또한 가장 심각해질 수 있는 지역”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위력적인 폭우, 태풍이 증가하는 만큼 시민 안전을 위해 한시바삐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