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출가하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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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우 (1952~)

새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나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로 빈털터리로 빈 몸뚱어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풍속을 거슬러 갈 줄 안다

생후의 거센 바람 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 본다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2025) 중에서

이 시는 이상적인 존재로 그려진 새를 통해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자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속적 가치에 연연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 지향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출가’라는 불교적 어휘는 세속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화자의 심리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풍속을 거스르는 강한 의지를 지닌 새의 면모는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누구에게나 추구하는 대상이자 목표인 ‘내일의 숲’이 있을 겁니다. 날아가는 새들에게서 부재의 존재를 짚어볼 수 있지만 더불어 우리는 의지와 에너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도 함께 생각해봅니다.

거슬러 갈 줄 아는 자세로 내일을 꿰뚫는 지혜,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을 추구해야 할 대상으로 바꿀 줄 아는 힘이 필요한 시절입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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