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소송 시기 놓친 로펌 탓 ‘황당 패소’… “피해액 70% 지급하라”
아파트 계약 후 시행사 사해신탁
취소 소송 ‘1년 제척’ 경과로 패소
피해자, 9개월 미룬 로펌 손배소
원고 일부 승소 판결 후 로펌 항소
부산지법 청사. 부산지법 부산고법 부산가정법원. 부산법원 종합청사. 부산일보DB
2017년 4월 70대 남성 A 씨는 부산 금정구의 한 아파트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공급 계약상 금액은 3억 674만 원이었으나, 실제 분양 대금 1억 6000만 원을 시행사인 B 사에 완납했다. 하지만 자신 소유의 집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일만 남았다고 믿었던 A 씨의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B 사는 아파트 소유권보존등기가 끝난 뒤 신탁회사 C 사와 신탁계약을 체결하며 소유권을 넘겨버렸고, A 씨에게 약속했던 소유권 이전 등기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기다리다 못한 A 씨는 2020년 11월 C 사를 상대로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의 결정을 받아냈다. 이어 2021년 4월 A 씨는 부산의 한 법무법인을 찾아가 시행사와 신탁회사 사이의 신탁계약이 채권자를 해하는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며 이를 취소하는 소송 등을 위임했다.
소송을 맡은 로펌은 곧바로 소장을 접수하지 않았다. 로펌 측이 부산지법에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위임 계약 후 약 9개월이 지난 2022년 2월이었다. 1심 재판부는 “B 사와 C 사 사이의 신탁계약은 사해행위이므로 취소하고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라”며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씨가 적어도 처분금지 가처분 결정의 기입등기가 마쳐진 2020년 11월 사해행위의 요건을 알았다고 판단했다. 민법 제406조 제2항에 따라 사해행위 취소 소송은 채권자가 취소 원인을 안 날부터 1년 이내에 제기해야 하지만, 로펌이 이 기간을 넘겨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신탁회사 C 사에 대한 소를 각하했다. 해당 판결은 대법원 상고까지 이어졌지만 뒤집히지 않았고, A 씨는 신탁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됐다.
허탈감과 분노에 휩싸인 A 씨는 자신을 대리했던 법무법인을 상대로 아파트 공급 계약상 금액인 3억 674만 원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로펌 측은 법정에서 “합의 요청이 있었고, 사실관계 파악과 증거 수집에 시간이 걸려 소 제기가 늦어졌을 뿐이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산지법 민사16단독 오세영 판사는 지난 5월 “법률 전문가인 피고(로펌)는 제척기간에 관해 의뢰인에게 합리적인 범위에서 조언하거나 설명하고, 기간 내 소송을 제기할 주의의무가 있었음에도 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증거 수집에 9개월 이상이 필요했다는 로펌 측 주장에 대해서도 “경험칙에 비추어 믿기 어렵다”며 “소 제기 후 추가로 증거를 수집하거나 증거신청을 하는 방법으로 보완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설령 A 씨가 합의를 위해 소송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더라도 로펌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법률 전문가라면 제척기간이 지나면 소송이 각하될 수 있다는 위험을 설명하고, 기간 내 소송을 제기할 것인지 의뢰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조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사해행위 취소 소송에서 이겼더라도 아파트 소유권이 곧바로 A 씨에게 넘어오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신탁회사 명의의 등기가 말소되면 소유권은 시행사로 돌아가고, A 씨는 분양 대금 반환 채권을 받아낼 수 있는 지위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손해를 실제 지급한 분양 대금 1억 6000만 원 상당으로 판단했다.
또 A 씨가 앞선 가처분 신청과 형사고소 관련 사실을 로펌에 충분히 알렸는지 불분명하고, 소송에서 이겼더라도 다른 채권자들과 함께 재산을 추심해야 했을 가능성 등을 고려해 로펌의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법원은 “법무법인은 A 씨에게 1억 1200만 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로펌 측은 항소했고, 오는 29일 첫 항소심 변론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A 씨는 “변호사만 믿고 가만히 있으라 해서 따랐을 뿐이다. 법에서 정한 기본 기간조차 지키지 못해 재판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쫓겨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비록 로펌의 과실로 항소심까지 이어지는 험난한 싸움을 겪고 있지만, 이번 재판을 통해 무너진 권리를 반드시 바로잡고 싶다”고 밝혔다.
〈부산일보〉 취재진은 로펌에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