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팬스타 아크로' 효과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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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부산크루즈산업협회 회장

불신을 신뢰로 바꾼 '51일 북극 항해'
"뒤따르는 배들이 펼칠 첫 해도" 평가
이제는 정기 운항 경제성 확보할 때
속도, 연대의 힘, 거점 마련이 해결책

‘시험’(test), ‘무모함’(rash)이란 불신의 단어가 ‘완수’(complete)라는 신뢰의 용어로 바뀌는 데 정확히 51일이 걸렸다. 북극항로를 개척하고 돌아온 팬스타 아크로호에 대한 외신들의 보도가 이렇게 시나브로 변했다는 얘기다. 챗지피티(ChatGPT)에 ‘팬스타 아크로’란 이름이 들어간 기사를 물었더니 공개 웹에서만 무려 15개 언어, 126건이나 됐다. 블룸버그, 로이터 등 세계적인 뉴스통신과 신문, 방송이 ‘팬스타 아크로’의 북극 항해를 앞다퉈 보도했다.

컨테이너선 한 척이 이렇게까지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적이 있을까. 필자는 이 작은 출항이 일으킨 파장을 ‘팬스타 아크로 효과’라고 부르고 싶다. 에드워드 로렌츠의 ‘나비효과’에 빗댄 표현이지만, 지금의 작은 날갯짓이 어떤 파장으로 다가올지 정말 모르겠다.

팬스타 아크로호는 지난 8월 22일 부산항을 떠나 20일 만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리고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에 기항한 뒤 다시 북극을 통과해서 10월 11일 부산항으로 귀환했다. 지나온 바다 이름이 발틱해, 북해, 노르웨이해, 바렌츠해, 카라해, 랍테프해, 동시베리아해, 척치해, 베링해, 태평양, 오호츠크해, 동해 등 무려 12개나 된다. 출항 전 그린 지도에서 북극항로는 지극히 짧고 간단한 곡선이었지만 항해일지가 전한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해빙 때문에 배를 멈추고, 날마다 달라진 바다로 인해 항로를 계속 바꿔야 했다. 해빙을 피해서 무려 350km나 우회한 사례는 북극항로가 얼마나 혹독한 곳인지를 오롯이 드러낸다. 지도에 그은 선대로 이행되는 항해가 아니었다. 얼음은 움직이고, 바람은 얼음을 모으며, 열린 길은 다시 좁아지고 막혔다. 이런 모든 변수를 통제할 능력이 없다면 시간 단축은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안 되면 돌아오지”라는 ‘긍정의 힘’이 등을 떠밀었고 무모함이 ‘억세게 운 좋은’ 성과를 낳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린 귀항 환영식에서 “뒤따르는 배들이 펼쳐볼 첫 해도이자 대한민국이 북극으로 가는 길잡이”라는 말로 팬스타 아크로호의 항해를 높이 평가해 우리 모두를 숙연케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평가가 시장에서도 호응하려면 다음 배의 안전과 화주의 신뢰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선박과 선원, 연료, 보험, 화물 등 모든 항목을 다시 챙겨야 한다. 특히 컨테이너선의 시범 운항은 다른 선종과는 다르다. 벌크선이나 LNG선은 한 화주로 구성되지만, 정기 컨테이너선은 수많은 화주가 존재한다. 다행히 이번 항해에서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선적서류와 통관서류 등)을 성공적으로 처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전산 시스템이 국가마다 달라서 컨테이너선의 경우 시범운항이 곧 상업운항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정기 서비스의 경제성은 또 다른 얘기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지적했지만, 컨테이너 운송 사업은 초대형 선박과 이들이 기항할 수 있는 터미널 확보가 중요한데, 북극항로는 수심이 얕아서 그런 선박의 투입을 꿈조차 꿀 수 없다. 필자는 이에 ‘피스톤 항해’(Piston Voyage)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싶다. 말 그대로 ‘총알 배송’으로, 총구에서 막 나온 총알처럼 목표 지점까지 직항하는 항해다. 화물을 모으려고 여러 항만을 순회하기보다 출발 전에 물량을 다 확보하고 20일 만에 유럽에 도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에즈 상업 항로보다 통상 25~40일, 희망봉 상업 항로보다 무려 35~50일 더 빠르니 실질적인 시간 경쟁력이 확보된다. 팬스타는 부산-오사카 정기선 운항과 산둥-오사카 로로선 서비스로 이런 노하우를 26년간 축적했다.

세계 최대의 수출 물량을 가진 중국은 흔히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으로 불린다. 그러나 물량 경쟁력보다 더 강한 것은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선사끼리, 혹은 이웃한 일본 선사와의 공동 배선으로 출항 간격을 좁히고 유럽에 진출한 두 나라 기업의 귀항 화물을 함께 확보할 수 있다면 만리장성을 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물론 북중국의 부산항 환적물량도 포섭할 필요가 있다.

북극항로의 두 끝에 우호적인 거점을 마련하는 것도 늦지않게 준비해야 한다. 베링해로 접근하는 길목의 캄차카반도는 대러 제재가 완화될 때 부산의 터미널 운영 경험이 녹아든 환적·보급·수리 거점이 되고, 노르웨이의 주요 항만은 유럽 화물을 나누고 모으는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 외신의 관심이 화주 신뢰로, 항해일지가 운항 기준으로 이어질 때 ‘팬스타 아크로 효과’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긍정의 힘으로 배를 띄웠다면, 이제는 데이터와 연대, 그리고 양 끝의 거점 구축으로 그 배가 오랫동안 ‘오갈 길’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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