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877표에 담긴 부울경 통합의 정치경제학
박완수 행정통합… 전재수 특별연합 고수
부울 민주·경남 국힘 통합 셈법 엇갈려
민주 현 체제 안정… 국힘 판 재편 기대
인구 750만·366조 거대 광역정부 탄생
통합단체장 정치적 위상·발언권 커질 듯
정치공학 넘어 경제 실익·시민 동의 관건
“부산·울산 단체장이 행정통합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통합 절차를 시작할 생각이 있다.” 박완수 경남지사가 지난 6일 민선 9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부산과 울산에 결단을 촉구했지만, 전재수 부산시장은 “실현 불가능한 제안”이라고 맞받으며 경제협력 중심의 특별연합을 고수했다. 불과 한 달 전 부울경 3개 시도지사가 광역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공동선언문까지 채택했지만, 통합 방식의 간극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같은 목표를 두고 왜 이처럼 해법이 엇갈릴까. 부울경 단체장간에 통합을 바라보는 절차와 정책적 철학이 다른 탓도 크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행정통합은 행정구역뿐 아니라 정치권력의 대대적 재편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부산·울산·경남의 광역단체장 세 자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줄고, 750만 명이 넘는 주민을 대표할 통합단체장을 새로 뽑아야 한다.
광주·전남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통합특별시장을 선출했다. 양 지역 단체장과 지역 정치권 주류가 모두 민주당이어서 광역단체장 두 자리가 하나로 줄더라도 중앙당 차원에서 당내 교통정리가 가능한 구조였다. 대구·경북 역시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들이 통합 추진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면 부울경은 다르다. 부산과 울산은 민주당, 경남은 국민의힘이 지방권력을 차지하고 있다. 통합 시기와 방식에 따라 권력 지형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여야의 유불리도 바뀐다.
지난 6·3 지방선거 결과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산에서 민주당 전재수 후보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를 4만 5941표 차로 이겼다. 반대로 경남에서는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가 민주당 김경수 후보를 4만 5064표 앞섰다. 두 지역 양당 후보의 표를 합치면 민주당 173만 8519표, 국민의힘 173만 7642표로 차이는 고작 877표다. 울산도 민주당 김상욱 후보가 국민의힘 김두겸 후보를 1만 7505표 차로 앞섰지만, 보수 계열 무소속 박맹우 후보가 3만 2363표를 얻은 것을 감안하면 정치적 균형은 팽팽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셈법도 엇갈린다. 민주당은 부산과 울산 두 시정권력을 갖고 있다. 특별연합을 택하면 두 시장직을 유지하면서 초광역 협력의 성과도 낼 수 있다. 반면 행정통합은 이미 가진 두 자리를 하나의 불확실한 통합단체장 자리와 바꾸는 일이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경남 한 곳만 가지고 있지만, 통합 후 선거에서 승리하면 부울경 전체의 행정권을 확보할 수 있다.
단체장 개인의 정치적 시간표도 다르다. 전재수 부산시장과 김상욱 울산시장은 초선이다. 부산 민주당은 2021년 보궐선거에서 시장직을 내준 뒤 5년여 만에 시정권력을 되찾았고, 울산 민주당도 2022년 내줬던 시장직을 4년 만에 탈환했다. 두 시장에게는 시정 성과를 내고 지역 내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 우선일 수 있다. 반면 박완수 지사는 재선으로 도정의 연속성과 정치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다.
결국 부울경은 통합 대상이면서 동시에 여야의 승부처다. 세 단체장이 같은 당이 된다면 통합 논의가 급속히 힘을 받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여야가 갈리면 통합이 어느 한쪽의 권력 확대나 축소라는 정치공학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러나 통합 논의가 정치공학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통합단체장이 탄생하면 부울경의 위상 자체가 달라진다. 부울경이 하나로 합쳐지면 인구 750만 명, 지역내총생산 366조 원 규모의 거대 광역정부가 탄생한다. 통합단체장은 중앙정치에서도 서울시장 못지않은 위상과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경제적 유인도 분명해야 한다. 광주·전남 통합에 대규모 국가 지원과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구체적 보상이 주어졌듯, 부울경도 가덕신공항과 해양항만, 광역철도, 조선·원전·수소·미래모빌리티·우주항공·방산을 하나의 성장전략으로 묶고 대규모 재정지원과 규제·세제 특례를 끌어내야 한다.
최종적으로 통합의 열쇠가 돼야 하는 것은 시민적 동의다. 부산에서는 통합 이후 재정 배분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경남에서는 부산 중심 체제에 흡수될 수 있다는 걱정이, 울산에서는 거대 부산 중심 광역정부의 주변부로 밀릴 수 있다는 불안이 나올 수 있다. 이 지역별 손익계산을 넘어설 만큼 통합 편익이 분명해야 한다.
통합의 최종 판단에서 정치공학은 어디까지나 후순위여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통합을 촉진하거나 늦추는 변수가 될 수 있지만, ‘꼬리’가 ‘몸통’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박태우 정치부장 wideney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