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부산, 물 들어온다
최혜규 경제부 부장
외국인 관광객 400만 시대는 부산의 기회
고유의 소프트파워 도시 경쟁력으로 연결
사람 먼저 부르고 기업이 따라오게 한다면
“요즘 부산에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도시에 좋은 기운이 들어오는 시기인가 보다.” 이런 말들을 많이 듣는다. 도심 친수공원에 느닷없이 나타난 상어 부캉이가 단연 주인공이다. 시작은 평일과 주말, 도심과 자연 할 것 없이 곳곳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보이면서부터였다. 대만 여행객들의 ‘부산병’은 처음엔 과장 아닌가 했다. 국내에서도 부산에 대한 선망을 고백하는 타지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정말 그런가 싶다.
규모 자체가 커진 K관광 중에서도 부산을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면 자연 환경과 문화·관광 자원, 라이프스타일과 같은 소프트파워의 힘이다. 정부 정책이나 상업적 기획보다 부산만의 풍경, 부산만의 지역성, 부산만의 역사를 품은 콘텐츠들이 사람들을 자발적인 팬으로 만들었다. 10월의 부산을 들썩이게 한 부캉이와 부산국제록페스티벌, 부산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다.
북항친수공원은 장벽 너머 삼엄한 보안 구역이던 노후 항만을 재개발한 곳이다. 피난과 파병 부두에서 경제발전 신화를 이끈 수출 역군의 현장을 지나 누구나 거닐 수 있는 친수공원으로 돌아왔다. 이곳을 20일째 떠나지 않고 있는 상어는 소셜 미디어에서 ‘부캉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단숨에 친근한 존재가 됐다. 부산 시민들조차 잘 모르던 ‘북항’까지 전국에 알린 건 부수적인 효과다.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주문한 ‘슬리퍼를 신고 가서 즐길 수 있는’ 북항 재개발의 비전이 부캉이로 실현된 셈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31년 전 ‘지방에서 무슨 영화제냐’는 냉담한 시선 속에서 아시아 대표 영화제를 꿈꾼 영화청년들의 열정에서 출발했다. 공식 약어는 영문 앞 글자를 따서 BIFF다. 처음에는 PIFF였다. 부산이 로마자 표기법상 ‘Pusan’에서 ‘Busan’으로 바뀐 뒤에도 수년간 개명을 미뤘다. 공식 명칭과 상관 없이 전국의 영화 팬들은 ‘부국제’를 호명하기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바다 어귀의 전용 상영관뿐 아니라 커뮤니티비프와 동네방네비프의 이름으로 부산 전역을 찾아간다.
지난 주말 열광 속에 끝난 부산국제록페스티벌도 있다. 2000년 제1회는 7월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렸다. 이후 다대포해수욕장을 거쳐 지금의 탁 트인 삼락생태공원으로 무대를 옮겼다. 2019년 유료화를 결정할 때는 논란도 있었다. 이제는 전국에서 4만 명 넘는 유료 관객이 몰리는 국내 1위 음악 축제로 자리 잡았다. 관객들은 특히 8년째 누적 17억 원을 후원한 부산 기업 대선주조의 소주 하이볼바나 사상구 한신2차아파트부녀회의 부추전과 소고기국밥 부스 같은 지역성에 호응한다.
물론 관광도시가 곧바로 도시 전체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부산은 소프트파워를 활용해 관광산업을 넘어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인구 정책 측면에서 보면 일자리보다 부산만의 차별화된 문화 환경과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전문가를 취재한 적이 있다. 좋은 일자리가 적어서 청년이 떠나니까 대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맞지만, 가고 싶은 도시,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면 사람이 모이고 그들이 창업을 하고 기업이 인재를 따라올 수도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소개한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연구도 비슷하다. 5개 대륙 80개 도시, 약 1만 7000명을 조사한 결과 도시가 제공하는 일상 생활의 질에 만족하는 노동자가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직무 만족도가 30%포인트나 높았다. 소위 ‘경험 보너스’가 도시의 규모나 편의 시설의 숫자보다 훨씬 중요했고, 젊은 층일수록 더 그랬다. 보고서는 인재들은 갈수록 이미 유명한 대도시가 아니라 일상 생활이 더 풍요롭고 더 연결되어 있으며 더 개방적이고 가능성으로 가득 찬, 떠오르는 도시를 선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콜로라도주의 인구 10만 소도시 볼더와 텍사스주의 주도 오스틴이 모델로 꼽힌다. 볼더는 로키산맥 관광의 거점이자 첨단 기술 산업과 웰빙 산업이 집중된 ‘스타트업의 성지’다. 오스틴은 매년 봄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예술축제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주요 사업장으로 유명하다. 일본 최초로 스타트업 비자를 도입해 청년 인구비율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후쿠오카도 가까운 예다.
물이 들어올 때는 일단 노를 저어야 하고, 동시에 다음 파도를 대비해 배도 지어야 한다. 공공기관을 유치하고 대기업을 모셔오는 것은 어렵고 또 중요하다. 이미 갖고 있는 부산의 소프트파워 자산과 그 토대 위에서 싹트고 있는 새로운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키워내는 것도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지금 좋은 파도가 물러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