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해양도시의 혁신] 8km 다리 놓이자 ‘북유럽 경제 허브’ 꿈틀댔다
(3) 초국경 협력 말뫼·코펜하겐
2000년 7월 외레순드 해협 교량 개통
두 도시 하나의 생활권 묶은 ‘외레순드’
26년 뒤 성공적 경제 교류·통합 모델로
노동시장 활성화·젊은 인재 유입 효과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를 잇는 외레순드 다리가 2000년 7월 개통돼, 두 도시의 초국경 경제협력을 견인했다. 외레순드 연구소 제공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이 있는 셸란섬과 스웨덴 말뫼를 품은 스코네 반도는 옛부터 외레순드 해협(Øresund Strait)을 두고 교류해 왔다. 과거에는 주로 배를 이용해 바다를 건너 오갔지만, 지난 2000년 7월 1일 두 지역을 연결하는 길이 약 8km의 외레순드 다리가 개통된 이후부터 두 도시는 하나의 경제권을 만들어내며 성장해왔다. 현재 외레순드 지역은 국경을 초월한 성공적인 지역 협력과 경제 통합의 글로벌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단순히 두 나라가 다리 하나로 연결된 것을 넘어 국경이라는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깨고 북유럽 물류와 경제의 핵심 중추로 진화해 ‘하나의 완전한 경제·생활권’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말뫼의 눈물’을 아시나요?
두 도시의 성공 사례는 말뫼의 쇠락에서 기인했다. 스웨덴의 제3도시 말뫼는 20세기 중반까지 코쿰스 조선소를 앞세운 스웨덴 조선업의 심장이었다. 1970년대 코쿰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갠트리 크레인을 설치했고, 이 크레인은 도시 전체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글로벌 조선 시장의 무게 추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한국과 일본 등으로 옮겨가면서, 유럽의 조선소들은 차례로 무너지고 말았다. 말뫼의 코쿰스 조선소 역시 오랜 적자 끝에 1986년 문을 닫았다. 말뫼는 수천 명의 실업자가 발생했고 도시 전체가 활기를 잃어갔다.
문 닫은 조선소 마당에 10년 넘게 흉물처럼 서 있던 거대한 갠트리 크레인은 이후 2002년 9월 단돈 1달러에 매각이 결정됐다. 공교롭게도 이 크레인을 사들인 건 우리나라 현대중공업이었다. 그리고 크레인이 해체돼 배에 실려 울산으로 떠나던 날, 이 장면을 생중계하던 스웨덴 국영 방송은 많은 시민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송출했고, 이 모습을 ‘말뫼의 눈물’로 묘사했다.
물론, 크레인이 한국으로 팔려나간 날은 외레순드 다리가 개통되고 2년 뒤의 일이다. 하지만 말뫼의 산업 붕괴는 1970년대 중반부터 위태로웠다. ‘말뫼의 눈물’은 산업도시가 지식·서비스 도시로 탈바꿈해야 했던 절박함의 상징이었고, 외레순드 다리는 전환의 돌파구가 됐다.
▲다리가 두 도시를 모두 이롭게 하다
다리는 도로는 물론 철도와 지하철도 다닐 수 있게 했다. 코펜하겐 도심과 말뫼시 중간에 위치한 코펜하겐 공항에도 철도와 지하철이 연결됐다. 지금 카스트루프 국제공항은 스웨덴 남부와 덴마크 전역에서 직행 열차로 오갈 수 있다. 덕분에 이 공항은 북유럽 최대 공항으로 성장했다.
외레순드 연구소 안나 팔메하그((Anna Palmehag) 선임 분석가는 “초기 단계에서는 다리를 단순히 인프라로만 생각했는데, 다리 건설이 결정되고 완공 시기까지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파생 효과를 연구하는 작업이 진행됐다”면서 “이 과정에서 가장 주목한 곳이 바로 코펜하겐 공항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코펜하겐에는 일자리가 많고 말뫼에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기에, 이들이 다리를 통해 쉽고 빠르게 오갔고 두 도시의 요구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다리를 통해 15분 간격으로 기차가 다니고, 오랜 시간 이들은 같은 생활권에 살았고, 스웨덴 사람들은 영어에도 능통했기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공항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로 합쳐진 노동시장의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외레순드 연구소에 따르면, 다리 개통 직전인 1999년 해협을 건너 통근한 사람은 2788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4년 통근자 수는 2만 1908명으로 늘었고, 2026년 1분기에는 2만 3177명에 이르렀다. 25년 만에 약 8배가 된 셈이다.
2026년 1분기 기준 스웨덴에서 덴마크 동부로 통근한 사람은 2만 2379명으로 1년 전보다 6% 늘었다. 반대로 덴마크에서 스웨덴 스코네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798명으로 3% 줄었다. 통근 흐름은 압도적으로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향한다.
스웨덴 말뫼와 덴마크 코펜하겐은 외레순드 다리로 연결돼 기차로 40여 분이면 국경을 넘어 출퇴근이 가능하다. 아침 출근시간 말뫼 중앙역 플랫폼에 덴마크로 출근하려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기차에서 내려 이동하는 모습. 외레순드 연구소 제공
▲젊은 인구가 유입되는 도시, 말뫼
말뫼에서는 도심을 관통하는 시티터널이 2010년 개통해 새로운 기차역 두 곳이 생겼다. 이곳에는 신도시도 들어섰다. 코펜하겐의 외레스타드, 말뫼의 휠리는 모두 외레순드 열차역을 품고 있다. 뒤이어 신도시에는 대형 복합 스포츠 경기장인 로열 아레나와 말뫼 아레나, 쇼핑센터 필즈와 엠포리아가 세워졌다.
스포츠 교류도 눈에 띈다. 핸드볼 세계·유럽 선수권대회에서 말뫼 아레나는 덴마크 대표팀의 홈구장 역할을 해왔다. 덴마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이곳은 붉은 응원단으로 가득 차고, 응원석에는 “말뫼는 덴마크”라고 적힌 깃발이 걸린다.
소득 수준은 코펜하겐이 높고 세금은 말뫼가 낮은 편이었기에 젊은 층의 말뫼 유입도 늘어났다. 팔메하그 분석가는 “말뫼의 경우 전체 인구의 평균 연령이 30대로 상당히 젊은 도시가 됐다”면서 “일자리가 많으니 일하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가 됐고, 자연스레 말뫼에 정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외레순드는 또 국제해새대학교 등 대학 13곳과 분교를 갖춘 북유럽 최고 수준의 대학·연구 지역이다. 덴마크와 스웨덴이 함께 키운 생명과학 클러스터 ‘메디콘 밸리’에는 노보 노디스크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자리한다.
▲북유럽 최대 경제 벨트 ‘그레이터 코펜하겐’
외레순드 해협을 중심으로 뭉친 국경 초월 협력체 ‘그레이터 코펜하겐(Greater Copenhagen)’은 북유럽 성장의 핵심 엔진으로 꼽힌다. 덴마크와 스웨덴 4개 광역정부와 85개 기초지자체로 구성된 이 지역은 인구 약 440만 명의 거대 단일 노동 시장을 형성하며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가장 높은 인구 밀도를 자랑한다.
경제적 위상도 독보적이다. 연간 명목 GDP가 약 1500억~1800억 유로(한화 약 220조~260조 원)에 달해 양국 전체 GDP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세계적인 생명과학 클러스터인 ‘메디콘 밸리’와 룬드의 첨단 연구소 ‘MAX IV’ 등이 이 지역의 혁신과 고부가가치 창출을 견인하고 있다.
물류 허브로서의 가치 또한 유럽 최고 수준이다. 코펜하겐과 스웨덴 말뫼를 잇는 외레순드 대교는 국경 없는 화물 이동을 현실화했다. 북유럽 최대 화물·여객 거점인 코펜하겐 국제공항과 세계적 해운사 머스크(Maersk)의 본사가 결합해 강력한 공급망 인프라를 제공한다. 더불어 차량으로 3시간 거리 내에 스칸디나비아 기업의 55%가 밀집해 있어, 유럽 본토와 발트해를 연결하는 대체 불가능한 동북유럽 최고의 물류 교두보로 자리매김했다.
팔메하그 선임 분석가는 “다리는 이제 연결과 협력의 상징이 됐다”면서 “외레순드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다리 하나가 아니라, 인프라가 두 도시의 노동시장과 연구·투자를 하나로 묶을 때 생기는 시너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