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그늘… 중기 ‘은행 연체율’ 10년 만에 최고치
반도체 호황·국민소득 4만 달러 속
중기 대출 연체율 3분기 연속 상승
5대 은행 부실채권도 급증 추세
긴축 기조로 이자 부담 지속될 듯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연체가 쌓이며 주요 은행의 연체율이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시내에 설치된 여러 은행의 ATM기 모습. 연합뉴스
반도체 수출 호황에 힘입어 한국경제가 올해 역사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 흑자 세계 2위, 경제성장률 전망치 3.7%,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 확정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내수 현장의 분위기는 이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 연체가 쌓이며 주요 은행의 연체율은 약 10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산업별 양극화 현상이 은행 대출 장부를 통해 고스란히 증명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은행의 올해 3분기 말 기준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은 평균은 0.42%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1분기(0.45%)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0.37%)보다 0.05%포인트(P), 직전 분기(0.39%)보다 0.03%P 올랐다.
특히 기업대출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0.49%로 2017년 2분기(0.58%)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 중 중소기업 연체율은 0.60%에 달했다. 역시 2017년 1분기(0.6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4분기 0.49%까지 낮아졌던 중소기업 연체율은 올해 1분기 0.57%, 2분기 0.58%, 3분기 0.60%로 세 분기 연속 상승했다.
반도체 등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경기가 살아나는 동안 정작 내수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은 더 크게 나빠진 것이다. 2017년 당시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과 경기 둔화가 부실을 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도체 호황 속에서 내수 취약 업종의 부실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양상이 다르다.
업종별로 보면 경기 양극화가 더 선명하다. 도소매업 연체율이 0.71%로 가장 높았다. 건설업(0.69%), 숙박·음식점업(0.55%), 부동산업(0.51%)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제조업은 0.36%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소비자 지갑과 부동산 경기에 민감한 업종에서 상환 부담이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매출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자 비용까지 늘어나자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기업 연체율 역시 0.18%로 2021년 2분기(0.19%) 이후 가장 높았다. 전 분기(0.08%)보다 크게 올랐는데, 은행권은 중앙그룹 계열사의 워크아웃·회생절차 등 개별 요인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금리 상승기 차주들의 원리금 부담이 커지며 부실채권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5대 은행의 3분기 말 고정이하여신은 7조 6133억 원으로, 1년 전(6조 3285억 원)보다 1조 2848억 원 증가했다. 이는 2018년 1분기(8조 2143억 원) 이후 최대 규모다. 고정이하여신은 회수 가능성이 낮아 부실채권으로 분류하는 대출이다. 5대 은행의 3분기 말 전체 원화대출 고정이하여신 비율 단순 평균값은 0.40%로 집계됐다. 이는 전 분기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작년 동기(0.35%)보다는 0.05%P 올랐다.
특히 5대 은행의 부실채권 중에서도 회수가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평가되는 추정손실 여신은 3분기 말 1조 931억 원으로 작년 동기(9210억 원)보다 18.7% 급증했다. 잠재 부실 여신인 ‘요주의’ 여신 규모도 늘어나는 추세다. 요주의 여신 규모는 10조 5285억 원으로 작년 동기(10조 2734억 원) 대비 2.5%, 전 분기(10조 2171억 원) 대비 3.0% 늘어났다. 요주의 여신은 일반적으로 1∼90일 동안 원리금 상환이 연체돼 은행들이 떼일 우려가 커진 대출을 뜻한다. 이 여신은 연체 기간이 90일을 넘기면 고정이하로 다시 분류될 수 있는 만큼 요주의 여신의 증가는 향후 부실채권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국내 통화정책이 당분간 긴축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앞서 지난 7월과 8월 기준금리를 잇따라 인상한 뒤 10월에는 연 3.00%로 동결했다. 하지만 추가 인상 가능성이 남아 있는 데다 시장금리도 빠르게 오르면서 취약 차주의 이자 부담은 쉽게 줄어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시장에서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르면 이달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한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성장세나 물가 오름세가 8월 전망보다도 강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금의 긴축적인 정책 기조를 계속 이어갈 필요가 있다”며 “물가 오름세가 목표 수준(2%)에 안정적으로 도달한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주요 거시경제 지표를 보면 금융권의 지표들과는 분위기가 크게 다른 모습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1.0% 성장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2.3%, 설비투자가 4.1% 늘어난 결과다. 특히 정부는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4만 달러대에 진입할 것이 확정적이라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출과 성장률이 뚜렷하게 좋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은 여전히 크게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현실”이라며 “고금리 정책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 분명한 만큼 이 같은 양극화 현상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