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읽기]권태를 치료할 수 있다면?
■이현지/그 약을 주세요
<그 약을 주세요> 책표지. 출판사 제공
세간에서는 ‘사랑은 호르몬의 장난’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사랑을 해부하면 그 속에는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같은 물질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쾌락, 흥분, 설렘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호르몬의 작용’은 통상 1~2년의 유효 기간을 갖는다고 한다.
지난달 온라인에서 발간된 단편소설 <그 약을 주세요>는 이러한 사랑의 유효 기간이 끝난 뒤를 가정한 작품이다. 사랑 뒤에 다가오는 ‘권태’가 주된 소재다. 작가는 “뜨거웠던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때로는 신체의 통증보다 아프게 느껴진다”며 “권태감도 질병처럼 약으로 치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작품 속 조향사인 주인공은 어느 날 연인이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이유를 권태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그는 권태기를 치료하는 ‘봄내’라는 약을 처방받으려고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서는 과거에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다는 증거와, 현재 관계를 이어나갈 의향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요구한다.
약을 처방받기 위해 주인공이 지나간 기억의 궤적을 샅샅이 뒤지는 과정은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이다. 조향사라는 직업적 특성과 어우러진 감각적인 묘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기억의 잔향을 손에 잡힐 듯 섬세하게 구현해 낸다.
‘권태의 치료’라는 기발한 상상력 위에 입혀진 세심한 문체와 치밀한 서사 구조는 독자에게 ‘사랑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해당 작품은 ‘스토리코스모스 신인소설상’ 당선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이현지 지음/스토리코스모스/10쪽/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