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한방] 선조들은 무더위를 어떻게 이겼을까?
버드나무한의원
버드나무한의원 제공
사람들이 흔히 쓰는 ‘더위 먹었다’는 현대 의학의 일사병, 열사병, 열경련 등을 아우르는 표현이다. 에어컨도 제빙기도 없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이 가혹한 여름 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 왕실에서는 혹서기가 되면 관찰사와 수령에게 명하여 공사를 중단하기도 하고, 얼음 창고 ‘빙고’를 열어 야외에서 장시간 노동하는 부역자·죄수에게까지 얼음을 나누어 주도록 했다. 이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국가적 온열질환 대책이었던 셈이다. 정조대왕 역시 1794년 한여름 수원화성 건설 현장에서 폭염 속에 일하던 인부들이 쓰러지자, 왕실 의원들을 독촉해 더위를 물리치는 특효약인 ‘척서단(더위를 씻어내는 환약)’ 4000개를 제조해 현장 인부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준 기록이 있다.
한의학에서는 더위로 인해 생기는 병을 ‘서병(暑病)’이라 부르며, 이를 크게 양서와 음서로 구분했다.
‘양서(陽暑)’는 강렬한 뙤약볕 아래에서 과도하게 일하거나 활동하여 발생하는 전형적 온열질환이다. 햇볕을 직접 받지 않아도 환기되지 않는 집이나 주방, 비닐하우스, 자동차 안처럼 덥고 습한 곳에서는 온열질환이 생긴다. 몸에서 열이 펄펄 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입이 바짝 마르고 기운이 푹 꺼진다. 이는 현대의 일사병이나 열사병에 해당한다.
선조들은 이때 몸의 열을 꺼주고 빼앗긴 수분과 기력을 즉각 보충하는 처방을 썼다. 대표적인 것이 맥을 살려주는 3가지 약재(인삼, 맥문동, 오미자)로 구성된 ‘생맥산’과 여름철 잃어버린 원기를 끌어올리는 ‘청서익기탕’이다. 정조가 하사했던 ‘척서단’ 역시 이러한 원리로 만들어진 보약이었다.
현대인이 특히 주목할 한의학적 진단이 바로 ‘음서(陰暑)’이다. 음서는 더위를 피하려다 오히려 차가운 기운에 몸이 상하는 병이다. 선조들은 더위에 지쳐 바람을 과하게 쐬거나, 찬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찬 음식을 과식했을 때 음서가 생긴다고 보았다. 음서는 현대 사회의 ‘냉방병’이자 ‘여름철 배탈·몸살’과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일치한다. 밖은 찌는 듯이 덥지만, 실내에는 에어컨 바람이 쌩쌩 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고 사는 현대인의 생활 습관이 바로 음서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겉은 뜨거워도 속은 냉골이 되면서 자율신경계가 붕괴하고, 소화 기능이 떨어지며, 두통·오한·설사가 밀려오게 된다.
그렇다면 폭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선조들의 수천 년 지혜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우선 ‘속을 따뜻하게 유지하여 음서를 예방하는 지혜’다. 날씨가 덥다고 냉수와 빙과류만 찾으면 위장관의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삼복더위에 삼계탕이나 따뜻한 한방차를 마시는 복날의 지혜처럼, 겉은 식히되 속은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음료로 보호해야 한다. 오미자와 맥문동을 차처럼 끓여 시원하게 마시는 ‘생맥산’은 혈당을 올리는 탄산음료나 카페인 음료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여름철 천연 수분 보충제다.
다음으로 ‘환경과 체질에 맞춘 양서와 음서의 균형잡기’다. 한낮 야외 활동 시에는 햇볕을 피하고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여 양서를 막고, 실내에서는 에어컨 설정 온도를 26도 안팎으로 유지하며 담요나 긴소매 옷으로 찬 기운이 몸에 직접 닿는 음서를 예방해야 한다.
수천 년 동안 누적된 한의학의 경험방들은 더위가 단순히 ‘견디는 불쾌함’이 아니라, 우리 몸의 음양 균형이 깨지고 있다는 경고 신호임을 알려준다. 올여름, 우리 몸의 원기를 지키는 법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정조대왕의 애민 정신과 한의학의 지혜가 담긴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건강하게 지켜내길 바란다.
나성훈 버드나무한의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