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아직도 장난감 가지고 노니?
영화평론가
장난감 대신 태블릿 PC에 빠진 아이들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장난감들 분투
'토이 스토리' 놀이의 본질을 묻다
'토이 스토리5'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토이 스토리’는 이미 두 번 완결되었다. 대학에 가는 앤디에게 카우보이 인형 우디가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순간이 처음이고, 그다음은 우디 스스로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다시 한번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니 다섯 번째 이야기가 나온다는 소식에는 반가움보다 의문이 컸다. 이미 두 번이나 완벽하게 닫힌 문을 굳이 다시 열 이유가 있을까. 그 물음에 ‘토이 스토리 5’가 내놓은 답은 이별 이후에도 다시 이어지는 관계였다.
영화는 장난감들의 주인 ‘보니’가 스마트 태블릿 ‘릴리패드’를 갖게 되면서 장난감들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시는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장난감 중 하나다. 그러던 어느 날 제시는 보니를 몰래 뒤따르다 사고로 거리에 남겨지고, 우연히 도착한 곳에서 자신의 첫 번째 주인이었던 에밀리의 흔적과 마주한다. 한편 보니는 릴리패드 속 채팅방으로 친구를 만들어 보려 하지만, 그 관계가 생각처럼 다정하지 않아 상처받는다.
‘토이 스토리 5’의 연출은 전 편의 각본을 썼던 앤드류 스탠튼과 신인 맥케나 해리스가 함께 맡았다. 2008년 ‘월-E’에서 스탠튼 감독은 화면에 중독된 인류가 우주를 떠도는 미래를 그린 바 있다. 그때의 위협이 먼 우주 공간의 일이었다면, 이번엔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놀지 않는다는 존재론적 질문과 마주한다.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질문의 무게도 더 묵직해진 셈이다.
영화는 손쉬운 악당을 내세우지 않는다. 릴리패드 역시 보니를 아끼는 마음은 장난감들과 다르지 않으며, 다만 그 방식이 감정이 아니라 논리와 데이터에 기대어 있을 뿐임을 알린다. 그러니까 스스로 규칙을 만들며 상상력을 펼치는 놀이의 세계는 사라지고, 짜인 알고리즘 안에 아이가 들어가는 시대라고 말한다. 놀이의 차이를 통해 우리가 진짜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또한 스마트기기를 아이 손에서 완전히 떼어놓을 수 없는 시대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훨씬 곤란하고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의 무게를 실질적으로 짊어지는 건 ‘제시’다. 기존의 주인공이었던 우디가 아니라, 조연에 머물렀던 카우걸 인형이 이번엔 서사의 중심에 선 것이다. 2편에서 짧게 스쳐 갔던 제시의 과거, 첫 주인 에밀리에게 버림받고 어두운 창고에서 보낸 시간이 이번엔 이야기의 뿌리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전 주인 에밀리 앞에 놓인 제시는 그가 자신과 나눴던 시간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 ‘제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처럼 영화는 사랑받다가 버려지는 게 두려워 마음을 다 주지 못했던 장난감이 관계가 끝나도 헛되지 않다는 걸 그리고 있다.
다만 이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은 다소 성급해 보인다. 스마트기기를 둘러싼 불안을 설명하는 초반부는 예리한 관찰처럼 보이지만, 사실 새롭지는 않아 보인다. 오랜 팬들이 기다렸을 우디의 존재감도 이번 편에서는 어중간하다. 시나리오상 굳이 필요했나 싶을 만큼 그의 개입이 크지 않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스스로 한 발 물러나 감초 역할을 자처한 덕분에 균형이 맞춰진다. 그렇게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픽사답게 다시 힘을 낸다.
‘토이 스토리’는 무려 1995년에 개봉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은 탈모에 시달리고 몸 곳곳이 낡은 우디의 모습에서부터 드러난다. 30년 전 이 영화를 보았던 아이들 역시 어느덧 부모 세대가 되었다. 영화는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장난감을 떠올리게 하고, 이제는 내 아이가 장난감과 노는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게 ‘토이 스토리’는 장난감에 대한 추억을 넘어, 긴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곁을 지켜온 친구란 무엇인지까지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