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19> 영도 봉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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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가듯' 산행길에 탁 트인 바다 조망… 이게 부산 사는 맛

아늑한 봉래산 둘레길을 걸었다. 능선으로 붙는 된비알을 넘었다. 땀이 제법 났다. 막내 봉우리인 손봉 아래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봤다. 동삼동 국제크루즈부두와 한국해양대가 있는 조도가 발아래 있다. 사진 가운데로 멀리 오륙도도 보인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이런 좋은 산을 두고 괜히 멀리 돌아다닌 것 같습니다. 순한 길에 완벽한 조망, 거기에 시원한 물과 바람까지 산행의 삼박자를 다 갖췄습니다. 그동안 입맛만 다시다가 드디어 올라간 산입니다. 마치 이번 한가위에 보여 드리려고 아껴둔 것 같습니다. 차례를 마치고 가족과 오순도순 둘레길을 걷고, 산꼭대기에서 부산 앞바다를 보며 호연지기를 키우며 소원을 빌어 보면 어떨까요? 결혼, 승진, 건강도 좋고 로또 당첨도 괜찮겠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신선들이 살았다는 부산 영도 봉래산(蓬萊山·394.6m)에선 거칠 것이 없습니다.

봉래산 산행은 둘레길이 8할이다. 걷는 재미가 오롯하다. 원뿔꼴의 봉래산을 나선형으로 돌면서 만나는 조망도 일품이다. 약수터가 곳곳에 있어서 늦더위 갈증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둘레길의 70% 이상이 나무 그늘이다. 굳이 정상을 안 밟고 둘레길만 걸어도 본전 이상이다. 산행 거리는 약 10㎞. 먹고 쉬는 시간을 포함해 4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약수터·나무 그늘 갖춘 둘레길

코스마다 다른 경관, 산행 재미 더해

산제당·장사바위 등 전설 어린 곳도


산행코스는 단출하다. 목장원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봉래산 허리를 돈다. 복천사와 봉래체육공원 편백 숲을 지나 장사바위까지 간다. 이후로 본격 산행이다. 봉래산 3봉 중 막내인 손봉(孫峰·363m)으로 붙는 길이 가풀막이다. 이 비탈부터 손봉, 자봉, 정상을 잇는 능선은 흠잡을 데 없는 명품 조망처다. 시간을 잘 안배해 달맞이 야간 산행을 꾸려도 괜찮은 등로다. 하지만 아쉽게도 올해는 추석 당일 비가 올 것으로 예보돼 오륙도 위에 뜬 둥근 보름달을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목장원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행로인데, 둘레길 곁길이 많아 산행 안내리본을 잘 살펴야 한다.



기점인 목장원(입장료 없음)으로 들어가 뒤쪽 언덕 주차장까지 간다. 잠시 뒤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바로 앞에 봉래산 둘레길 안내 푯말이 서 있다. 임도 차단시설을 지나면 둘레길이다. 키 큰 소나무와 왕벚나무가 품 넓은 그늘을 선사한다. 길에 깔린 자갈을 밟으니 재잘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체육공원을 지나면 갈림길이 연달아 나온다. 함지골약수터 방향으로 계속 간다. 연세대수목원이 있는 곳이라 편백 군락지가 심심찮게 보인다. 오늘 둘레길을 걸으면서 자주 편백 숲을 만난다.

잠시 뒤 너덜 지대에 쌓은 돌탑이 무더기로 보인다. 돌탑 삼거리는 나중에 하산할 때 또 만난다. 잇따라 선 이정표를 따라 복천사 쪽으로 간다.

숲 속을 걷다가 잠깐 하늘이 훤한 곳에 섰다. 영도구 영선동과 서구 암남동을 잇는 남항대교가 사선을 그으며 바다를 가로지른다. 바다 위 뭍으로 진정산, 천마산, 아미산이 사이좋게 산줄기를 이뤘다.

이 때 산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금관악기 소리가 들렸다. 길을 따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골프 모자에 은색 목걸이를 한 윤창록(70·영도구 신선동) 씨가 있었다. 독학으로 트럼펫과 색소폰을 깨쳐 올해 초부터 봉래산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단다. 한 곡 청했더니 '유정천리', '찔레꽃'을 들려준다. 경남 함안 출신인 윤 씨는 악기를 연주하며 고향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씨가 무사히 산행을 마치라며 한 곡을 더 뽑았다. 그의 배웅 속에 길을 재촉했다. 전망대를 지나 5분 정도 가면 복천사 약수터가 나온다. 약수터에서 돌계단을 밟고 내려와 계속 복천사 방향으로 진행한다. 7분 정도 가면 복천사 삼거리가 나온다.

복천사는 고려 말 나옹 왕사가 창건한 영도의 대표 사찰이다. 고려 때는 해운암이라 불렀다가 지난 1912년 복천사로 바뀌었다. 유형문화재 제62호인 아미타극락회상도 등 문화재 7점이 있다.

복천사에서 나와 오른쪽에 있는 울타리에 둘레길 안내판이 있다. 여기서부터 갈림길이 자주 있어 길이 헷갈린다. 이정표와 리본을 참고해 산제당이나 봉래체육공원 방향으로 가야 한다.

넉넉잡아 20분가량 길을 따르면 산제당 뒷문이 나온다. 등산객한테 상시 개방된 문이다.

제당의 유래가 기이하다. 절영도(영도의 옛 이름)는 예부터 국마를 키운 곳이다. 언제부턴가 말을 서쪽으로 끌고 가 육지로 건너가면 이유 없이 죽었다. 당시 부산진 첨사인 정발 장군의 꿈에 선녀가 나타났다. 선녀는 "나는 본래 탐라(지금의 제주)의 여왕이다. 고려 최영 장군이 탐라를 점령하자 그의 첩이 됐다가 헤어졌다. 그가 영도로 유배됐다는 말을 듣고 찾아 왔지만 장군은 없었고, 결국 나는 영신이 되고 말았다. 사당을 지어 내 고혼을 위로해주면 군마가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발은 조정에 사실을 보고해 산제당, 아씨당 등 제당을 짓고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이 전통은 지금도 유지된다.

제당에서 나와 호국관음사, 극락암을 지나 대법사 담벼락을 돌아 다시 둘레길로 접어든다.

이정표에 있는 해돋이 배수지 방향으로 걷는다. 유림아파트를 왼쪽에 끼고 철조망을 따라 계속 간다. 주변에 편백 숲이 우거져 걷기에 딱이다. 여기서부터도 갈림길이 여러 갈래다. 이정표와 리본을 잘 짚어보고 걸어야 한다. 봉래체육공원에서 청봉약수터까지는 15분 정도. 청봉약수터에서 혜련사 쪽으로 15분쯤 더 가면 생태자연공원이 나온다. 빽빽한 편백 숲 아래 평상이 있어 쉴 만하다. 아이들이 노는 무대도 있다.

생태공원 울타리를 빠져 나와 2분쯤 오르면 장사바위가 나온다. 바위에도 전설이 있다. 옛날 봉래산에 9척 장사가 살았다. 마을 사람들이 끼니마다 쌀 한 말씩을 장사한테 먹였다. 어느 날 영도 앞바다에 괴물이 나타나 마을 처녀를 잡아갔다. 장사는 주민들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괴물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뤘고 결국 둘 다 죽었다고 한다.

장사바위부터는 느슨한 오르막이다. 갈림길을 여러 번 통과해 15분쯤 가면 미륵사약수터다. 약수터에서 450여m 진행하면 봉래산 능선으로 붙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 길부터 된비알이다. 너덜을 밟고 조금 경사가 느껴지는 길을 15분 정도 오른다. 뒤돌아보니 조도와 오륙도가 지그시 지켜보고 있다.



손봉에 올라 바다를 쳐다봤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수평선 끝까지 시야를 넓힌다. 날이 좋으면 일본 대마도가 보이기도 한다.

자봉(子峰·391m)은 손봉에서 400m쯤 북쪽에 있다. 손봉이 손자봉이고, 자봉은 그 아비 봉우리이다. 자봉에 정자 전망대가 있다. 사방에서 바닷바람이 불어 주체를 못할 지경이다. 바람은 짠 내음이 안 느껴지고, 볼에 닿으니 보드랍다.

정자에 앉아 서쪽을 보면 멀리 낙남정맥의 불모산, 용지봉도 어슴푸레 눈에 들어온다.

자봉에서 안부를 지나 7분 정도 더 가면 '영도 할매 바위'가 나오고, 바위 바로 뒤 봉우리가 봉래산 정상이다.

전설과 설화에 따르면 '영도 할매'는 시샘이 많다고 한다. 영도에 살던 주민이 할머니가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3년 안에 망해서 영도로 다시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다. 하지만 향토사학자들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영도의 신성한 기운을 시기해 '영도 할매 해코지설'을 퍼뜨렸다고 풀이한다.

정상에 삼각점이 있다. 우리나라 토지 측량의 기준점인 '대삼각본점'이다. 1910년 6월에 일본 토지국이 설치했는데, 이 삼각점을 기준으로 한반도 전체에 삼각 본점과 소 삼각점을 만들었다. 삼각점의 시조인 셈이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하산길이 있다. 354봉에 조금 못 가 갈림길이 있다. 왼쪽으로 비스듬히 내려서 목장원 방향으로 간다. 갈림길에서 이 지점부터 영봉약수터까지 20여 분 정도. 중간중간 너덜이 있고, 폭우로 일부 유실된 길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약수터에서 올라올 때 지났던 돌탑 삼거리까지는 3분 정도. 여기서 15분 남짓 걸으면 종점인 목장원에 닿는다.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산행대장 010-3740-9323.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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