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 부용대 올라서니 옛 마을을 품고 가을이 돌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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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건너 하회마을 북쪽의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마을 전경과 그 주변을 감싸고 도는 낙동강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안동 하회마을은 남쪽으로 흐르던 낙동강이 잠시 동북쪽으로 선회해 큰 원을 그리며 산을 휘감아 안고 산은 물을 얼싸안은 곳에 터를 잡고 있다. 이렇게 물이 S자형으로 돌아나간다고 해서 '물돌이동'이라 하고 한자로는 '하회(河回)'라는 이름이 붙었다. 풍수상 연꽃이 물에 떠 있는 형국이라 해서 연화부수형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201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한옥·초가 혼재된 풍산 류씨 집성촌
유명 고택 많아 '고택 전시장' 방불

골목 누비는 재미에 흙담도 인상적
나룻배 유료지만 부용대 꼭 가보길

■풍산 류씨 집성촌

하회마을을 방문한 날은 평일이었고 가을비도 추적추적 내렸지만, 방문객들의 발길이 제법 분주했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주말·평일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하회마을' 안내판을 일별하고 마을 탐방에 나선다. 집마다 매단 문패를 보면 한결같이 류(柳) 씨 성임을 알 수 있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 집성촌이다. 하회가 처음부터 류씨 마을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회의 마을 역사를 이르는 단적인 말로 '허 씨 터전에 안 씨 문전에 류 씨 배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김해 허씨가 마을을 처음 개척하고 광주 안씨가 뒤이어 일가를 이뤘으며 풍산 류씨는 그 앞에서 잔치판을 벌일 정도로 가문이 흥성하게 됐다는 말이다.

풍산 류씨는 안동 풍산 상리에서 살아왔으나, 고려 말 전서 류종혜 공이 자손 대대로 세거할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수년간 화산에 올라 관찰한 결과 지금의 터를 마련했다고 한다.

마을은 중앙을 가로지르는 큰길을 중심으로 크게 북촌과 남촌으로 나뉜다. 예전에는 남촌댁을 중심으로 한 남쪽의 '웃하회'에 집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웃하회는 강에서도 비교적 떨어져 있고 화산 자락의 논들에 가까워 살기에 더 편한 곳이다.

그러나 남촌댁의 가세가 약화되자 그 일가와 권속들도 약하게 돼 웃하회 집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하회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초가집들이 기와집과 잘 어우러져 있다. 하회마을의 초가집들은 주로 종갓집들에서 부리던 사람들이나 소작인들이 살던 살림집이다.

북촌댁 사랑채.
마을 입구부터 길을 따라 하동고택, 남촌댁, 양진당, 충효당 순으로 찾아갈 수 있다. 큰길에서 좀 벗어나 골목을 쭉 따라 들어가면 북촌댁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밀집된 공간에서 집들이 서로 어깨를 어떻게 겯고 있나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고택 전시장

하회마을은 산골짜기 사이에 펼쳐진 마을이 아니고 가운데가 불룩 솟은 지세에다 타원형의 지형에 자리 잡은 마을이기 때문에 집들이 남향으로 잡는 일반적인 좌향(座向)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길이 방사상으로 나 있고, 집들이 서로 마주 보이는 것을 피해서이기도 하고, 집의 한쪽이 낮아야 배수가 용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길에서 대문이 보이지 않는 집이 많고 골목을 에돌아야 대문에 이르는 집도 많다. 그래서 골목골목 누비는 재미가 쏠쏠하다.

골목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아무래도 담이다. 하회에서는 돌담을 쌓지 않고 흙담을 쌓는다. 요즘에는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더러 돌담을 쌓은 경우도 있으나, 이는 전통을 모르거나 무시한 것이다. 하회에서 흙담을 쌓는 방법은 좀 특이하다. 널빤지로 틀을 만들고 그사이에 진흙, 돌, 지푸라기, 석회 등을 넣어서 굳힌 다음 판장을 떼어내 담을 만드는데 이것을 '판담'이라고 한다. 흙뭉치를 일정한 크기로 다듬어 굳힌 흙벽돌을 차곡차곡 쌓은 흙벽 토담도 볼 수 있다. 흙담이기 때문에 비가 올 때 젖거나 쓸려 내려가지 않게 하려고 담에 기와지붕을 얹는 것도 한 특징이다.
마을 중앙에 있는 수령 600년의 느티나무 당산목.
마을 중앙에는 수령 600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삼신당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이밖에도 화산 중턱에 서낭당, 화산 자락에는 국사당을 모시고 있어 다른 마을보다 동신당이 많은 편이다.
마을과 낙동강 사이의 만송정 숲.
마을 중심길을 벗어나면 느티나무 세 그루가 둑에 기대 있어 넉넉한 그늘을 드리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솔숲은 강가를 빙 둘러 꽤 우거져 있어 여름에도 해가 잘 들지 않는다. 이 만송정(萬松亭) 숲은 마을의 서단부에 있어 풍수적으로는 수구막이 기능을 하나 실질적으로는 방풍·방수재 방사(防砂) 효과를 지닌다. 솔밭은 여름 야영객들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다. 강 건너 부용대 절벽도 아주 수려하다.

주요한 살림집들로는 대종택이자 류중영과 류운룡을 불천위로 모시는 양진당(보물 제306호)과 류운룡 아우인 서애 류성룡의 종택으로 소종택인 충효당(보물 제414호)이 있으며, 그밖에 하동고택과 북촌댁(국가민속문화재 제84호), 남촌댁(국가민속문화재 제90호) 등도 있다.

양반 가옥의 전형을 이루는 이 집들 가운데는 보물로 지정된 곳이 둘,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아홉이나 된다.

양진당은 류중영(서애의 아버지)의 호를 따서 입암(立巖)고택이라고도 한다. 양진당은 부용대를 집 뒤 북쪽에 두고, 마을 안쪽 중앙에 남향해 자리 잡았다. 사랑채 주변으로 툇마루를 달고 계자난간을 설치해 건물의 위상을 높였다. 북촌댁은 북촌의 중심에 자리했는데, 별당채인 북촌유거 뒤에 심어 놓은 '물돌이동 소나무'가 볼 만하다. 수령 300년이 넘은 소나무는 생김새가 하회마을을 감싸고 도는 낙동강 물줄기와 영락없이 닮았다.

■하회 탐방의 백미는 부용대

하회마을을 제대로 관찰하려면 낙동강 건너 북쪽 절벽인 부용대에 올라가야 한다. 마을과 부용대 사이에 유료 나룻배가 비정기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승용차로 가려면 내비게이션에 '화천서원'을 치면 된다. 화천서원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250m가량 산을 오르면 부용대가 나온다.

부용대에 서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산을 오른 수고로움을 덜고도 남는다. 하회마을 전경이 한눈에 보이고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의 흐름이 선명하게 잡힌다.
서애가 <징비록>를 구상하고 작성한 옥연정사.
화천서원에서 안쪽으로 100여m만 들어가면 류성룡이 <징비록>을 구상하고 작성한 곳인 옥연정사가 나온다. 화천서원과 옥연정사는 고택 체험을 시행하고 있는데 인기가 좋다.

한편 하회에는 두 가지 민속놀이가 전한다. 하나는 유명한 하회탈놀음이고 다른 하나는 줄불 선유놀이다. 탈놀이가 탈을 쓰고 양반을 풍자하는 서민들의 놀이라면, 줄불 선유놀이는 달 밝은 밤 강물에 불꽃을 띄워 밝히고 배를 타고 즐기는 양반들의 놀이다.

하외마을에선 매일(월·화 제외) 오후 2시 탈춤공연을 하고 있으며 줄불 선유놀이는 매월 9월 마지막 토요일과 10월 첫째 토요일 오후 7시에 공연한다.
정겨운 하회마을의 골목길. 오른쪽 흙담이 전통적인 '판'담이며 왼쪽의 돌담은 최근 보수한 것이다.
마을에서는 유네스코 문화재 지정 뒤 관광객의 발길이 더욱 잦아지자 마을 입구에 큰 주차장을 둬 차량이 마을 안까지 들어가지 못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관광객이나 답사객들을 위한 큰 안내판 그림이 입구에 있고, 원할 경우 안동시 관광문화해설사가 나서 하회마을을 소개한다. 하회마을은 관광지이기 전에 여염집이므로 탐방할 때는 행동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하회마을 보존회 054-853-0109.

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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