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590> 양산 토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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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사' 매화가 손짓하는 그 산에 서고 싶다

양산 토곡산에서 바라보는 낙동강은 따스하고 황홀했다. 원동초교로 하산하다가 전망바위에 서면 멀리 부산 황령산과 문현 국제금융센터까지 보인다.

요즘 춘흥에 겨워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조영남이 불러 많이 알려진 가요 '모란 동백'이다. 노랫말이 아름다워 알아봤더니 시인이자 화가이며 소설가인 이제하 씨가 가사를 짓고 노래도 직접 불렀다고 했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모란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양산 낙동강 변 원동에는 봄을 여는 매화가 한창이다. 꽃을 보려 기어코 '부산권 3대 악산'이라는 양산 토곡산(855.3m)에 성큼 올랐다.

춘흥에 겨워 찾은 '부산권 3대 악산'
낙동강변 원동은 매화가 한창이다

사방이 툭 트인 '일망무제' 정상엔
토곡산을 사랑한 '영원한 산악인'
고 김철우 선생 추모비가 서 있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석이봉 능선
곳곳에 조망 좋은 바위 '눈이 즐겁다'

■폐사지는 바람에 묻히고


양산 토곡산은 '산&산'에서 몇 차례 독자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소설가 김정한의 중편 <수라도>로 유명한 화제리 내화새마을에서 출발하여 매화가 한창인 원동역까지 걸었다. 이른 아침에 내화새마을에 내렸을 때는 볼을 쓰다듬는 바람이 제법 차가웠는데, 오후에 매화 핀 낙동강 변 원동역은 봄날이었다.

화제리 내화새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여 복천암~내화목장~옛 복천정사~어곡산 갈림길~원동역 갈림길~토곡산 정상~헬기장 삼거리~730봉~석이봉~소나무 숲길~원동초교~원동역까지 9.9㎞를 5시간가량 걸었다. 원동역 뒤로 난 산책로를 따라 순매원으로 가서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매화도 오래 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가 일품이다. 나무 아래 정자도 있어 산행 채비를 차리기 좋았다. 내화체험목장 안내판을 보며 성큼 산 쪽으로 발을 내디딘다. 멀리 직벽 아래 옛 복천정사가 어슴푸레 보인다.

목장과 농가를 지날 때 낯선 이를 맞는 것은 강아지들이었다. 짖는 모양이 예사롭지 않으니 밥값은 제대로 하는 놈들이다. 복천암 입구에서 우측 산비탈로 등산로가 나 있지만, 옛 복천정사를 보고자 임도를 따라 오른다. 달음산, 천성산과 함께 부산권 3대 악산이라는 토곡산을 쉽게 오르겠다는 욕심도 이 결정에 한몫했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꽤 길지만, 주변 나무와 계곡 물소리에 빠져 인공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다. 절 한참 아래에서 시멘트 길이 끊겼다. 주변 지형이 험해 길을 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절까지 짐을 운반하던 도르래와 쇠줄이 녹을 덮어쓴 채 남아 있다. 꽤 번듯한 규모의 '복천정사'는 부처님이 떠나자 시나브로 스러지고 있었다.

■언제라도 그리운 그 산

옛 법당 뒤편엔 맑은 석간수가 철철 넘치고, 바위 벼랑 폭포에선 물줄기가 제법 세차다. 겨우내 얼었던 폭포는 이제 막 물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절이 왜 이렇게 되었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듣기로는 절을 산 아래쪽으로 옮겼다고 한다. 석간수가 나오는 붉은 바위 샘은 짝 잃은 원앙이 머리를 박고 죽은 곳이란다.

주능선으로 오르다 바라본 옛 복천정사.
절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인공적인 동굴 몇 개가 있다. 예전에 금을 캐던 광산이었다고 한다. 산허리를 돌아 15분쯤 오르니 어곡산에서 오는 능선길과 만난다. 고도가 한껏 높아졌다.

해발 680m란 이정표가 있다. 등산로엔 얼음이 서걱거린다. 원동역 삼거리 이정표가 있는 봉에 올라섰다. 정상까지 200m다. 왼편 원동역으로 내려가는 길엔 '급경사 지역이므로 무리한 산행을 자제하시라'는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일단 정상으로 간다.

토곡산 정상엔 넓은 덱을 깔아놓았다. 최고봉이었던 바위는 그래도 노출을 해 놓아 정상임을 가늠케 했다. 토곡산 정상에서 영남알프스 산군들이 잘 보인다. 멀리 가지산과 신불산, 영축산으로 굽이치는 낙동정맥의 산줄기도 뚜렷하다. 전날 비가 내렸는데 신불산엔 눈이 내렸다. 산 정상 부근이 하얗다. 밀양 시가지와 그 뒤 화왕산, 비슬산은 물론 낙동강과 신어산, 부산의 황령산과 명지신도시 쪽 바다 조망도 좋다. 정상은 사방이 탁 트인 일망무제의 특급 조망지다.

황계복 산행대장이 배낭을 벗더니 시에라컵에 물 한 잔 가득 채워 어디론가 간다. 정상석 바로 옆에 영원한 산악인 고 김철우 선생의 추모비가 있다. 김 선생은 부산산악연맹 회장과 석봉산악회 회장을 지냈다.

석봉산악회가 창립할 즈음 회원들이 토곡산에 올랐는데 정상에서 산악회 이름을 뭐로 할까 고민하며 피켈을 툭툭 두드리다가 바위가 부딪치는 것을 보고 '석봉'으로 지었다고 한다. 황 산행대장은 "날이 좋으면 토곡산에서 지리산도 보인다"고 했다.

■꽃이 피니 정녕 봄이다

원동역 삼거리 이정표가 선 곳으로 다시 돌아와 730봉으로 간다. 중간 지점에 있는 암봉에 서니 멀리 부산의 63빌딩인 문현동 국제금융센터 빌딩이 우뚝 솟아 있다. 낙동강 조망이 아름다워 한참을 서 있었다. 730봉 직전 헬기장 삼거리 이정표에서 원동초교 방향이 아니라 오른쪽 함포 마을 방향으로 간다. 토곡산 정상에서 함포 마을로 뻗어 나간 '토곡산 공룡능선'의 뼈대가 굵다. 정상에서 바로 함포 마을로 내려서는 코스는 대부분 바위여서 아기자기하지만, 무척 힘들다고 한다. '악산'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나온 것이지 싶다.

석이봉 가는 능선 길 왼쪽 아래로 우회로가 있지만, 곧장 석이봉까지 진행한다. 석이봉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원동초교로 하산한다. 곳곳에 조망 좋은 바위가 많아 쉬엄쉬엄 걷는다.
매화가 한창인 원동역 인근 순매원.
바위 조각이 떨어져 나가 하얀 이끼가 핀 곳에 누군가 검은 펜으로 웃는 얼굴 하나를 그려놓았다. 제 이름을 써 놓은 낙서보다 훨씬 정감이 간다. 더 아래쪽에 누군가 굳이 바위에 '좋은 글귀'를 새기고 붙여 놓았지만, 그것은 흉물이었다.

근사한 임도가 나오더니 계곡이 펼쳐진다. 그 아래에서 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정체를 몰랐는데 가까이 가니 개구리 소리였다. 물이 거의 마른 저수지에 개구리 수백 마리가 모여 합창을 하고 있다. 봄의 세레나데다.

계곡에서부터 원동역까지 덱 길을 만들어 놓았다. 원동초등학교 운동장을 지나는데 아이들이 공놀이하고 있다. 선생님에게 물으니 전교생이 30명이란다. 전교생 절반이 나와 '지지배배' 놀고 있다.

평일인데도 선남선녀들이 매화를 보러 왔다. 원동역에서부터 순매원까지 가는 길이 북적댄다. 매화는 벌써 피어 춘심을 설레게 한다. 봄이 일러 주말엔 매화가 절정이겠다. 더 늦기 전에 토곡산에 올라야 한다. 문의: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라이프부 051-461-4094.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양산 토곡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양산 토곡산 구글어스 지도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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