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460> 구미 금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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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닿는 곳마다 '삼족오' 기상 불끈

금오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 만난 오형돌탑. 짧은 생을 마감한 손자의 명복과 산을 찾는 이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알려져 있다.

산행길 초입이 붐볐다. 어라~, 평일인데 어찌 이리도 사람들이 많을까! 게다가 차림새도 평상복 느낌이라 조금은 뜨악한 기분마저 들었다. 대체 여긴 산이야, 공원이야? 의문은 금세 풀렸다.

우리나라 제1호 도립공원인 구미 금오산(金烏山·976m)으로 들어가는 풍경에는 여유가 넘쳤다. 시내에서 산자락까지 20분 내외로 닿는데다 사찰과 유적이 유구한 역사를 드러내고, 폭포와 기암이 이어져 눈이 심심할 틈이 없다. 게다가 산기슭에는 수련시설과 놀이시설이 잘 갖춰져 있으니 도심에서 사람들이 몰릴 법도 한 것이다.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있고, 태양광으로 충전되어 야간에 점멸하는 솔라표시등까지 등반로 주변을 밝히고 있으니 "어서 빨리 오라"고 산이 유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할딱고개' 긴 나무계단 오르자 환상적 전망
'오형돌탑' 가는 길에 수십 기의 돌탑 장관
흉물 미군 레이더기지 철수 9월께 정상 개방


그렇다고 금오산은 호락호락하기만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숨이 차서 헉헉댈 수밖에 없다 해서 노골적인 이름까지 붙은 '할딱고개'에 올라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예전에 중국의 오악(五嶽)인 숭산에 빗대어 남숭산(南嵩山)이라 불린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다. 깊은 골짜기마다 거대한 기암괴석이 불끈불끈 솟구치니 그 기상은 씩씩해서 남성미가 물씬 느껴진다. 그건 태양에서 산다는 '삼족오(三足烏·세 발 달린 까마귀)'가 금빛을 띠고 있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 '금오(金烏)'의 기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가, 뜨거운 기운을 온몸에 충전하고는 되돌아온다고 해야 할까.

  
 


■금빛 삼족오의 기운을 받으며

금오산은 평지로 둘러싸여 있다. 남쪽으로 영암산(785m), 선석산(782m) 정도 외에는 근처에 존재감을 드러낼 만한 산이 눈에 띄질 않는다. 홀로 우뚝 솟아 스스로 산군을 이루고, 그 자체로 절경이 되었다!

금오산 산행은 보통 약사암과 마애석불입상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선택된다. 깎아지른 바위 품에 오도카니 앉은 약사암의 고즈넉함에서 땀을 식히고, 어디 방향에서나 얼굴이 보이게끔 바위 모서리에 돋을새김한 마애불을 보면서 한숨을 돌려 기운을 차린 뒤 걸음을 내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한 사람의 지극정성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공명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돌탑군을 둘러보는 맛이 추가됐다. 탁 트인 바위에 수십 기의 석탑과 동물 형상이 조성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오형(烏亨)돌탑'은 금오산을 찾는 이라면 꼭 들러 가는 곳이 되었다.

이 지점들을 연결하는 금오산 산행 코스를 요약하면 이렇다.

금오산주차장이 기점이자 종점이다. 채미정~케이블카 시점~해운사~대혜폭포~할딱고개~오형돌탑~마애석불~약사암을 거쳐 금오산 현월봉에 오른다. 하산길은 도수령을 거쳐 법성사에서 도로로 떨어지고 야영장을 지나쳐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10.8㎞를 5시간 정도에 걸었다.

이번 산행에서 기쁜 소식을 들었다. 탁 트인 시야 때문일 텐데, 금오산 꼭대기는 그간 미군 레이더기지가 차지하고 있었다. 기지 주변에 철조망을 두르고 민간인의 출입을 막았으니 정상은 금단의 땅이었다. 정상 표석도 철조망 곁에 덩그렇게 서 있으니 운치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다행히 기지가 이전된다. 산&산 팀이 답사했을 때 정상 복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공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9월에 정상을 개방한다고 하니 가을부터 금오산 정상을 밟고 제대로 된 정기를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선 굵은 암릉 어디에 서든 멋진 조망

열차를 이용해 구미역에 도착했다. 12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인 금오산주차장에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운행 편수가 많지 않은 탓에 12번 버스를 놓쳤다. 도리 없이 택시를 탔다. 10분 만에 금오산주차장 도착. 시내에서 참 가깝다. 주차장 옆의 집단시설 지구에는 음식점과 숙박업소가 빼곡하다.

채미정을 지나 폐쇄된 매표소를 거치면 케이블카 탑승장이 나온다. 해운사까지 운행되는 케이블카 덕분인지 평상복 차림의 나들이객이 많다.

17m 높이로 웅장한 대혜폭포. 하지만 오줌 줄기 같은 물이 떨어지고 있으니 '금오산을 울린다'는 별칭 '명금폭포'가 무색하다. 이후 거친 된비알이 이어진다. 금오산 등산로에서 가장 숨이 찬 곳이라 예부터 할딱고개라 불렸다. 목제계단이 설치되었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다.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계단. 지루함을 잊어보려 계단 숫자를 세다가 깜빡 놓쳤다. 그런데 누군가 바닥 한쪽에 잘 안 보이게 100 단위로 계단 개수를 적어 놨다. 200, 300, 400….

고생 끝에 낙이 있다. 안간힘을 써서 오른 할딱고개는 탁 트인 전망을 선사한다. 눈앞으로 거대한 수직 암벽이 떡 하니 버티고 섰다. 계단이 끝나고 산길을 50분쯤 더 걸었을까. 마애불로 갈 참이었는데 애매한 갈림길이 나타났다. 작은 돌을 쌓아 그 위에 손글씨로 '오형돌탑'으로 가는 길이라고 썼다. 그 길 끝은 허공에 돌출된 바위. 그 위에 수십 기의 돌탑이 지천으로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탑 위나 주변에 부처, 삼족오, 거북 등의 모습까지 형상화해 놓았다. 자세한 조성 경위가 씌어 있지는 않았지만, 먼저 세상을 등진 가족의 명복과 이곳을 찾는 이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 못 하는 돌에 담긴 공력과 소망은 큰 메아리가 되어 금오산 골짜기를 울리고 있다.

30분쯤 걸으면 마애보살입상을 만나고, 여기서 약사암도 금방이다. 가람이 바위 봉우리 사이에 오도카니 앉은 독특한 구조다.

정상에서 하산길은 간명하다. 도수령으로 곧장 가면 된다. 하지만 수풀에 가린 직진 이정표를 놓치고 오른쪽으로 잘못 내려갔다. GPS 앱 '오룩스맵'에 미리 설정해둔 경로를 벗어나자 이탈 경고 알람이 시끄럽다. 덕분에 지도를 대조해 길을 벗어난 걸 확인하고 되돌아갔다. 앱 덕분에 '알바'(헤맨다는 뜻의 산악인 은어) 시간이 줄었다.

하산 길에는 선 굵은 암릉이 이어지니 어디에 서든 멋진 조망대다. 특히 약사암의 종탑을 멀리서 바라보면 그 자체가 독특한 풍경이다. 어깨동무를 하고 휘파람 불면서 걸어도 될 만큼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도수령까지 가서 법성사로 꺾어 내려가면 된다. 법성사에 닿으면 산행이 끝난다. 주차장까지 1.5㎞는 도로다. 20분 정도 걸으면 원점회귀가 완성된다.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095,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구미 금오산 고도표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구미 금오산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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