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묻어달라”… 프랑스 90대 참전용사 영면
내년 유엔기념공원 안장 예정
6·25전쟁 최전선서 임무 수행
최고 권위 훈장 받은 참전용사
6·25전쟁 최전선에 몸을 던졌던 90대 프랑스 참전용사가 영면에 들어갔다. 1951년과 1953년 한국에 두 차례 파병된 그는 생전에 숨을 거두면 부산에 묻히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고인이 된 그는 내년에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안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2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에서 지난 17일 별세한 6·25전쟁 참전용사 고 자크 그리졸레(96) 씨 장례식이 엄수됐다. 1928년생인 고인은 20대 초반인 1951년과 1953년 한국전쟁에 두 차례 파병돼 ‘단장의 능선’ 전투 등을 치르며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전쟁에서 싸운 그는 프랑스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독립전쟁에도 참전해 프랑스 정부에서 여러 차례 훈장을 받았다. 최근에는 최고 권위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크루아(대십자장)로 훈장 등급이 승격됐다. 한국전쟁 프랑스 참전용사 중 그랑크루아 등급 수훈자는 당시 미 제2사단 23연대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를 이끈 랄프 몽클라르 장군에 이어 두 번째다.
장례식이 열린 앵발리드는 프랑스에서 군사적 업적을 남긴 이들을 위한 추모 공간이자 군사 문화시설이다. 군사박물관과 상이군경을 위한 국립병원이 있고, 나폴레옹 1세 유해도 안장됐다. 역사적 인물과 군사적 영웅들 장례식이 치러지곤 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고인의 유족과 지인, 유엔 프랑스대대 참전용사 협회 회원들, 문승현 주프랑스 한국 대사와 송안식 한인회장 등 약 100명이 참석했다. 프랑수아 르쿠앙트르 프랑스 상훈국장은 추도사에서 고인 발자취를 열거하며 “그가 보여준 용기와 헌신, 희생은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귀감이 됐다”며 “이런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했다.
고인이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고인의 아들 크리스토프 씨는 유족을 대표해 장례식에 참석한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며 “아버지는 한국을 정말 깊이 사랑하셨고, 한국에 대해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셨다”고 했다.
그는 2016년 부친을 모시고 한국을 방문한 일화를 언급하며 “당시 한국인들에게 받은 환대는 정말 감동적이었다”며 “우리는 친구처럼 환영받았고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아버지는 자신이 처음 본 황폐하고 아무것도 없던 한국이 멋진 나라가 됐다고 감탄하셨다”고 강조했다.
고인은 사후에 부산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해달라는 의사를 남기기도 했다. 크리스토프 씨는 “우리에게는 큰 영광”이라며 “우리는 아버지가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평안히 계실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 유엔기념공원 안장은 내년 8월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다른 참전용사는 한국에 대해 얘기한 고인을 회상했다. 파트리크 보두앙 유엔 프랑스대대 참전용사협회장은 “자크는 한국전을 이야기할 때마다 전쟁 중에 겪은 한국인들의 비참함을 늘 이야기했다”며 “이후 한국이 위대한 민주주의를 이루고 경제 대국이 된 것을 보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고인이 그랑크루아 훈장을 받은 것도 훌륭한 군인이자 훌륭한 영혼이었기 때문”이라며 “그가 조국에 대한 믿음,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희생했다”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