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경찰이 폭행" 여론몰이 영상, 원본 보니 "경찰관을 때렸다니까"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 투표소에 모여든 시위대를 경찰이 해산하는 과정에서 한 시위 참가자가 양손을 들어 보이며 "하지 마"라고 외치는 모습. 유튜버 '제주도 꾸꾸지니' 영상 화면 캡처
"시민 폭행하는 경찰" "경찰이 사람 폭행하는 게 말이 되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 5일, 인터넷 커뮤니티 '에펨코리아'(펨코)에는 '경찰이 시위 참가자를 폭행했다'는 주장이 담긴 영상물이 다수 올라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15초 분량의 이 짧은 영상에는 다수의 경찰이 바닥에 누워 있는 일부 시위대를 둘러싸고 팔을 잡아 당기는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담겼다. 시위 참가자로 추정되는 남성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다급하게 "하지 마, 하지 마"라고 외치고, 한 경찰관이 흥분한 듯한 동료를 제지하는 장면도 담기기는 했으나 폭행이라 확신할 만한 장면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당수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경찰의 폭행을 확신했다. 게시물 제목은 '시민 패는 경찰' '경찰이 사람 팸' '경찰 민주시민 폭행 영상' '나도 올릴거야 시민 패는 경찰' 등 일관되게 경찰의 폭행을 주장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언급하며 경찰을 계엄군에 비교하는 댓글이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용자들은 커뮤니티 관리자가 관련 게시물을 삭제한다고 주장하면서 "절대 삭제되지 않게 재업(재등록)" 등 제목으로 같은 영상물을 사이트에 게시했다.
이로 인해 이날 '펨코'의 인기 게시판은 해당 영상물로 사실상 도배됐다. 이용자들에 따르면 해당 영상물 관련 인기 게시글이 최소 5페이지 이상에 달했다. 한 페이지 당 20개의 게시물이 노출되는 점을 감안하면 100개에 달하는 인기 게시물이 '경찰의 폭행'을 주장하는 영상물이었던 것이다. 각 게시물은 적게는 수만 회에서 많게는 수십만 회에 달하는 조회수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터넷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캡처
경찰의 폭행을 기정사실화한 이들의 분노는 언론과 연예인으로도 향했다.
언론을 향해선 '정부의 보도 지침을 받고 일제히 관련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음모론을 유포했다. 또 특정 연예인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이럴 땐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식으로 압박했다. 평소 정치적 발언을 하던 연예인들이 경찰의 폭행 사실엔 침묵한다는 주장의 댓글이 많은 공감을 얻어 인기 댓글을 차지했다.
흥분한 이용자들의 폭주는 커뮤니티 관리자의 개입으로 어느 정도 진정됐다. 관리자는 5일 오후 '운영관련 허위사실유포, 일부 작성자 제재예정'이라는 제목의 공지를 통해 관련 게시물을 커뮤니티 측에서 강제로 삭제한다는 주장은 허위사실이라고 밝혔다. '관리자가 게시물을 삭제한다'는 이용자들 주장과 달리, 당초 게시물을 올렸던 이용자들이 스스로 글을 삭제했다는 설명이다.
문제의 영상물 전후 사정은 한 보수 유튜버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익명의 제보에 따르면 해당 영상물은 유튜버 '제주도 꾸꾸지니'의 시위 생중계 장면에서 따온 것이다. 해당 유튜버가 지난 7일 공개한 편집본 영상에서 파악한 정황은 이렇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 투표소에 모여든 시위대는 투표소 앞에 자리를 잡고 경찰과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제2 투표소가 아파트 단지 경로당이었던 탓에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소음 등으로 인한 불편을 겪어야 했다.
결국 경찰이 5일 기동대를 투입해 강제해산 절차에 돌입하자 시위 참가자들은 투표소 입구에 밀집해 서로 팔짱을 끼고 바닥에 누운 채 '버티기'에 돌입했다.
경찰이 시위 참가자들의 팔과 다리 등을 붙잡아 끌고 나가자 참가자들 사이에서 고성과 욕설이 터져 나왔다. 경찰에 끌려 나가는 시위 참가자를 다른 참가자들이 붙잡으면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일대는 북새통이 됐다.
"사람이 다친다"며 참가자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은 잠시 해산 작업을 중단하고 거듭 자체 해산할 것을 요청했으나 시위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해산 작업을 재개했다. 누워 있는 시위 참가자 한 사람을 끌어내기 위해 경찰관 4~5명이 팔과 다리 등을 잡고 "일어나세요, 하나 둘 셋"이라고 외치며 일으켜 세우는 촌극도 벌어졌다.
시위 참가자들에게 다가가 해산을 시도하던 경찰들(위)이 일순간 놀라며 잠시 뒤로 물러서는 모습. 해당 장면이 담긴 영상에선 "지금 뭐하는 거에요" 등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문제의 장면은 해산 작업 후반부에 나왔다. 비교적 힘이 좋은 젊은 남성 참가자들은 경찰의 완력에도 좀체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들이 "나오세요" "나오시라구요"라며 참가자들의 팔을 붙잡아 당기던 중 "어!"라고 외치는 남성의 목소리가 영상에 포착됐다.
이때 여러 명의 경찰이 놀란 듯 일제히 참가자들에게서 잠시 떨어지고, "어어어" "지금 뭐하는 거에요" 등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잠시 물러섰던 경찰들은 다시 참가자들에게 다가가고, "하지 마, 하지 마"라는 남성 시위 참가자의 다급한 외침이 이어진다.
한 시위 참가자가 양손을 들어 보이며 "하지 마"라고 외치고 있는 장면. 유튜버 '제주도 꾸꾸지니' 영상 화면 캡처
이 과정에서 한 경찰관이 흥분한 듯 시위 참가자에게 달려들었으나 동료 경찰관들에 의해 제지당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가 해당 참가자를 향해 손을 뻗으며 제지하는 모습과 "흥분하지 마세요"라는 외침도 영상에 포착됐다.
경찰관이 갑자기 흥분했던 이유는 뭘까. 제보자가 <부산일보>에 제공한 생방송 원본을 보면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영상 속 흥분한 경찰관은 잠시 뒤로 물러나 동료 경찰들이 진정시킨다. 잠시 후 채증 담당 경찰관이 참가자들에게 접근해 "아니 아까부터 이 사람이 때렸다니까, 경찰관을. 다 찍혔어요 여기"라고 말한다.
검은 옷을 입은 채증 담당 경찰관이 시위 참가자에게 다가가 발언하는 모습. 이 경찰관은 "아까부터 이 사람이 때렸다니까, 경찰관을"이라고 말했다. 유튜버 '제주도 꾸꾸지니' 생중계 화면 캡처·제보자 제공
시위 참가자가 "하지 마, 하지 마"라고 외친 이후 채증 경찰관이 다가와 시위 참가자의 폭행 사실을 언급하는 시점의 차이는 1분 여에 불과하다. 교묘한 편집으로 폭행의 주체자를 거꾸로 뒤바꾸어 여론몰이를 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다. 영상을 올렸던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스스로 영상을 삭제했던 이유였던 것으로도 보인다.
영상을 촬영하던 유튜버는 생중계 당시엔 "경찰관도 때렸어요"라고 작게 말했으나, 이후 유튜버가 공개한 편집본 영상에선 채증 경찰관이 시민의 폭행 사실을 알리는 부분은 담기지 않았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구 앞에서 경찰들이 서 있다. 연합뉴스
한편, 경찰은 9일 언론 공지를 내고 "시민, 기자, 경찰·소방 등을 대상으로 한 폭행·명예훼손·강요 등 명백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조치할 예정"이라며 "과도한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피해를 겪은 현장 경찰관들에 대해서도 경찰청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과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경고했다.
경찰청은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정당한 의사 표현은 최대한 존중하고 적극 보호하겠다"며 불법행위를 제외한 시위 활동은 보장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러면서 "투표지 부족 사태가 국민 주권의 핵심인 참정권 훼손과 직결된 엄중한 사안이며, 일반 시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 역시 기본권으로서 당연히 보호받고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