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초록 땅, 그린란드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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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더 유명해진 것이 바이킹이다. 아일랜드에서 주로 촬영한 역사물 ‘바이킹스’에서는 노르웨이 출신의 바이킹 붉은 에릭(Erik the Red)이 986년에 살인죄를 짓고 추방된 뒤 십여 척의 배에 가족과 동료를 태우고 그린란드에 도착한다. 에릭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섬 이름을 그린란드(초록 땅)로 붙였다고 한다. 한국의 20배가 넘는 크기의 그린란드는 농사지을 초록 땅이 2%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두꺼운 얼음으로 덮인 척박한 곳이다. 콜럼버스보다 500년 앞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레이프 에릭슨이 에릭의 아들이다.

북극해에 위치한 그린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 독일에 이어, 미소 냉전 시절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미군은 1953년에 소련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그린란드에 장거리 폭격기와 요격미사일을 배치할 전략공군기지를 건설했다. 현재 탄도미사일 조기경보용 레이더와 외국의 우주 발사체까지 추적하는 기지로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린란드를 덮고 있던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지하 광물자원을 탐사하기 좋은 환경으로 변했다. 그린란드에는 석유, 천연가스는 물론이고 전기차 배터리와 스마트폰부터 미사일 제조에 필수적인 희토류가 다량 묻혀 있다고 한다. 빙하가 줄어들면서 이런 광물을 채굴한 뒤 북극해로 수송하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그린란드 천연자원 매장 규모는 북극권 전체의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는 20일 취임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그린란드를 차지하려고 군침을 흘리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우위와 함께 희토류 등 광물자원을 수월하게 확보하겠다는 속셈이다. 어떤 이유로든 캐나다의 미국 51번째 주 편입과 파나마운하 환수 주장에 이어 그린란드까지 군사력·경제력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막가파’의 줄임말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질 정도이다.

미국이 상대 국가를 동맹·우방이라고 부르면서, 뒷골목 조폭들이나 할 법한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린란드 원주민 이누이트족에게는 “얼음이 녹기 전에는 누가 적인지 우리 편인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눈 앞에 이익과 어려움이 닥칠 때 누가 우리의 진정한 친구이고, 적인지 곧바로 판가름난다는 뜻이다. 적이 될지, 친구가 될지는 서로의 선택에 달려있겠지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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