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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내각 절반이 국회의원
2009년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의원은 국무장관에 지명되자 바로 의원직을 사임했다. 미국 헌법은 각료와 의원의 겸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서다. 프랑스도 내각에 발탁되면 의원직을 수행할 수 없다. 삼권분립에 기반한 대통령제는 행정부가 국정을 책임지되, 입법부가 대통령 탄핵을 포함한 견제 장치를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한국은 대통령제의 역사가 길지만 출발은 내각제였다. 대한민국 정통성의 시원인 상해 임시정부는 국무총리가 행정수반을 맡았다. 제헌의회도 내각제 지지가 다수였다. 하지만 정부 출범 초기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에 대통령제를 채택하되 대통령 국회 간선제와 의원 입각 허용 등 내각제적 요소를 절충하는 것으로 타협됐다. 개헌을 거듭하며 대통령은 직선제로 바뀌었으나, 의원의 내각 겸직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한적이었다. 이명박 정부 1기 내각에는 현역 의원이 아예 없었고, 역대 정부마다 서너 명 정도에 그쳤다. 김대중(DJ) 정부 때 김종필(JP) 국무총리 등 10명의 의원이 각료로 진출한 건 예외적이었다. ‘DJP연합’이 내각제 개헌을 공약했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각료 과반을 국회의원으로 채웠던 것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현역 의원이 장관이 되면 입법부 고유의 견제 기능에 모순이 발생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상임위에 못 가고, 국회 3대 임무인 입법과 국정감사, 예산 심의 수행도 불가능하다. 또 정부 정책을 수행하면서도 차기 선거를 의식하는 정체성의 딜레마에 빠진다. 포퓰리즘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는 의미다.
이재명 정부의 총리와 장관(19명) 지명자 중 현역 국회의원은 9명(45.0%)이다. 내각제를 내세운 ‘DJP연합’을 제외하면 역대 최다 입법부 차출이라 의원내각제가 연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각료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오늘 시작된다. 자질·도덕성 검증도 중요하지만 의원 입각의 장단점도 이번에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전임 윤석열 정부의 실패 배경에 대통령과 의회의 불통이 으뜸으로 꼽힌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건강한 비판 관계가 훼손되면서 치른 국가적 손실이 너무 컸다. 5일 간 이어지는 인사청문회 슈퍼위크 중 제헌절(7월 17일)을 맞는다. 헌법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의 바람직한 관계 설정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의원 다수의 내각이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협치를 이끌어 낼지, 반대로 삼권분립과 입법부 견제 기능 약화로 또 다른 불통을 초래할지.
2025-07-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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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지구 최대의 적
생애 처음으로 양산을 구입했다. 양산이 배달돼 올 때까지만 해도 걱정이었다. “남자가 웬 양산”이라는 주위 사람의 시선을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기우였다. 백회를 타고 골수까지 말라버릴 기세로 내려쬐는 강렬한 태양빛에 양산은 정말 반가운 존재가 됐다.
일찍 찾아온 찜통더위는 인간의 형태만 바꿔 놓은 게 아니었다. 바다 속도 마찬가지다.
지난 6일 경북 영덕 앞바다서 대형 참다랑어 70마리가 잡혔다. 정치망 어장 그물에 잡힌 참다랑어는 길이 1~1.5m, 무게는 30~150kg이나 된다고 한다. 이 참다랑어는 수협에서 kg당 1만 4000원에 위판됐는데, 평소 영덕 앞바다에서 참다랑어가 잡히기는 했지만 무게가 통상 10㎏ 안팎에 불과했다. 관계 당국도 대형 참다랑어가 한꺼번에 잡힌 것은 드문 일이라고 했다. 기후 변화로 대형 참다랑어가 영덕 해상에 수시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어민들의 소득 증대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기후변화 측면에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기후변화의 대표적인 현상 중 하나는 찜통 더위, 즉 폭염이다. 지난 7일 밀양의 기온은 39.2도까지 올라 7월 상순 기온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경기도 일부 지역은 40도가 넘기도 했다.
한국만 폭염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유럽은 올해 가장 더운 6월 말과 7월 초를 보냈다. 지난 1일 유럽 남서부 끝에 위치한 이베리아반도 여러 곳의 온도가 43도를 넘었고 밤 기온도 28도를 기록했다. 포르투갈 모라의 기온이 46.6도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지구촌 전체가 불덩이다.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요즘 같은 찜통 더위를 두고 사람들은 “이러다 뭔 일이라도 나겠다”는 반응이다. 이러다 뭔 일이 나는 게 아니라 벌써 온갖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폭염으로 해마다 50만 명이 죽어나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염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탄소 배출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임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인간의 생존과 삶을 위해서는 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등 전쟁터에서도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인간은 삶을 위해서도, 삶을 파괴하는 데서도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최대의 적은 인간이다.
2025-07-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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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부산~러시아 직통열차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가 최근 한층 두터워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돕기 위해 1만 5000명을 파병한 데 이어 추가 파병도 검토 중이다. 이 와중에 러시아와 북한은 평양과 모스크바를 잇는 직통열차 운행을 최근 재개했다. 이 열차의 운행 재개는 부쩍 깊어진 양측의 우호 관계를 상징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북러 직통열차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2020년 2월 운행을 중단했다. 5년 만에 재개된 이 열차 운행 노선은 총 1만㎞를 넘는다. 지구의 둘레 길이가 4만 75㎞인 점을 감안하면 지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를 달리는 것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장거리 노선으로 꼽힌다. 편도로 8일이나 소요된다. 비행기를 이용하더라도 11~13시간가량 소요되는 기나긴 노선인 셈이다.
북러 직통열차는 평양에서 북한 국경에 인접한 러시아 하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도달한 뒤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타고 모스크바까지 달리는 방식으로 운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열차는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치타, 이르쿠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키로프, 코스트로마 등 TSR 주요 역에 정차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 길이는 9288.2㎞에 달한다. 1891년 철도 건설을 시작해 1916년 모든 구간이 개통됐다. 이 철도는 한민족과 관련한 슬픈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하다. 1937년 당시 소련의 스탈린은 이 철도를 이용해 연해주 지역에 거주하던 한인 17만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TSR에는 정든 터전을 버리고 황량한 중앙아시아로 옮겨야 했던 한인들의 눈물이 담겨있는 셈이다.
특히 TSR은 우리나라 대북 정책 역사에도 자주 등장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의 철도를 연결, TSR을 통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에도 이 구상을 현실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 불발됐다. 북러 직통열차 운행 재개를 지켜보면서 부산에서 러시아로 연결되는 이른바 ‘부러 직통열차’가 달리는 장면을 상상해 봤다. 부산에서 대전, 서울, 북한을 거쳐 TSR을 타고 유럽에 도달하는 육로가 열린다면 물류 수송, 관광 활성화 등의 측면에서 엄청난 호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갈수록 격화되는 신냉전 구도를 감안하면 부러 직통열차 현실화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부산에서 유라시아로 뻗어나가는 육로가 하루빨리 열리길 기원한다.
2025-07-09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