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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열된 원전 논쟁, 첫단추는 '신뢰'
지난해 12월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업무보고가 있었다. 김성환 장관이 원전 정책 관련 답변을 하려 하자, 이재명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이 대통령은 “(김 장관 말은) 민주당 소속이라 못 믿겠다”는 농담을 하더니 “당적 없는 사람이 답해라”고 말했다.
원전만큼 가열된 논쟁도 드물다. 친원전이든, 탈핵이든 논쟁에 뛰어든 이들은 상당한 신념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처럼 AI 열풍에 친원전 목소리에 힘이 실릴 때도,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 탈핵이 대세를 이뤘을 때도, 늘 원전 논쟁은 거칠고 뜨거웠다. 각자가 핏대를 높이고 있는데, 이미 당파적 색깔이 묻은 김 장관이 아무리 논리적인 이야기를 한들 상대 진영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어 이 대통령은 “과학을 논하는데, 네 편 내 편이 어디 있냐”며 건설적인 토론을 하자고도 주문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원전을 비롯한 에너지 관련 논쟁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유동적이다. 그리고 과정이 복잡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근거를 끌어오고 논리를 만들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원전이 싼 에너지인가? 싸다면 얼마나 저렴한가? 쉽게 답을 할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와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에선 원전이 훨씬 저렴한 에너지이지만, 서유럽에선 오히려 신재생이 더 싼 곳도 있다. 원료비나 기후 환경 같은 다른 외부 요인이 이유가 될 수 있다. 더 본질적인 것은 전력망 형태나 전력 공급 운영 방식 등이다. 전력 인프라를 어떻게 구성했는가에 따라 에너지별 발전 단가는 큰 차이가 난다. 발전소의 효율성은 정책 방향에 따라 유동적으로 결정되는 셈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대규모 발전에 적절한 전력망을 계속 강화하면, 원전의 경쟁력은 더 올라갈 것이다. 반대로 신재생 에너지망에 적합한 전력망을 구축하고 투자하기 시작하면, 신재생의 발전 단가는 떨어지고 원전은 올라가 언젠가는 경쟁력이 역전될 수 있다.
그러나 다수는 복잡하고 유동적인 에너지 문제를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접근한다. 고정불변의 명제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어떤 이는 2023년 탈핵에 앞장선 독일이 전력 수급 문제로 프랑스로부터 전기를 수입한 것만 보인다. 다른 이는 2022년 원전 강국 프랑스가 원전 가동률 문제로 독일에서 전기를 수입한 것을 강조한다. 실제론 유럽에선 전력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일이 흔해, 단일 사건으로는 그 의미를 판단하기 어렵다.
에너지 문제의 복잡성과 변동성을 이해하더라도, 건설적인 논쟁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대를 신뢰할 수 있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2024년 7월 한국은 체코의 원전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원전 당국은 “UAE 이후 15년 만의 수주”라고 환호했다. 그리고 지난해 원전 수출을 둘러싼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굴욕 계약’이 드러났다. 거액의 기술 사용료와 향후 SMR 등을 포함한 원전 수출 시 미국 기업의 검증 의무화 등이 명시된 반영구적인 계약이었다. 원전 당국이 성과는 자랑하고 불리한 내용은 감춰왔던 것이다.
지난 20일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부담금을 13년 만에 인상했다. 경수로형 부담금의 경우 쓰고 남은 핵연료 다발당 처리 비용이 2배 가까이 인상돼 6억 원을 넘어섰다. 이런 식으로 원전 사후처리비용이 오르다 보니, 한수원이 부담해야 할 연간 처리비용이 한 번에 3000억 원 정도 늘어나게 됐다. 수년이면 조 단위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결국 발전 단가에 영향을 줄 것이다.
지난 13년 동안 원전 당국은 이런저런 이유로 비용 인상을 외면했다. 사용후핵연료를 함부로 버릴 수 없으니 반드시 현실화가 필요한 비용이었다. 심지어 2023년엔 산정위원회를 열고 2배 이상 인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놓고도, 고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원전에 ‘숨은 비용’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탈핵 진영은 원전의 낮은 발전 비용을 유지하려 비용 인상을 미뤘다고 주장한다.
불리한 계약과 필요한 비용을 애써 감추는 것은 친원전, 탈원전과는 무관한 일이다. 신뢰의 문제다. 가뜩이나 가열돼 대화가 안 되는데, 당국이 내놓은 자료들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지금도 추가 원전 건설 같은 뜨거운 감자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이대로라면, 원전 당국과 탈핵 진영은 서로가 각자 주장만 펼치다 결국 힘의 논리로 대한민국 에너지의 미래가 정해질 듯하다. 대통령의 지적대로 네 편, 내 편 없는 대화가 간절해 보인다. 그리고 대화의 시작은 믿을 수 있는 상대가 되는 거다.
2026-01-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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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2026년 양산 방문의 해에 거는 기대
2026년 1월 1일 새벽, 영하 15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2100여 명의 방문객이 천성산(920m) 천성대에 올랐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에서 병오년 붉은 말의 첫해를 맞이한 이들은 저마다 새해 소망을 빌었다.
이날 천성산 해맞이는 단순히 해마다 치르는 행사가 아니라 ‘2026년 양산 방문의 해’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었다.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모습은 양산이 어떤 도시로 기억되길 바라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양산시는 시 승격 30주년을 맞아 올해를 ‘방문의 해’로 선포했다. 외국인 관광객 51만 명을 포함해 4000만 방문객 시대를 목표로 제시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다소 과한 목표로 보이지만, 양산시가 계획·추진 중인 정책을 보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도시의 체질을 ‘체류형’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양산은 ‘스쳐 가는 도시’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부산과 울산 사이에 위치한 데다 KTX와 고속도로, 국도 등으로 뛰어난 접근성까지 갖췄으나, 오히려 ‘체류’를 막는 요인이 됐다. 쉽게 오고 쉽게 떠나는 구조 때문에 양산을 찾는 방문객이 많아도 소비는 적었다. 실제 지난해 방문객은 3800만 명에 달하지만, 숙박과 체류 측면에 한계를 드러냈다.
사통팔달의 교통망에 체류형 관광 전략이 없으면 양날의 검이 된다. 이런 점에서 양산시 등 낙동강 하류 지역 7개 자치단체로 구성된 낙동강협의회의 일본 오사카와 와카야마 벤치마킹이 눈여겨볼 만하다.
오사카는 관광이 어떻게 산업으로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의 도시’ 오사카는 7개 강을 활용한 11개 크루즈 노선을 통해 도시의 일상과 관광을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단순히 배를 타는 체험이 아닌 도시 풍경과 역사, 야경을 하나로 묶어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 결과 오사카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10% 이상이 크루즈를 경험할 정도다. 2024년 외국인 관광객은 1463만 명이며, 2025년은 17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낙동강 생태탐방선을 크루즈로 승격하려는 논의는 양산 방문의 해와 맞물려 핵심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화명공원과 황산공원, 밀양 수산교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노선은 천혜 자원을 체류형 관광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기 추진 선박 도입 등 환경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접근 역시 지속 가능한 관광을 염두에 둔 것이다.
파크골프도 주목된다. 와카야마현 기미노정 사례에서 보듯 파크골프장은 고령층뿐 아니라 가족 단위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생활형 관광 콘텐츠로 활용된다. 인구 7700명에 불과한 산촌인 기미노정의 파크골프장에 연간 13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고 있다. 낙동강협의회가 파크골프장을 연계해 전국 규모 대회를 검토하는 것도 ‘체류’를 염두에 둔 전략이다. 양산 방문의 해가 스포츠 관광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다.
워케이션은 덤이다. 와카야마현은 워케이션을 통해 관계 인구(생활 인구)를 늘린다. 일과 휴식, 체험을 결합해 지역과 장기적인 연결고리로 만들어 지역 소멸을 막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낙동강과 황산공원, 통도사와 같은 천혜 자원을 가진 양산시 역시 워케이션을 체류형 관광의 확장 모델로 고민해 볼 대목이다.
관광은 흔히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린다. 대규모 시설 없이도 지역에 사람을 불러들이고, 소비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유치에 한계가 있는 지방 도시일수록 관광은 가장 현실적인 성장 동력이다.
양산은 이미 충분한 자산을 갖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통도사와 천성산, 낙동강과 황산공원, 배내골과 내원사 계곡 등 자연과 문화 자원이 고루 갖춰져 있다. 계란을 주제로 한 ‘에그야 페스타’처럼 차별화된 콘텐츠도 갖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자산들을 하나의 체류 동선으로 만드는 것이다. 크루즈와 파크골프, 축제와 워케이션이 서로 연결될 때 방문의 해는 비로소 산업으로 작동한다.
양산 방문의 해가 성공하려면 방문객 수를 늘리는 데서 그치지 말고, 체류 시간과 재방문율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숙박 인프라를 확충하고 먹거리 브랜드를 개발하고 관광 동선과 코스 설계도 병행해야 한다. 방문객이 ‘왜 하룻밤을 더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방문의 해는 일회성 행사로 끝날 수밖에 없다.
새해 천성산의 첫해처럼 양산 방문의 해는 좋은 출발을 했다. 이 기운을 연말까지 이어갈 전략이 필요하다. 방문의 해가 끝난 뒤에도 ‘다시 찾고 싶은 도시’, ‘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상과 여행이 공존하는 도시’로 기억되는 것, 그것이 양산 방문의 해에 거는 기대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2026-01-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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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개인정보 유출 사고, 제도적 보완 나서야
통신사, 카드사, 유통사로 확대된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 ‘소비자 보상’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개인정보 유출이 발생한 회사들은 정부의 ‘중재안’을 거부하고 ‘생색 내기’ 보상에 나서 소비자 불만을 키웠다. 소액, 다수 피해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결국 법·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4월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한 SK텔레콤 가입자들은 유심(USIM) 교체를 위해 직접 대리점을 방문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유심 확보도 제때 되지 않아 교체를 위한 대기 기간도 길었다. 이런 불편과 불안에 대한 보상은 한 달 통신비 반값 할인 등이었다.
SK텔레콤은 가입자 1인당 30만 원을 배상하라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산하 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안을 거부했다.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이 강제력을 갖지 않는다는 제도적 한계가 SK텔레콤의 조정안 거부로 다시 부각됐다. 결국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배상은 일부 소비자가 참여한 민사 소송을 통해 결론이 날 전망이다.
지난해 8월 가입자 297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롯데카드도 ‘쥐꼬리’ 보상으로 비판 받았다. 대부분의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는 최대 10개월 무이자 할부, 연말까지 카드 사용 알림 문자 무료 서비스 보상에 그쳤다. 카드번호와 비밀번호 등 핵심 개인정보가 유출된 28만 명도 카드 재발급 시 연회비 면제 혜택을 제공하는 데 머물렀다.
개인정보 유출과 대응 과정에서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던 쿠팡의 경우 가입자 3370만 명에게 1인당 5만 원의 보상금을 발표했지만 결국 ‘생색내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쿠팡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은 5000원에 그쳤다.
개인정보 유출 관련 보상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소액, 다수 피해자를 위해 도입한 소비자보호법상 집단분쟁조정제도, 개인정보보호법상 집단분쟁조정재도가 무력화되면서 집단소송제 도입 필요성이 부각되는 모습이다.
국내에서는 증권과 관련된 자본시장법 위반 행위에 대해서만 집단소송제가 도입된 상태다. 민사소송의 경우 같은 내용의 소송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이 ‘공동 소송인’으로 당사자가 되는 공동소송 제도가 있지만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까지 보상하는 집단소송제와는 거리가 있다.
미국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건에 대해 집단소송(Class action)을 허용한다. 미국의 집단소송은 ‘제외신청’을 하지 않으면 법원의 판결이 관계자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원고가 승소하면 피고 측이 출자한 자금에 의해 조성된 구제 기금을 각 구성원에게 분배,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일본도 모든 소비자 계약을 대상으로 집단소송제를 실시하고 있다. 2단계로 진행되는 일본의 집단소송은 1단계에서 소비자단체가 패소하더라도 소비자 개인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승소한 경우에만 소비자들이 2단계 참가를 결정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 유리한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도 집단소송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수차례 있었지만 재계 반대로 무산됐다. 과거 전국경제인연합(현 한국경제인협회)은 집단소송제 도입에 반대하며 “막대한 소송 비용은 물론, 기존 행정제재, 형사처벌에 더해 민사적 처벌까지 ‘3중 처벌’에 시달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계 반발로 집단소송제 도입이 좌절되면서 국내 소비자들이 미국 집단소송 결과에 영향을 받는 일도 벌어졌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에서 세타2 GDi 엔진 집단소송에 합의하면서 국내 차량에 대해서도 ‘평생 보증’ 프로그램을 제공한 바 있다. 그러나 통신사처럼 내수 시장에 서비스가 집중된 경우 해외에서 집단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한국에서 장사하는 미국 회사’인 쿠팡도 미국 집단소송 가능성이 없다. 결국 국내에서 집단소송제를 확대해야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가 가능하다.
정부의 ‘개인 데이터 사용 확대’ 정책도 다시 점검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마이데이터’ 확대에 대해 우려가 크다. 마이데이터란 정보 주체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개인정보를 한 곳에 모아 통합적으로 관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정부는 마이데이터의 ‘본인전송요구권’을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 주체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전송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정보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전송요구권을 통한 개인정보 유통 활성화가 결국 개인 정보의 ‘헐값 거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정보의 유출이나 오남용 등 침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김종우 서울경제부 부장 kjongwoo@busan.com
2026-01-1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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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시민 중심 기부 사회' 꿈꾸며
세운철강(주) 신정택 회장이 새해 첫날 부산대에 개교 80주년을 축하하고 응원하기 위해 1억 원의 발전기금을 기탁했다. 신 회장은 앞서 지난해 11월 열린 부산대 디지털 명예의 전당 설치 준공식 및 80주년 기념 발전기금 릴레이 기부 출범식에 참석해 부산대의 역사와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상징 공간 조성 취지에 깊이 공감한 바 있다. 신 회장의 이번 1억 원 출연은 부산대 개교 8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시계탑 복원사업을 위한 지정 기부였다.
신 회장은 기업 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 지역사회에서 큰 신망과 존경을 얻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 기업인이다. ‘지역 산업과 교육이 함께 살아야 지역의 미래도 지속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기부·봉사·경제 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사회공헌활동을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다. 신 회장은 “부산대 개교 80주년은 대학의 역사이자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 온 시간”이라며 “기부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을 보태는 실천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사)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강충걸 회장과 가족도 새해 첫 기부를 20여 년간 이어오며 따뜻한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강 회장 가족은 지난 2일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을 방문해 이웃돕기 성금으로 1019만 9510원을 전달했다. 강 회장 가족은 2005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새해 첫 날 부산사랑의열매를 찾아, 한 해 동안 가족이 함께 모은 성금을 기부하며 나눔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있다. 올해는 손녀들까지 기부에 동참해 더욱 뜻깊었다. 매년 기부에 참여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두 손녀는 1년 동안 저금통에 용돈을 모아 직접 전달했다.
이날 기부금 전달식에 강 회장 대신 참석한 아내 박영희 씨는 “매년 나눔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일이 우리 가족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계속해서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을 나누고 싶다’며 손녀들이 가져온 저금통을 보며 우리가 이어온 나눔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부산에서 광고매체 업체인 (주)파나컴을 운영하며 장애인 사회인식 개선 및 다양한 복지사업을 운영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 새해맞이 기부를 21년간 이어가고 있는 강 회장 가족의 부산사랑의열매 누적 기부금은 1억 1000만 원에 달한다.
이처럼 신 회장과 강 회장 가족의 새해 첫 기부는 올 한 해도 부산의 나눔 문화가 활성화되길 염원하는 신호탄이자 기폭제로 여겨진다. 이와 더불어 병오년 부산의 나눔 온도가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상들이 여러 곳에서 탐지되고 있다. 고향사랑기부제와 부산 400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 탄생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부산 지역 고향사랑기부액이 약 58억 39만 원으로 집계돼 역대 최고액을 기록한 것이다. 2024년(19억 4489만 원)과 비교하면 약 3배 증가했다. 기부금의 사용처와 목표액 등을 정할 수 있는 지정 기부와 100종이 넘는 다채로운 신규 답례품들이 놀라운 흥행을 견인했다.
노후 구급 장비 교체와 화재취약 지역 주민자율소방함 설치 사업 등 부산시의 지정 기부 프로젝트가 인기를 끌면서 부산의 구·군들도 올해 잇따라 지정 기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업그레이드된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도 기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부산 지역 지자체들은 지난해 100종이 넘는 답례품을 신규로 개발했다. 기장 미역, 대저 짭짤이 토마토 등 기존에 제공되던 계절성 특산품은 물론, 동구 차이나타운의 유명 식당인 신발원의 만두, 고액 기부자를 위한 해운대 5성급 호텔 웨스틴조선 투숙권 등도 등장했다.
지난달 22일 열린 (주)보명금속 홍수식 대표의 부산 400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1억 원 이상 기부) 가입식도 무척 반가웠다. 이날 홍 대표의 아너 가입으로 부산은 서울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아너 400호 회원을 배출한 지역이 됐다. 이는 인구 규모가 약 4배에 달하는 경기도보다 많은 고액 기부자 회원 수를 보유한 것으로, 부산의 나눔 활동이 전국 최고 수준임을 입증한 상징적인 성과로 분석됐다. 부산은 기업 고액 기부자 모임인 나눔명문기업도 94곳에 달해 서울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기부 주체가 일부 기업인이 아닌 시민 중심으로 바뀌어 나눔이 일상적인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는 점은 올 한 해도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부산아너소사이어티클럽 이성근 회장은 “지금까지는 기업인과 전문직 중심의 기부 참여가 많았다면, 이제는 젊은 창업가, 프리랜서, 직장인 등 다양한 계층이 나눔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부 문화가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의 말처럼 올 한 해는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나눔 문화가 더욱 활성되길 기대한다.
2026-01-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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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은행에 '먼저 온 미래'
지난해 최대 수익을 낸 은행권이 ‘역설적이게도’ 대대적인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특히 대상 연령이 만 40세(1985년생)까지 확 낮아지면서 “잘 나가는 은행이 왜? 뭐가 급해서”라는 의문이 따랐고,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렸다. ‘정년 연장’ 논의까지 거세지고 있는 마당에 ‘40세 은퇴’라니,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과거 ‘사오정’(45세 정년)이 유행하던 시절, 명예퇴직의 목적은 ‘비용 절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력 재편’이 목적이 됐다. 이 때문에 1인당 5억 원씩 얹어 주고라도 사람을 내보내려 한다. 은행의 경우 대면 업무를 하던 영업 인력을 줄이고 대신 디지털 업무를 고도화할 IT 전문가들로 인력 포트폴리오를 새로 짤 계획을 세우고 있다. AI(인공지능) 뱅커나 AI 화상 창구 등 디지털 금융 서비스가 늘며 영업점 수는 점점 줄고 있고, 그만큼 사람이 하던 업무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노련한 은행원은 고객의 목소리 톤만 듣고도 대출 연장 여부를 판단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AI가 고객의 소비 패턴과 SNS 활동까지 분석해 0.1초 만에 등급을 매길 정도니 사람 사이 ‘신뢰’라는 감정도 설 자리가 없어졌다.
조직 내에서 갈고 닦은 실력과 경험치를 가진 ‘중고참’ 15년차, 40세마저도 ‘나가도 그만’이 될 정도면 앞으로 ‘IT 인력’을 제외하고는 채용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보인다. 이 때문에 은행권의 희망퇴직 뉴스는 또 다른 인력 시장의 ‘구성품’에 불과한 직장인들에게 위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설가 장강명이 쓴 책처럼, 은행에 ‘먼저 온 미래’다.
장 작가는 저서 〈먼저 온 미래〉에서 이세돌 9단이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진 후 프로 기사들의 달라진 ‘세계’를 인터뷰하며,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의 세계를 끊임없이 비춘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그러하듯, 독자도 자신의 직업에 이를 빗대보게 된다.
장 작가는 말한다. “나는 바둑계에 미래가 먼저 왔다고 생각한다. 2016년부터 몇 년간 바둑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앞으로 여러 업계에서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 헌신한 일을 더 잘해내는 인공지능이 싼 가격에 보급되는 것. 그 인공지능과의 공존을 강요 당하는 것. 인공지능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 당신이 알고 있던 개념을 인공지능이 재정의하고, 당신은 그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것.”
실제로 10년, 20년 쌓아온 자신의 전문 지식이나 노하우를 AI가 단 몇 초 만에 처리하며 더 뛰어난 결과물을 내놓는 걸 보면, 박탈감을 느낀다는 이들이 많다.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40세까지 내려온 희망퇴직 연령 탓에 은행권이 시끌벅적한 신호탄이 됐지만, 실은 곳곳에서 이 같은 인력 재편이 일어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공정 품질 분석에 AI를 도입하면서 분석 시간을 3주에서 2일로 단축했고, 이에 따라 단순 분석 인력은 줄이고 AI 모델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 중심으로 인력을 재편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에서는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해 직원의 약 7%가 퇴사했는데, AI 등 신사업을 위한 신입사원 채용이 희망퇴직의 주요 배경으로 알려졌다.
마침 6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의 핵심 키워드는 ‘피지컬 AI’라고 한다. 그나마 디지털 공간을 벗어나면 맥을 못 추던 게 AI였는데, 이제는 AI가 디지털 공간에서 벗어나 몸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AI가 로보틱스와 결합해, 단순 자동화를 넘어 물리적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스스로 인식하고 판단해 조작하게 되면, AI가 사람을 대신할 일은 더 많아질 것이다.
이번에 은행권이 보여준 거대한 예고편을 보며, 우리는 본편을 준비해야 한다. ‘AI 시대, 인간이 AI에 대체될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지려면 뭘 준비해야 할까.’ 아무리 궁리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아 AI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AI 시대에 인간이 대체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기계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에 집중하는 것이다.” 미래의 인재는 AI에게 명령을 내리는(Prompter) 사람이거나, AI의 결과물을 책임지는(Decision Maker)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그러면서 3가지 핵심 준비 사항을 일러준다. △정답을 찾는 능력에서 질문하는 능력으로 바꿀 것 △인간의 고유 영역인 공감과 협상 능력을 높이기 위해 감성 지능(EQ)과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갖출 것 △새로운 AI 툴이 나왔을 때 빠르게 습득해서 적용하는 적응력을 키울 것. AI가 말한다면 정답이겠지.
AI가 다 해주는 시대가 되면 인간은 더 편해질 줄 알았더니, 왜 할 일은 더 많아지는 걸까.
2026-01-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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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남포동에서 본 '300만 명'의 그림자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사상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반등 국면에 들어섰다. 크루즈 기항 확대와 항공 노선 회복, 콘텐츠를 통한 도시 인지도 상승이 맞물린 결과다.
최근 남포동을 찾기 전,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한 장면이 그려졌다. 내국인과 외국인이 뒤섞여 북적이고, 오래된 가게 앞에서는 한국어와 외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오가는 풍경이었다.
현실은 조금 달랐다. 골목의 오래된 유명 식당은 과거엔 부산 사람들이 줄을 서던 곳이었지만, 이날 한국인 손님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대신 외국인 관광객들이 테이블을 채우고 있었다. 문제는 국적의 변화가 아니었다. 음식의 내용과 분위기가 크게 달라져 있었다. 한국인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릴 부실한 재료는 예전 기억과 거리가 멀었다. 한 번 먹어보고 사진을 남기면 충분한, 이른바 ‘관광용 음식’의 모습이었다.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북적이는 공간을 기대했기에 더 씁쓸했다. 관광객이 늘었다는 사실이 지역의 활력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지역 손님을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인들이 발길을 끊은 공간은 결국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오래 남을 장소가 되기 어렵지 않을까.
우리 역시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떠나면 가장 먼저 ‘현지인 맛집’을 찾는다. 현지인과 여행객이 함께 북적이는 공간에서 먹는 한 끼야말로 그 도시를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대하는 부산 모습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남포동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국제시장·자갈치시장과 가깝고, 크루즈가 들어오는 국제여객터미널도 인근에 있다. 부산에 처음 발을 디딘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 중 하나다. 그래서 남포동의 변화는 개별 상권의 문제가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이 기억하는 ‘부산의 첫인상’과 직결된다.
남포동에서의 한 끼 식사는 단순한 개인의 소비를 넘어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경험이 된다. 부산에서의 첫 식사, 첫 골목, 첫 인상은 관광객이 이 도시를 다시 찾을지, 다른 이에게 추천할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관광객 수 증가라는 성과가 신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 성장은 오래가기 어렵다.
물론 이 변화를 개별 식당이나 자영업자의 선택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급등한 임대료와 인건비, 짧아진 관광 소비 주기 속에서 당장의 매출을 확보해야 하는 현실적인 압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선택이 반복될수록 상권은 단기 수익에는 강해질지 몰라도 오래 머무는 신뢰와 기억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부산관광공사가 지난해 발표한 ‘2024 부산 방문 관광객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 부산을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로 ‘음식·맛집 탐방’이 자연풍경 감상과 함께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일본 관광객의 경우 음식 탐방을 선택한 비율이 90%를 넘었다. 외국인에게 음식은 부수적인 체험이 아니라 부산 여행의 핵심 동기라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남포동에서 마주한 ‘관광용 음식’의 풍경은 더욱 아쉽다. 외국인이 부산에 기대하고 온 경험과 실제로 제공되는 경험 사이에 간극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포동 전체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이런 변화는 관광지 곳곳에서 반복돼 온 흐름이다. 남포동의 현재는 명동과 이태원, 제주 등 유명 관광지들이 먼저 지나간 경로와 닮아 있다.
이 흐름이 계속된다면 남포동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공간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관광객은 많지만 체류는 짧고, 사진은 남지만 기억은 희미할 것이다. 도시의 대표 관광지일수록 ‘얼마나 많이 오는가’보다 ‘얼마나 오래 머무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남포동은 원래 관광객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밥을 먹고, 가족 외식과 약속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생활의 중심지였다. 외국인이 많지 않던 시절에도 늘 사람이 있었던 이유는 이곳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상이 빠져나간 자리에 관광만 남았을 때 공간은 더 화려해질지 몰라도 덜 살아 있는 곳이 된다.
부산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숫자가 아니라 ‘다시 찾고 싶은 도시’가 되는 일일 것이다. 관광객 수보다 중요한 것은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머무르고, 함께 소비하며,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구조다. 관광은 이벤트가 아니라 도시의 일상 위에 쌓일 때 지속된다.
2026-01-0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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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2026년의 항해 앞에서
왜 ‘우주차’나 ‘우주비행기’가 아니고 ‘우주선’일까.
이런 질문을 봤다.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비행 물체를 차나 비행기가 아니라 ‘배(船)’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1865년작 ‘지구에서 달까지’ 속 대포 모양의 유인 발사체 ‘콜롬비아드’를 우주선 개념의 시작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아폴로호의 달 착륙은 100년도 더 뒤다. SF 문학이 과학보다 먼저 우주 여행을 상상하면서 당시 가장 멀리 가는 수단인 배의 이미지를 가져왔고, 그 표현이 굳어졌다는 이야기다.
차나 비행기가 잠깐 탔다가 내리는 것이라면 우주선은 일정 기간 고립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설비와 식량을 갖추고 거주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배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대기권에서 날개와 공기의 힘으로 나는 비행기나 바퀴를 굴려서 노면을 이동하는 차와 달리 우주선은 진공에 가까운 우주 공간을 탐사한다는 건 구동 환경과 원리의 차이다.
사실 이런저런 설명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왜 ‘우주선’인지 안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바다를 미지의 세계, 극한 환경, 두려울 만큼 넓고 큰 것에 빗댔다. 고개를 들어 광활한 밤하늘의 별을 볼 때 인간이 상상한 우주는 아는 것 중에 바다와 가장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를 탐험하는 일은 항해다. 배가 망망대해 바다를 헤쳐나가듯 우주선은 끝없는 우주 공간을 나아간다.
영토 확장과 번영을 향한 인류의 여정도 항해에 비유된다. 그 결과 극지와 우주, 해저까지 미답의 영역에 깃발이 꽂혔다. 돈만 있다면 민간인도 우주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생명 과학은 질병 정복과 젊음의 연장을 꿈꾼다. 인공지능이라는 요술 방망이는 일상과 산업을 뒤흔들고 창작까지 넘본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현대인은 과거 한 사람이 평생 접했을 분량의 정보를 하루에 처리한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를 정복했다고 미래의 불확실성이 사라진 건 아니다. 강대국과 초거대기업에 조타석을 넘긴 결과 인류 공동체의 항해는 종종 길을 잃는다. 기후 변화는 실재하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사람은 개인 정보와 쇼핑 기록으로 쪼개져 바코드와 알고리즘이 되었다. 인공지능은 일자리와 사회의 신뢰를 공격한다. 인류는 과거보다 더 똑똑해지지도 건강해지지도 행복해지지도 못했다.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가 국내 이용자 98만 명의 종교관, 정치관, 동성 결혼 여부 등 민감 정보를 무단 수집해 광고주에게 넘긴 일로 216억 원 과징금 결정을 받은 게 2024년이다. 국민 3370만 명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는 챗GPT의 성인 콘텐츠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 “우리는 세계의 선출된 도덕 경찰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한 해는 유독 길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함이 컸다. 계엄의 대혼란으로 시작해 정치적 격변과 기술적 충격을 겪으면서 지금 지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알아차리기가 좀처럼 힘들었다. 온갖 플랫폼이 들이미는 쇼츠 뒤에는 인간성이 오염되는 감각이 찾아왔다. 무한한 우주를 떠도는 우주선의 이미지가 잔상을 남긴 건 그래서였던 것 같다.
억울한 죽음들도 있었다. 가자전쟁 2년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어린이 1만 8430명이 사망했다. 전국택배노조 추산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쿠팡 택배기사와 물류센터 노동자 최소 29명이 과로나 안전사고로 숨졌다. 세밑에는 179명이 사망한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의 1주기와 미등록 노동자 단속을 피하려다 숨진 25살 뚜안 씨 아버지의 108배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지나가는 무한한 공간의 형태에 대한 정확하고 예민한 감각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담고 있는 시간의 틀이 마치 크기가 다른 사발들이 차례로 조금 더 큰 사발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층층이 포개진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그러니까 하루 중의 특정 시간이 음력 또는 양력에서 특정한 날 속에 담겨 있고, 다시 이 모든 것이 한 문화적 시대 안에 자리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다.”
미국의 여행 작가 배리 로페즈가 〈호라이즌〉에서 아프리카 북동부 사막에서 초기 현생인류의 화석을 수색하는 케냐인 탐사대를 묘사한 대목이다. 진화론 연구의 배경이 된 태평양의 화산섬 갈라파고스에서는 이렇게 쓴다. “내가 보고 있던 항해도의 한 귀퉁이에는 자주색으로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경고: 분별 있는 뱃사람이라면 하나의 항해 보조물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다시 새해가 시작됐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묻고, 분별 있는 뱃사람으로서 익숙한 지도 대신에 새로운 지도를 상상하기 좋은 때다. 항해의 길잡이별은 경제적인 번영보다는 공동체의 안녕이라면 좋겠다.
최혜규 사회부 차장 iwill@busan.com
2025-12-3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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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미술관 옆 목욕탕'에서
묵은때를 밀기 위해 목욕탕을 찾았다. 온탕에 들어가니 “아이고 시원하다!”라는 소리가 절로 난다. 어릴 때는 그 말이 참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은 몸이 먼저 반응한다. 잠시 눈을 감고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2025년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내란으로 인한 비정상을 정상화한 한 해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격동의 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 모두 정말 수고 많았다.
다음으로는 올 하반기 〈부산일보〉 ‘위크앤조이’ 지면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내용을 담은, 나만의 ‘베스트3 기사’를 뽑아 봤다. 10월에 쓴 ‘부산의 목욕탕’ 기사가 먼저 떠오른다. 부산에는 목욕탕이 많을 때는 무려 1500개, 지금도 500개가량이나 운영되고 있다. 인구 대비하면 세계에서 목욕탕이 제일 많다. 이태리타월과 자동 등밀이 기계도 부산에서 탄생했다.
부산은 동래온천과 해운대온천이라는 이름난 온천 지역 두 곳, 3000명 동시 목욕이 가능한 허심청,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해수탕까지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부산의 명물 목욕탕들을 부동산 개발로 더 이상 사라지게 내버려두자니 너무 아깝다. 다른 지역보다 앞서 부산에서 목욕탕을 일본처럼 트렌드에 맞게 진화시켜,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자 관광 상품화하면 어떨까.
두 번째는 11월에 쓴 10·16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 5개 단체의 ‘부마민주항쟁 유적지 동행 취재기’다.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정권을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민주화운동보다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당시 시위대는 부산대에서 시작해 시민들이 합세하며 남포동, 광복동을 거쳐 국제시장까지 이어졌다. 부산대에는 ‘10·16부마민주항쟁로’를 비롯해 ‘부산대 역사관’의 부마민주항쟁 선언문 3종, 부마민주항쟁 발상지 표지석, 10·16부마민중항쟁탑, 신영복 선생이 쓴 옛 도서관 앞 ‘유신 철폐 독재 타도’ 표지석 등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오늘날 세계인들이 즐기는 K컬처는 시민들이 거리에서 싸워서 얻어낸 민주주의라는 토양이 없었다면 자라나지 못했다. 부산대에서 시작해 시위대의 동선을 따라 남포동·광복동 국제시장을 거친 뒤 부산근현대역사관까지 부마민주항쟁 이야기를 따라 걸었더니 부산이 새롭게 보였다. 부산대 캠퍼스와 부산의 원도심이 K민주주의를 탄생시킨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더 널리 알릴 방법이 없을까.
세 번째는 이달에 쓴 조선 시대 한일 공동 도자기 생산 프로젝트 ‘부산요’에 대한 기사다. 광복로에는 100년 넘게 찻사발을 비롯한 도자기를 구워서 일본으로 수출하던 부산요가 있었다. 부산요가 활발했던 70년 동안만 계산해도 17만 점, 밀수품과 사무역까지 합하면 그 몇 배의 찻사발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부산요 덕분에 도자기 산업 불모지였던 부산은 조선의 도자기 생산과 수출의 메카가 되었다. 그 오랜 세월 조선의 도공이 일본과 협력해 도자기를 생산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부산요포럼’ 관계자들은 지금도 묻혀 있는 부산요의 유물을 발굴하면서 용두산공원에 부산요 자료관과 가마를 만들고, 광복로에 도자기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에는 일본 문화가 일찍부터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지금도 부산을 찾는 외국인 가운데 일본인은 세 번째로 많다. 부산이 도자기 거점 도시가 되면 김해·양산·밀양에 산재한 전통 장작 가마에도 관광객을 데려가 작가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잊혀진 부산의 역사를 회복하면서도 무너진 광복로 상권을 살릴 방안으로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올해 부산을 찾은 누적 외국인 관광객 수가 사상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섰지만 계절적으로는 여름, 지역적으로는 동부산 집중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부산에 외국인 관광객 500만을 유치하려면 부산의 역사성을 살리면서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목욕탕, 부마민주항쟁유적지, 부산요 같은 문화 콘텐츠들을 갈고 닦아서 부산의 보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퐁피두 미술관 부산 분관 건립안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퐁피두 센터는 프랑스 파리 외에도 메츠, 스페인 말라가, 벨기에 브뤼셀, 중국 상하이, 서울까지 분관이 다섯 개나 된다. 브라질과 미국에서도 분관이 추진되고 있다. 프랑스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면서 돈도 되니 프랑스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최근 부산에서 첫 번째로 꼽는 관광지가 감천문화마을이 되었다. 세계인들은 한국이 궁금해서 오는데, 왜 땅속에 묻힌 보물을 놔두고 비싼 돈 써가면서 남 좋은 일 시키려는지 모르겠다. 흩어진 구슬 서 말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2026년이 되길 소망한다.
박종호 스포츠라이프부 선임기자 nleader@busan.com
2025-12-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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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Merry 해수mas'
살면서 꿈이 현실이 되는 경험,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7대 특·광역시 중 최고 수준의 초고령화율(24.5%), 특·광역시 중 최초의 소멸위험 단계(2024년 3월 기준 0.49) 진입. 온통 잿빛이던 부산 뉴스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밤이 가장 긴 동지 다음 날 해양수산부가 개청식을 열었다.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에 좋은 날이었다.
중앙정부부처 중 홀로 부산에 터를 잡고 개청식을 여는데, 대통령실과 모든 국무위원이 출동해 힘을 싣는 모습을 온 시민과 국민이 지켜봤다. 올해 초 당시 이재명 후보가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공약할 때만해도 많은 시민들은 “별 공약을 다 한다” “또 공약만 해놓고 안 지키겠지” 하는 반응이 다수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때도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분해된 해수부를 다시 복원시키고, 부산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해수부 복원에 만족해야 했다.
올해 이 후보 공약을 보면서 많은 이가 또 ‘빌 공(空)자 공약’ 이겠거니 한 것은 정치인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그 사이 우리나라 수도권 집중이 더 심화됐다는 현실 때문이기도 했을 터.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민간 건물 두 동을 빌려 800여 명의 사람과 청사 전체를 옮기는 실행력을 목도했을 때, 많은 시민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때는 없애도 문제없는 부처로 인식됐던, 이곳저곳 옮겨 다니기 바빴던, 조직 규모나 예산 면에서 전체 정부부처 중 아직도 막내 자리 언저리를 맴도는 해수부가 부산에 완전히 뿌리내리러 왔다. 서울, 포항, 영도, 세종을 거쳐 이제야 제자리를 잡은 해수부 표지석의 궤적이 어쩌면 해수부가 그동안 거쳐온 굴곡진 역사를 대변할지도 모르겠다. 해수부가 세월호 참사와 한진해운 파산을 겪으며 내상이 깊다는 사실을 많은 국민은 안다. 마침 내년은 한진해운 파산 1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기념할 일은 아니지만 기억은 꼭 해야 한다.
글로벌 물류망과의 연결을 책임지는 국가 해운산업의 공공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정부 결정으로 당시 선복량 세계 7위 국적선사는 공중분해됐다. 당시 세계 13위 수준이던 현대상선을 올해 8위 HMM으로 키우는 데 엄청난 공적자금이 들어갔다.
밤이 가장 긴 올해 동지까지가 그런 해수부였다 치자.
마침 내년은 부산항 개항 150주년이 되는 해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영예로운 미래 150년을 열어갈 첫해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북극 해빙은 북극해를 새로운 글로벌 물류 루트로 부상시키고 있다. 북반구에선 유럽~아시아, 유라시아 대륙~미주 대륙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루트가 북극항로다. 북극항로 개척을 책임지는 해수부 역할이 막중하다.
연관 부처와의 협력은 물리적 거리가 떨어지더라도 범정부 국정과제 차원에서 잘 해나가리라 믿는다. 해수부 부산 시대의 의미는 바로 산업현장과의 소통 확대에 있다. 실제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맡을 해운선사와 해기사, 조선사와 기자재업체 등 산업현장과 인력이 몰려 있는 부울경에서 과거보다 훨씬 밀도 있는 소통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 일자리와 산업 육성에 목마른 지방자치단체들과의 협력도 마찬가지다.
해수부 홀로 고뇌에 찬 결단으로 북극항로 개척을, 해양산업 탈탄소·디지털 대전환(2DX)을 책임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업계, 연구기관, 지자체, 정치권, 대학 등이 함께 해양수도권, 북극항로 경제권 구축에 동참하도록 거버넌스를 만들고 역할을 서로 나눠 수행하자는 것이다. 부산시를 비롯해 해수부를 맞이하는 부울경 각 주체들도 이전과는 다른 자세로 지역 해양 현안과 과제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그리 된다면 해수부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위축될 것도 없다. 오히려 다른 부처 공무원들이 부러워할, 국내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글로벌 정부 기관이 될 수 있다. 부울경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번영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마침 오늘 크리스마스다. 오늘부터 해수부와 해양수산가족 모두에게 즐거운 나날이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긴박한 일정에 부처 이전 격무에다, 가족과의 생이별을 묵묵히 감내한 해수부 직원들의 노고에 위로와 감사를 전한다. 내년 창립 30주년을 맞는 해수부가 다가올 새로운 30년과 그 이상의 시간을 잘 설계해 나가리라 믿는다. 현장과 시민이 바로 옆에서 든든히 받쳐줄 것이다. ‘Merry 해수mas’. 그리고 올해도 수고 많았던 해양수산가족, 부울경 시민 모두 행복을 누리는 새해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2025-12-2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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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통일교는 어떻게 대권을 꿈꾸게 됐나
한일해저터널이 특정 종교세력을 배후에 둔 뭔가 음습한 사업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두 나라를 바다 밑 터널로 연결해 물류를 일으키고, 동북아 대표 경제권을 만든다? 일견 그럴 듯하고, 실제 부산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이 ‘진짜 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 한 번쯤 했을 것 같다. 이 구상을 이끌어가는 한일해저터널 연구회만 봐도 부산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할 만한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느닷없는 ‘금품 로비’ 의혹이 터지기 전까지 한일해저터널은 멀쩡한 외양을 갖춘 지역의 오랜 비전 중 하나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산에서 한일해저터널 논쟁이 어떻게 전개돼왔는지 살펴봤는데, 내가 아는 건 빙산의 일각임을 깨달았다. 문선명 총재가 1981년 전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 평화 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하고, 그 출발점을 한일해저터널로 설정한 이후 통일교 신도들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현실화에 주력해왔다. 영불해저터널을 모델로 100년이 걸릴 각오로 끈덕지게 이 일을 해왔다고 한다.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든 헌신성이다.
통일교는 그 동안 각종 포럼, 이벤트를 만들어 전문가들을 포섭하고, 여야 정치인들을 한일해저터널의 우군으로 끌어들였다. ‘평화 도로’, ‘피스로드’ 등을 키워드로 연결된 이 네트워크에는 전직 장·차관, 대사, 교수 등 화려한 인맥이 포진해있다. 정치인들에겐 표를 언급하고, 금전적 후원을 얘기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다루는 뒷배경에는 항상 통일교의 그림자가 자리했다
초기에만 해도 반일 정서와 맞물려 일본의 대륙 진출 길을 터준다는 반대 논리가 우세했던 한일해저터널은 2010년대 중반부터 부산시장 공약으로 추진되는 데까지 위상이 커졌다. 정당이 하나의 정책을 두고 이 정도로 노력을 했다면 못 이룰 게 없었을 것 같다. 흥미로운 지점은 한일해저터널의 ‘스피커’들이 1년 전부터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북극항로 개척을 피스로드와 연계한 새 비전으로 적극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궤도에 오른 한일해저터널의 성과에 고무된 것일까? 통일교는 얼마 전부터 이런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우리 목표는 청와대에 보좌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우리에게) 국회의원 공천권을 줘야 한다”, “국회의원 공천, 청와대 진출 등 기반을 다져가면 2027년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지 않겠나”. 4년 전 통일교 간부들이 나눈 대화라고 한다. 지금 보니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겠다. 한일해저터널에 보인 집요함, 성실함이 이어졌다면 지금쯤 권력 핵심부에 통일교 인맥 몇 명은 거뜬히 진입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독생녀’라고 주장하는 교주 1인을 신적 존재로 여기는 비정상적인 종교 세력이 권력의 정점에서 국가 정책을 흔들 수 있다면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근래 들어 종교가 헌법에도 적시된 정교 분리라는 오랜 원칙을 깨고 현실 정치에 개입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즈음에는 가히 ‘발호’(跋扈)라고 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의 극단화하는 진영 대립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넘보는 이들 종교 세력 중에는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유사 기독교 종파가 두드러진다. 문제는 전광훈 류의 사이비 종파를 넘어 차별금지법 등을 매개로 일부지만 소위 정통파 기독교단까지 이 대열에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1948년 ‘제정 헌법’부터 이어진 정교 분리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퇴행이다.
이런 종교의 퇴행은 정치의 타락이 길을 열어준 측면이 있다. 결집된 소수 강경 지지층이 당내 언로를 장악하고, 반대파에는 문자 폭탄과 댓글로 집단린치를 가해 이견의 싹을 잘라버린다. 민주 정당을 표방하지만, 그 배타성이 일부 종교 집단의 행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특히 당원이 주인이라는 논리로 매달 1000원 내는 당원들을 누가 많이 모집하느냐에 당내 권력의 향배가 갈린다. 막강한 인적, 물적 동원력을 가진 사이비 종교가 합법적인 루트로 정당을 장악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진 셈이다. 내부 권력 전쟁에 매몰돼 극단 세력과의 결탁도 마다 않는 정당의 비틀린 자화상이 이번 통일교 사태를 통해 또 한 번 여실히 드러났다.
통일교 사태는 우리 대의 민주주의 체제의 또 다른 위기 신호다. 자정 기능을 상실한 정치와 순수성을 잃은 종교가 기묘하게 결합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 극단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령을 추구하는 여야 정당 내 상식적인 사람들의 각성과 분발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2025-12-2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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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롯데·LG가 부산에 올까
몇 년 전 독일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 본사를 방문했는데, 번듯한 대도시가 아니라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해 있다. 글로벌 2위 자동차 기업의 본거지라고 하기엔 초라했지만 형식보다 실리를 따지는 독일다운 모습이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가 좁다며 강남구 삼성동 노른자위에 땅값만 10조 원에 사들인 것과 비교된다.
독일의 경우 인구 142만 명으로 이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뮌헨에는 세계적인 지멘스, BMW, 알리안츠 본사가 있다.
이웃 일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글로벌 자동차 1위 기업 토요타자동차 본사는 일본의 도쿄나 오사카가 아닌 아이치현 토요타시에 있다. 두 나라 대기업의 본사 위치를 해당 국가의 지도에 표시한 걸 보면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있다. 대기업 본사가 서울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한국과 정반대 그림이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수도권에 본사를 둔 기업은 총 385곳으로, 전체의 77%에 달했다. 이렇다 보니 정규직 채용도 수도권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HR테크기업 인크루트가 최근 올해 3분기 정규직 채용 공고를 17개 광역시도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경기도 26.5%, 서울 21.0%였다. 두 지역만 합쳐도 47.5%였다.
문제는 이 같은 대기업과 일자리 쏠림으로 인해 지방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게 되면 향후 지방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인구도 줄어들게 되고, 결국 성장동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재정자립도에서도 수도권과 지방은 현격한 차이가 난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 ‘지방재정 365’에 공개된 2025년 기준 지자체별 재정자립도를 보면 50%를 넘어서는 곳은 서울시와 경기도, 세종뿐이다. 20%대도 4곳이나 됐다. 부산은 42.7%다. 이처럼 수도권 재정자립도가 높은 것은 대기업들의 법인세, 재산세 영향이 크다.
본사의 지방 이전을 꺼리는 대기업들의 항변은 이렇다. “지방으로 본사를 옮기면 인재 채용이 안되고 결국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수도권도 계속되는 과밀로 인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그로 인한 교통체증 등이 문제다. 돈과 사람이 몰린다고 좋다고만 할 일은 아닌 상황이다. 지방과 수도권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현안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일 가진 ‘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어차피 땅은 제한돼 있고 사람은 계속 몰리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수도권 집중 문제를 ‘국가적 위험요인’으로 규정하고 “균형발전을 더 이상 지역 배려 차원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 이후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16일 국무회의 결정을 통해 앞으로 중앙환경정책위원회 등 정부위원회에 지방 관계자의 참여가 대폭 확대된다. 지역 특성과 현장의 정책 수요를 주요 국가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또한 지방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과 지원 등에 관한 법률(지역의사법)’도 이날 통과됐다.
공공기관 2차 이전계획도 내년에 발표된다. 이전은 2027년부터 시작된다. 침체된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15개 국가첨단산단 등 성장거점을 조성하고 도로·철도·공항 등 지방 교통인프라를 대폭 확충한다고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처음으로 국가균형발전을 국가운영의 기본축으로 제시하고, 행정수도 세종 이전, 지방 혁신도시로의 공기업 이전, 기업도시 등을 추진했지만 지방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대기업 이전을 시도했지만 기업들이 반발하며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과 대학이 함께 움직여야 효과가 난다. 또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해 기업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역인재를 키우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8일부터 해양수산부가 정부세종청사를 떠나 부산으로 이전을 진행하고 있다.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도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기로 했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이지만 매출 10대 기업은커녕 100대 기업도 아직 본사가 없다. 지역 연고 기업 롯데나 LG의 주요 계열사 한 곳이라도 부산으로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5-12-1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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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보행자의 죽음을 학습하지 않는 사회
횡단보도를 걸을 땐 주위를 두리번대는 습관이 생겼다. 달리는 자동차를 믿기 어려워 생긴 경계심이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뉴스 속 횡단보도 보행자 사망 사고에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지난 7월, 회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20대 딸을 잃은 어머니였다. 딸은 올해 5월 울산공항 인근 횡단보도에서 우회전하는 시내버스에 치여 숨졌다. 녹색 보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딸을, 우회전 일시 정지 의무를 어긴 버스가 덮친 것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딸은 특수교사 꿈을 이뤄 울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했다. 올해 12월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사고 기사 몇 줄로만 남아 버린 딸을 이렇게 하늘로 떠나 보내기엔 너무나 억울하다”며 “더 이상 허망한 죽음이 없어야 한다”고 울먹였다. 그러고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우회전 일시 정지 위반에 따른 보행자 사망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법률 제정에 관한 청원’을 게시했다며, 언론의 관심을 간절히 부탁했다. 사고만 없었다면 딸은 아름다운 12월의 신부가 됐을 터였다.
뉴스를 검색해 보면, 우회전 차량에 의한 보행자 사망 사고는 줄을 잇는다. 지난 8일 경기 안양시에서는 보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이 우회전하던 통학버스에 치여 숨졌다. 지난 9월 29일에도 경남 창원시에서 보행 신호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여성이 덤프트럭에 치여 생명을 잃었다.
보행자들이 무엇보다 안전해야 할 횡단보도에서 안타깝고 허망한 사고가 잇따르며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지만, 그 원인을 운전자의 부주의로만 치부하기에는 뭔가 개운치 않다. 보행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며 개정된 법이 현실과 괴리돼, 오히려 운전자와 보행자의 혼란을 키우고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우회전 차량의 보행자 보호 범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서 ‘통행하려는 때’로 확대했다. 2023년 1월부터는 전방 차량 신호가 적색이면 우회전 차량은 반드시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 정지해야 한다. 도로 접속 지점에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밖에 없는 교통 신호와 도로 체계를 감안해, 우회전 시 발생할 수 있는 보행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우회전 방식은 운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사고 예방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법 시행 이후 부산에서 발생한 우회전 차량 사고 건수와 인명 피해가 오히려 늘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실제로 우회전 시 운전자가 고려해야 할 상황은 지나치게 많다. 횡단보도가 몇 개인지, 각 횡단보도에 어떤 신호가 들어오는지, 보행자가 있는지, 걸으려는 움직임이 있는지, 녹색 화살표 신호가 있는지 등 경우의 수가 끝도 없다. 바뀐 법이 시행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이를 정확히 숙지하고 지키는 운전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보행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라도 길을 건너거나,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으면 차량이 반드시 일시 정지해야 하지만, 이를 아는 운전자도 거의 없다. 전문가들까지 나서 규정 간소화를 지적하는 이유다. 보행자 보호와 교통 흐름을 동시에 고려하다 보니 현장과 동떨어진 ‘기형적 규정’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경찰은 법 개정 초기 일시적 계도와 홍보에 그쳤고, 복잡한 규정을 현장에서 정착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은 부족했다. 강력한 단속에 나서기가 부담스럽다면, 꾸준한 계도라도 필요함에도 말이다. 2년 넘도록 달라진 우회전 통행법이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는 실효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받아들이고, 복잡하고 난해한 우회전 통행법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바꿔야 한다.
우회전 차량이 차량·보행 신호와 관계없이 횡단보도 앞에서 무조건 일시 정지하도록 하고, 횡단보도에 보행 신호가 들어와 있거나 보행자가 있는 경우, 보행 신호가 끝나거나 보행자가 길을 다 건널 때까지 차량이 무조건 멈춰 있도록 하면 운전자의 혼란이 줄고, 보행자 사망 사고도 줄일 수 있다. 교통 흐름에 영향이 있겠지만, 생명보다 중요한 건 없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후배는 미국의 우회전 방식이 우리나라와 너무 달라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우회전 도로에서 빨간색 스톱(STOP) 교통 표지판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표지판 앞에서 3~5초가량 멈춰 서 있지 않으면, 경찰이나 단속 카메라에 적발돼 꽤 많은 벌금을 문다고 했다. 3~5초가 보행자의 생명을 지키는 ‘골든 타임’인 셈이다. 우리 사회와 정부도 더 늦기 전에 횡단보도 위 안타까운 죽음들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2025-12-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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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12월, 잔인함과 빛 사이에서
영국 모더니스트 시인 T.S. 엘리엇은 장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봄은 생명과 희망의 계절로 여겨지지만, 엘리엇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유럽의 현실 속에서 봄의 재생이 오히려 고통을 드러내는 역설로 묘사했다. 겨울은 절망을 덮어 숨기지만, 봄은 죽은 땅에서 억지로 생명을 일깨워 황폐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의미였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잔인한 달을 꼽으라면, 기자는 12월을 말하고 싶다. 12·12 군사반란과 12·3 비상계엄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이 달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1979년 12월 3일 전국 비상계엄 확대와 12월 12일 군사반란은 민주주의를 군홧발로 짓밟은 사건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권력 공백은 민주주의로 나아갈 기회가 될 수 있었지만, 신군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계엄 확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권력을 움켜쥐기 위한 군부의 계산이었다. 헌법은 휴지조각이 되었고, 국회는 무력화되었으며, 언론은 입을 봉쇄당했다. 이어진 12·12 군사반란은 더 노골적이었다.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은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군사력을 동원해 권력을 탈취했다. 이는 단순한 권력 다툼이 아니라 헌정 질서를 정면으로 파괴한 반역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침묵하지 않았다. 광주에서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저항했다. 신군부의 총탄에 스러진 수많은 희생은 한국 민주주의의 불씨를 지켜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기억은 꺼지지 않았다. 결국 1987년 6월, 거리로 쏟아져 나온 국민의 분노는 군부 독재를 무너뜨리고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피와 눈물 위에서 다시 일어섰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은 또다시 혼돈에 빠졌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민주주의를 일거에 무너뜨리려 했지만, 이번에는 국민이 국회를 지켜냈다. 시민들은 장갑차 앞에 맨몸으로 서고, 경찰의 봉쇄를 뚫어 국회의원들이 헌법상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장면은 민주주의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를 ‘빛의 혁명’이라 명명하며, 과거 12월의 어둠과 현재의 빛을 대비시켰다. 군홧발로 민주주의가 짓밟힌 과거와 시민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은 현재를 연결해, 민주주의의 본질이 국민 주권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빛의 혁명’을 기념하며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국민이 헌법의 주인임을 확인한 역사적 선언이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국민의 용기와 참여가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숨쉰다. 과거 12월의 사건들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후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고, 현재의 ‘빛의 혁명’은 민주주의가 시민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증명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권력의 오만을 경계하고, 시민의 지속적 참여와 감시, 역사적 기억의 계승이 필수적이다.
12월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잔인한 달이자 동시에 가장 빛나는 달이다. 과거의 군사반란과 현재의 시민 저항은 대비되며, 민주주의는 국민의 참여와 용기로 살아 숨쉰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제도에만 달려 있지 않다. 국민이 끊임없이 주권을 확인하고 행동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굳건히 서게 된다.
올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먼 훗날 되돌아보면, 2025년은 비상계엄을 극복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시간은 억압과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 속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힘을 다시 확인했다. 자유를 잃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는 법이다. 이제 우리는 상처를 치유하고, 분열을 넘어 연대와 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비상계엄은 단순한 제도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교훈이다. 권력의 집중이 얼마나 위험한지, 시민의 목소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체험했다. 따라서 극복의 의미는 단순히 과거를 벗어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다짐이다. 민주적 가치와 인권을 지키는 사회, 책임과 교훈을 잊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2025년의 극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희망을 품고 더 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바로 지금이다. 매년 12월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거나 시민을 억압한 기억 속의 잔인한 달이 아니라, 봄과 희망을 준비하는 인고의 시간으로 승화되길 바란다.
2025-12-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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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노벨상 강국 미국의 치트키 '이방인'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 중에 노벨상 소식이 있다. 수상자 발표가 들리면, 겨울이 시작될 즈음이다. 노벨상 수상식이 열리고 수상 소감이 들리면, 이제 정말 한 해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2025년 시상식은 오는 10일에 열린다.
올해도 분야별로 총 14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는데, 역시 미국이 4명으로 가장 많았다. 거의 매년 미국이 일등이었다. 지금까지 노벨상의 개인 수상자는 990명으로, 이 중 424명이 미국인이다. 이중 국적 등의 기준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는 있지만, 여하튼 노벨상의 40% 이상은 미국이 챙겨갔다.
미국이 노벨상 강국이 된 이유로 우수한 교육과 세계적인 연구소, 막대한 과학 투자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미국만의 ‘치트키’가 있는데, 바로 이민자이다. 미국정책재단(NFAP) 등의 자료를 보면 미국인 노벨상 수상자의 31~35%가 이민자였다. 이민자 가정의 2세들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진다. 2016년엔 6명의 미국인 수상자 전원이 이민자이기도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엔리코 페르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를 피해 유럽의 과학자들이 대거 대서양을 넘었다. 그 덕에 미국은 핵폭탄도 만들었고, 확실한 패권 국가로 성장했다. 과학 분야만 아니라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이민자 유입은 활력을 불어넣었다. 당장 세르게이 브린(구글 공동창업자)은 러시아,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는 남아공, 젠슨 황(엔비디아 창업자)은 대만, 사티아 나델라(MS CEO)는 인도 출신의 이민자이다.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이민자가 미국의 성장 시기 부족한 노동력을 메워줬다.
만일 과거의 미국이 유럽의 도망자들을 거부했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적대시해 국경을 막았다면, 지금의 미국은 많이 초라해졌을 것이다. 그랬던 미국이 지난 9월 조지아주에서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을 구금하고 내쫓았다. 트럼프의 미국은 예전의 미국이 아니라는 느낌이다.
아시아에도 개방을 통해 극적으로 성장한 나라가 있다. 1965년 떠밀리듯 말레이시아에서 분리 독립한 싱가포르는 중국계, 인도계, 말레이계 사람들이 섞여 있었고 종교도 제각각이었다. 갈등의 씨앗이 될 법했던 다양성을 싱가포르는 인종·종교를 서로 인정하는 문화로 승화시켰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에 더해 영주권을 적극적으로 개방하며 노동력과 인재를 모았다. 싱가포르의 틀을 세운 리콴유 초대 총리는 “다양한 민족이 갈등 없이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강한 의지와 일관된 정책의 결과다”며 다민족 개방적 사회를 이룬 것을 싱가포르 성공 이유로 꼽았다.
일본은 정반대의 사례다. 미국 경제를 위협하던 일본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침체가 시작됐다. 잃어버린 10년이 거의 잃어버린 30년이 된 느낌이다. 특히 ‘노동력 공급 부족’이 구조적인 요인으로 지목된다. 고령화, 저출산으로 일할 사람이 없으니 경제가 활력을 잃는 건 당연했다.
폐쇄적 이민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은 문화적 동질성을 추구하다 보니, 이민과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에 배타적이었다. 2010년 이후로는 정책 변화를 시도해 외국인 노동자가 몇 배가 늘어, 전체의 3%를 넘겼다. 그래도 OECD 중 여전히 최하위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24년 기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은 이주민을 포함해 약 265만 명이라고 한다. 전체 인구의 5% 정도다. 이미 국내 조선업이나 중공업, 건설현장 등은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돌아가기 어렵다. 외국인 유학생, 이민자들도 국내 경제 활동에서 일정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OECD 웬만한 나라들은 체류 외국인 비중이 10%를 넘고 20~30%인 곳도 있다. 그만큼 앞으로도 더 많은 이방인이 우리를 찾아와 이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부산일보〉에 실린 ‘내겐 여전히 낯선 부산’이라는 기획 기사는, 이 도시가 글로벌허브를 지향하지만 외국인과 이민자들에게 만만치 않은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더 많은 외국인 이웃이 생길 것이라면, 기사의 지적대로 이들과 잘 융합하는 것도 고령화 시대를 극복하는 방법일 것이다.
사실 외모와 살아온 배경이 이웃의 조건은 아니다. 한국인 얼굴에 한국식 이름을 가지고 한국에서 큰돈을 벌지만, 정작 뉴욕증시에 상장된 미국 플랫폼 기업을 운영하며 개인정보 유출 파문을 일으킨 이도 있다. 반면 생김새는 달라도 지역 사회에서 함께하고 있는 가까운 이주민도 있다. 누가 우리의 진짜 이웃이겠는가.
2025-12-08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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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민 식재료 ‘양산 계란’ 축제로 변신
기자가 초등학교 다닐 때 계란에 대해 웃지못할 추억이 하나 있다. 매일 친척이 운영하던 다방에서 병에 가득 담긴 귀한 계란을 집에 가져왔다. 이 계란에는 노른자가 없었다. 흰자만 있는 계란만 먹다 보니 노른자가 있는지 몰랐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밥을 먹었고, 노른자가 선명한 계란 반찬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귀가 후 ‘왜 우리 집 계란에 노른자가 없느냐’며 엄마에게 따지듯 물었다. 엄마는 웃으며 “다방에서 쌍화차를 만들 때 노른자를 사용하고 남은 흰자만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것은 50여 년이 흐른 올해 10월 25~26일 양산 황산공원에서 계란을 주제로 한 ‘에그야 페스타’가 열렸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첫 시도된 계란 축제는 초대형 계란말이 커팅식과 유명 셰프들의 스페셜 쿠킹 쇼, 더 에그 배틀, 낙동강 라면, 세계 계란 요리 등 다양한 콘텐츠로 행사 기간 내내 대기 줄을 만들어낼 만큼 인기를 끌었다. 양산 지역 소상공인이 참여한 푸드 존은 준비한 식재료가 조기에 소진될 정도로 대박을 터트리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양산시가 통신사 유동 인구와 카드 매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타지역에서 2만 8000여 명을 포함한 최소 4만 6800여 명이 축제를 찾았다. 행사장 인근 라피에스타 등 증산신도시와 물금읍 원도심 상가 매출이 행사 직전 주말보다 36%가 증가한 42억 7000여만 원을 기록해 오랜만에 상인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방문객 규모에서는 김천의 김밥 축제(10월 25~26일)나 구미의 라면 축제(11월 7~9일)에 비해 뒤졌지만, 첫 행사에서 ‘방문객과 소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와 발전 가능성도 확인됐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축제 정체성인 ‘왜 양산에서 계란 축제를 개최하는지’가 방문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양산은 부울경 내 산란계를 사육하는 밀집 지역 중 한 곳이다. 올해 연간 3억 개 이상 계란을 판매하는 국내 최대 규모 업체의 본사도 양산에 있다. 양산은 계란 산업의 뿌리가 깊은 도시인 것이다.
계란 역사는 1970년으로 올라간다. 오경농장(현 젤란) 김중경 대표가 병아리 500여 마리를 사육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농가의 닭 사육은 흔했지만, 수백 마리 단위의 닭 사육은 처음이었다.
이후 김 대표 형제들과 이웃 농가들이 닭 사육에 앞다투어 뛰어들면서 상·하북을 중심으로 90여 농가가 210만 마리의 산란계를 기르기도 했다. 하루 평균 계란 생산량도 150만 개를 넘겼다. 수 년 전부터는 사육 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13개 농가에서 70만여 마리의 산란계가 사육 중이지만, 여전히 지역 핵심 산업 중 하나다.
행사장인 황산공원 진입로 개선은 시급하다. 행사 기간 황산공원 진입로는 교통 체증으로 몸살을 앓았고, 일부 방문객은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양산시도 문제를 인식해 추가 진입로 개설을 추진 중이지만, 수백억 원대 예산 확보 문제 등으로 늦어지고 있다. 양산시는 4일 오후 물금읍에서 열리는 박완수 도지사와의 도민상생토크와 5일 국민의힘 경남도당 양산시 정책협의회에서 예산 지원을 각각 요청할 예정이다.
방문객 동원엔 성공했지만, 머물게 할 콘텐츠도 필요하다. 방문객의 60.5%가 외지인이라는 사실은 관객 동원에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방문객이 소비하고, 지역을 둘러보고, 숙박까지 이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축제는 일회성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역 경제와 직결된 체류형 축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1만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한 계란은 단백질 등 필수 영양소를 갖춘 완전식품이다. 1950~60년대에는 손님이 오거나 생일, 제사 등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밥상에 오르지 않았다. 60~70년대는 닭고기와 돼지고기, 찹쌀과 함께 명절 선물이었을 정도로 귀했다. 현재는 K-푸드를 선도하고 있는 치킨이나 김밥, 라면 등 우리나라 음식 전반과 뛰어난 궁합으로 확장 가능성 역시 무궁무진하다.
먹거리 하나로 도시가 변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계란은 우리 음식 재료의 지존으로 단순한 식재료 그 이상이다. 정체성에 기반한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과 방문객을 체류시킬 수 있는 콘텐츠, 양산시, 지역 주민, 기업이 함께 할 때 계란 축제는 ‘스쳐 가는 행사’에서 ‘머물게 하는 행사’로, ‘지역 경제와 직결되는 지속 가능한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흰자만 맛보던 계란이 그랬듯, 양산 계란 축제 또한 아직 보여주지 않은 ‘노른자’를 품고 있을지 모른다.
2025-12-03 [18:13]